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월 x일

아무거나 해도 되는, 아무거나 해야 하는 토요일이다.

아침 잠이 원래 없어 늦잠이라는 걸 누려보지 못하고 결국 학교 갈 때와 비슷한 시각에 일어나, 네 군데 TV채널을 한번씩 돌려보고는, 옷차림새 한번 쓰윽 보고 -보기만 하고- 길 건너의 shop에 간다. 두께가 평일의 두 배나 되는 주말 판 신문을 사기 위해서. 값도 평일 신문의 거의 두 배이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shop이다. 물건이 많지 않아도 좀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을 수도 있었을 터인데, 손가락으로 훑어보면 뽀얗게 먼지가 묻어나올 것만 같은 식료품들이 진열대 위에 드문드문 놓여 있는, 아무리 좁은 구멍가게라도 물건이 빽빽이 자리 잡고 있는 한국의 구멍가게와 너무나 대조적인 썰렁한 식료품점이다. The Times나 Independent, 혹은 Guardian중 한 부를 사가지고 방으로 돌아온다. 침대에 걸터 앉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면서 관심이 가는 부분은 정독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문득 내 나라 신문이 그리워진다. 죽죽 읽어 내려갈 수 있는, 내 나라 소식이 담겨 있는 그런 신문. 그 때부터 줄줄이 사탕처럼 두고 온 식구들이 생각나고, 친구들이 생각난다. 잠시 침대에 벌렁 누워 본다. 그리운 사람들을 실컷 그리워하다보면 배가 고파진단 말이다. 시간을 보면 정오 무렵. 아, 이제 뭔가를 먹어야 하는구나. 귀찮은데 커피나 마시고 건너뛸까, 아니지, 그래도 적절한 영양분을 먹어줘야지. 내 몸에 연료가 들어가줘야 하잖아. 무엇을 먹어야하나, 어디서 먹어야 하나. 우리 뭐 먹을까 하고 물어볼 사람이 옆에 있다면.

외로움. 이것으로부터 하루라도 자유로운 적이 있었던가.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이것을 자유라고 한다면 그 댓가는 바로 외로움이다. ‘혼자’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이 두 얼굴 (자유로움과 외로움)모두를 알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오로지 한 쪽 얼굴만 본다.

--- 10년 전 어느 토요일의 일기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노아 2007-07-15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 자유의 반대말은 '관성'이란 표현을 보았는데, 외로움도 일리가 있어요. 전 외로워도 좋으니까 좀 자유로웠음 좋겠단 생각도 하고 있어요. ^^;

hnine 2007-07-16 06:20   좋아요 0 | URL
자유의 반대말은 관성이라...
자유를 누리면 반드시 그 댓가가 있는 것은 사실언 것 같아요.
결혼한 사람들 중에 가끔 화려한 싱글로 살아보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저는 혼자 저렇게 몇 년을 보내보고는 가족없이 혼자 지내는 것,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