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 꿈이 너무 많은, 꿈이 없는 청소년들에게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21
마르탱 파주 지음, 배형은 옮김 / 내인생의책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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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년 전에 읽은 책도 기억 못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는 와중에 이 책의 저자를 보고 바로 오래 전에 읽은 <완벽한 하루>의 저자임을 바로 떠올린 내가 의외였다. 리뷰를 찾아보니 2008년에 읽었다는 것을 알고 두번 놀랐다. 자그마치 15년 전에 읽은 책이라니. 물론 내용이 다 기억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참 독특하고 상상력 넘치는 책이었고 우리 나라에서도 이렇게 기발하고 생각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내용의 소설이 나올 수는 없을까 아쉬워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원제도 이런 뜻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마침 난티나무님께서 올리신 리뷰를 읽고서 원제와는 좀 거리가 있는 제목이라는 것을 알고 반가웠다. 

중학생 셀레나가 주인공. 자신을 가꾸는데 관심이 많고 학교생활에 모두 만족하기 보다는 신랄한 지적을 내리는데 일가견이 있는 영리하고 당찬 소녀이다. 

어느 날 갑자기, 그야말로 갑자기, 딸 셀레나가 예술가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부모님으로부터 듣는다. 마치 선고문 같이.


"네가 예술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우린 너를 밀어주기로 했다." (22쪽)


셀레나는 앞으로 뭐가 되고 싶은지 아직 잘 모를 뿐 더러 부모님에게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도 없다.


"네가 모범생이라고 해서 평범한 과정을 거쳐 의사나 변호사, 교수나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야만 할 필요는 없어. 넌 자유롭단다. 예술가가 될 자유가 있어." (24쪽)


뒤늦게 예술에 대한 매력을 새로이 발견한 부모님은 자신들이 꿈을 이루기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는지 대신 딸 셀레나가 예술가로 커주기를 바라게 된 것이라고 추론할 정도로 셀레나는 영리한 아이였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더 잘하느라, 아이들을 교육시키느라, 아이들을 걱정하느라 무분별하게 에너지를 쏟는다. 셀레나는 부모들이 그 에너지의 4분의 1만이라도 그들 자신과 부부의 인생에 쏟는다면, 모든 면에서 상황이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셀레나 자신도 부모님의 말과 생각을 덜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삶이 더 편안해질 것 같았다. 아마도 그건 자기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 되리라. (81쪽)


평소의 내 가 생각하고 있던 바와 일치하는 말을 셀레나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어 무릎을 쳤다. 자식에게 바라는 것을 잘 들여다보면 부모 자신이 과거에 이루지 못한 꿈일 때가 많다. 그것을 늦게라도 부모 자신이 시도한다면 자식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부모의 노후에도 더 도움이 되고 자식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되고, 부모의 모습 자체가 저절로 가르침이 될 수 있을텐데. 스스로 하는 것은 시키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시키는 것은 아무나 하지만 스스로 하는 것은 아무나 못한다.


학교에서 학기 초마다, 선생님들이 설문지를 돌려 장래 희망을 묻곤 했다. 셀레나는 늘 그 칸을 텅 빈 채로 두었다. 지금은 인생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시기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서서히 드러나는 시기였다. (99쪽)


셀레나는 자기 것이 아닌 삶을 살지 않아도 되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들을 코앞에서 지나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어른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한다. 성장한다는 것은 책임질 일이 많아지는 것이고 그래서 두렵기도 하지만 자신이 운명의 주인이 되는 일은 중요한 일이라는데 흔들리지 않는 생각을 갖고 있다. 부모님은 위기를 겪고 있고 셀레나가 그 결과를 감수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셀레나의 부모님은 셀레나에게 예술가가 되라고 하고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곤경과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에 난방도 제대로 안하고 식사도 초간단식으로 때우는 생활, 부모가 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했다는 제스쳐 등을 꾸며내는 모습은 읽는 사람도 웃음이 나올 지경이지만 셀레나에게는 자기를 다시 들여다보고 자기가 과연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할 기회는 충분히 제공하는 계기가 되어 준 것만은 사실이다. 좀 유치한 방법이었지만.


부모님은 자신들이 완벽한 부모가 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아이를 누구보다 더 재능 있고 매력적인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한 사회적 압박을 견디고 있다. 또 자기 부모가 했던 잘못을 다시 저지르려 하지 않으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다른 잘못을 저지른다. (112쪽)


이 세상에 완벽한 부모가 있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완벽한 부모에 가까와지려고 하는 순간 완벽에서는 멀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결말 구실을 하는 셀레나가 부모님께 쓴 편지는 짧지만 하고 싶은 말이 다 들어있었다. 흥분하지 않고 감정에 치우치지도 않으며 조목조목 자기가 전달해야 할 말만 전달하고 있었다. 오히려 어쩌면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던 부모에게 해결의 실마리까지 던지지 않았나 싶다. 부모의 말에 그대로 순종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극단적 파행을 감행하지도 않으면서 자기 뜻을 펴나가는 셀레나에게 오히려 한수 배우는 심정이었다.


작가 마르땡 파주는 1975년 파리 출생,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호응도가 높은 작가로서, 그의 이런 기발한 이야기 소재들의 근원에는 그의 이색적인 이력과 밑바닥 경험이 있었다. 대학에서도 일곱 분야를 전공했다고 하니 앞으로도 그에게서 나올 이야기들이 기대된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는 제목은 실제로 반대이다. 셀레나는 생각이 아주 많은 아이였다. 어른이 배워야 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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