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다람쥐
조카아이와 슈퍼마켓에 갔다
아이와 슈퍼마켓에서 나왔다
내 손엔 물건들이 들려있고
아이의 손은 들어갈 때처럼 빈손.
내 눈은 길을 보고 사람들을 보고 계산대를 통과하며 얄팍해진 지갑을 만지는데,
아이가 갑자기 소리 지른다
"이모! 여기 다람쥐 있어!"
어디? 어디? 없는데, 없는데.
높이 달린 내 눈엔 사람들과 물건만 보이는데
"여기 다람쥐 있어!"
반짝이는 눈, 자그마한 손을 따라가니 정말 다람쥐가 있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아주 낮은 곳에.
그 아이에게 당연한 기쁨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사랑도 그러하리라
- 최영미의 시집 <이미 뜨거운 것들> 중 시 '아이와 다람쥐' 전문 -
(원문에는 줄바꿈이 없음)
며칠 전 오후 다섯시 쯤.
동네 산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더니 하늘에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해도 기울 무렵이라 기온도 뚝 떨어진 느낌인데 학원 건물 옆 도로에 초등학생들을 태운 학원 버스가 막 도착하고 있었다.
'눈도 오고 날도 추운데, 학원 오기 얼마나 싫었을까.
안됐다...
아직 초등학생인데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
나 혼자 맘 속으로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는 애들을 딱한 눈으로 보고 있는데
버스 문이 열리고 쏟아져 나오는 애들. 하나 같이 환성을 지르며 내리는 것이다.
"와, 눈이다! 눈 온다!"
아이들에게는, 어른이 가지지 못한 힘이 있다.
어른들이 걱정을 앞세우는 상황도 우선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힘.
어른은 오래 전에 잃어버린 에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