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마의 수도원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8
스탕달 지음, 원윤수.임미경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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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이탈리아라고 하는 나라가 지금처럼 하나의 국가로 통일된 것은 200년이 채 못된다. 이전까지는 여러개의 도시 국가가 복작복작 이탈리아 반도 땅을 나눠갖고 있는 형태였다. 파르마 공국도 그 중 하나로서 이탈리아 반도의 북부에 위치한 나라였고 파르마가 수도였다. 스탕달은 프랑스 태생임에도 불구하고 군인이 되어 이탈리아로 떠났던 것을 계기로 이후로도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많이 하였다. 파르마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 <파르마의 수도원>은 <적과 흑>보다 9년 늦게 발표한 작품으로서 스탕달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다. 스탕달이 이탈리아에서 영사로 있던 때인 1833년에서 1834년 사이 로마를 방문했다가 16세기 르네상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문서를 몇 편 접하게 된다. 그 중에서 <파르네제 가문의 위대함의 기원>이라는 글에 특히 흥미를 느낀 스탕달은 이 얘기를 16세기 배경에서 19세기 배경으로 바꾸고 일부 내용을 첨삭하여 하나의 소설을 탄생시키는데 이것이  바로 <파르마의 수도원>이다.

19세기 초 이탈리아 밀라노 공국 (파르마 공국은 이야기의 나중에 등장). 델 동고 후작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그 중 둘째 아들 파브리스가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나폴레옹을 숭배하는 젊은이이다. 적과 흑에서도 그러더니 나폴레옹 얘기가 빠지질 않는다 (스탕달 자신이 나폴레옹 군대에 지원하여 참전한 경험을 갖고 있다). 어느 날 나폴레옹 꿈을 꾸고 나더니 나폴레옹 황제의 군대에 들어가겠다고, 이건 운명이라는 듯이 고모인 백작 부인에게 설파하는 내용이 소설의 초입에 펼쳐진다. 결국 전쟁터에 투입되어 전쟁에 임하는 모습이 허세가 있어 보이기도 하고, 전쟁에 대한 환타지를 가지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아, 드디어 난 전쟁터에 왔구나!" 그는 생각했다. "난 포화를 본 거야." 그는 만족스러운 심정이 되어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나는 이제 진짜 군인이야." 그 순간에도 호위대는 쏜살같이 질주하고 있었다. 우리 주인공은 사방에서 흙덩어리가 날아오르는 이유가 바로 포탄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72쪽)

어수룩하게 전쟁 구경만 하다시피하고 돌아온 파브리스를 기다리는 건 그가 자유주의자라는 혐의를 씌운 친형의 음모였다. 다행이 파브리스를 너무나 사랑하는 공작부인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이 공작부인은 파브리스의 친고모이다. 그런데 조카 파브리스에 대한 감정이 고모와 조카 사이의 친밀도 그 이상이다. 우리 정서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지만 고모의 나이가 아주 많은 것도 아니었고 결혼 생활에 만족하는 편도 아닌데다가 조카 파브리스 말고도 여러 남자들의 추앙을 받는 미모를 지닌 것으로 나온다. 단, 파브리스 역시 고모와 같은 감정을 지녔는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사랑의 감정보다는 숭배에 가까운 것이라고 보여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대목때문이다. 

그는 공작부인에게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녀를 향해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맹세한 것이다. 이 순간 그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부인에 대한 감정은 숭배에 가까운 것이었으므로 사랑이란 말은 옳지 않은 것이다. 그는 부인에 대항 사랑이란 단어를 꺼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햐면 사람들이 사랑이라 부르는 이 정열은 그에게는 낯선 것이니까. 지금 그는 고귀하고 너그러운 감정이 솟아오르는 가운데 더 없는 행복을 느꼈다. (230쪽)

이런 파브리스의 성격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된 부분이 더 있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면 그 주위를 수없이 맴돌기만 할 뿐, 그 문제를 뛰어넘을 줄은 몰랐다. 그는 아직도 너무 젊었던 것이다. 한가할 때면 그의 마음은 상상력이 언제라도 꾸며내 주는 소설적인 상황에 빠져들어 그 감각을 맛보는 데 정신 없이 몰두하곤 했다. 사물의 실제적인 특성을, 그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성찰하는 일에 시간을 쓰는 적은 없었다. (232쪽)

이후로 소설의 주 갈등 요소를 제공하는 사건으로, 파브리스와 떠돌이 극단의 여배우 마리에타의 연애 사건이 등장한다. 마리에타에게는 이미 정부 (情夫)가 있었고 파브리스에게 시비를 거는 정부와 싸움이 붙은 끝에 그만 그를 죽이게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감옥게 갇히게 된 파브리스는 와중에 감옥이 있는 성채 사령관의 딸인 클렐리아와 사랑에 빠지고, 파브리스를 감옥에서 빼내기위한 고모인 공작부인의 온갖 노력으로 가까스로 탈출하지만 파브리스의 마음은 클렐리아에게서 떠나질 않는다. 

이후 클렐리아는 결국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고 절망한 파브리스는 파르마의 란드리아니 대주교의 수석 보좌주교를 거쳐 부주교의 지위에까지 오르지만 조금도 기쁘지 않고 오로지 클렐리아 생각 뿐이다. 

소설의 마지막은 그동안 철없는 젊은이가 중심이 되어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사랑 타령 이야기라 생각하며 가볍게 읽어오던 것을 홱 돌려놓을 만큼 급격하고 불행하게 맺는다. 제목이 파르마의 수도원인 것은 파브리스가 마지막으로 은둔에 가까운 생활로 정착하게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1, 2권에 걸친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소수의 행복한 사람들에게 바친다.

To the happy few


행복은 소수에게만 있다는 이 말이 오늘 따라 더 쓸쓸하게 마음에 닿는다. 

파르마의 수도원이 출판된 후 발자크는 이 작품에 찬사를 보내는 평문을 쓰기도 했다. 이 작품을 출간하고 3년 후 스탕달은 뇌졸중 발작으로 쓰러져 다음 날 새벽에 사망하였다. 그의 나이 59세. 

소설 구성이 다소 산만하고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더라는 의견들에 충분히 공감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결말이 이렇게 될 것이라면 살아있는 동안의 크고 작은 일들은 그저 꿈 같기도 하고 행복을 쫒는 놀이에 지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나 저나 행복이란 현실보다 꿈에 가까운 것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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