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신을 볼 때 당신은 누굴 보나요 - 수필가 배혜경이 영화와 함께한 금쪽같은 시간
배혜경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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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이면서 평소 영화에도 관심이 많은 저자가 이 책을 내면서 영화를 소재로 한 수필집으로 할 것인지 영화 비평서로 할 것인지 미리 정하고 쓰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정작 그런 물음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독자인 내가 했던 생각이었다. 

48편의 영화가 번호를 달고 나란히 목차 속에 정리되어 있었다. 세어보니 그중 내가 본 영화는 겨우 9편. 내가 안본 영화가 더 많다. 잠시 망설임. 하지만 프롤로그 중 다음과 같은 문장을 보고 그냥 읽어나가기로 결정했다.


영화는 각자의 영화다. (12)


영화는 다 말하지 않는다. (13)


내가 본 영화인지 아닌지 연연할 필요 없겠다. 영화 각본을 쓴 사람이나 영화로 만든 사람과 별개로 영화는 이제 그 영화를 본 그 사람의 것이다.


영화에 대해 말하려 하지만 영화 결말까지 다 드러낼 수 없는 제약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매우 안정감 있게 요약하는 기술은 이번 책을 읽으면서 발견한 특징이었다. 영화의 중심 메시지를 짧은 몇 줄로 대표해서 보여주는 것도 이런 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인데 이점 역시 이 책에서 돋보이던 점. 

예를 들어 영화 '밀양'의 경우엔 '감내할 수 없는 하느님의 묵시적 사랑' 이라는 문구로 요약되었고, 영화 '4인용 식탁'을 통해서는 '좋은 공포영화는 우리 무의식의 심연을 들쑤셔 놓는다. 침전한 욕망과 죄의식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정화하는 힘이 있다. ' 고 했다. 

수록된 영화들의 리스트만 봐서는 저자의 영화 취향을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그 다양성이 보이기도 한다. 영화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관심때문이리라. 

'화씨 451 (1966)'이나 '열정의 랩소디 (1956) 처럼 오래 된 영화도 있고, '토베 얀손 (2020)', '노매드랜드 (2020)' 처럼 비교적 최근 영화도 있으며, 제목만 들어도 알만한 알려진 영화도 있지만 흥행에 실패한 영화, 독립 영화들도 포함시켰다. 고흐를 주제로 한 영화로서 각기 다른 배우가 주연한 여섯 편의 영화를 모아놓기도 했다. 고흐에 관한 영화가 이렇게 많았구나 새삼 알게 되었다. 저자의 경험과 추억이 스며들어가 더 특별했을 영화도 있었고 (타인의 삶, 도쿄 타워), 지금의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누구나 강렬한 느낌을 받았을 영화 '컨테이젼'이 지금으로부터 무려 10년전에 나온 영화라는 것은 얼마전에 나도 이 영화를 보면서 놀란 점이다. 


전체적으로 수필이라고 보기엔 영화 작품 자체에 더 집중되어 있고, 비평이라고 하기엔 그 정도로 무겁고 심각하진 않아서 읽기에 부담이 없는 책이었다. 

마지막으로 책과 영화 사이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영화는 진실과 연출의 완벽한 뒤섞임'이라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말, 그리고 앞에서 이미 인용한 '영화는 다 말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이 힌트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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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07 08: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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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08 15: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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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08 17: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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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08 17: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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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08 21: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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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2 12: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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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2 15: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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