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 - 기업인 박용만의 뼈와 살이 된 이야기들
박용만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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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보는 순간 끌렸다.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

남의 인생, 흘끗 봐서는 제대로 보아지지 않는다. 내가 내 인생을 돌아보아도 잘 모를때가 있는데 어떻게 한 단면만 보고 그 사람의 됨됨이와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 말할 수 있으랴. 그나마 자기 얘기를 자기가 직접 써서 책 한권을 채웠다면 조금은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두산그룹 회장직을 지냈고 현재는 두산 인프라코어 회장직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겸하고 있는 박용만 기업가의 자전적 에세이이다. 최근 이분의 이름을 전혀 예상치 못한 데서 들은 적이 있는데 올해초 문재인 대통령의 바티칸 방문때로 기억한다. 대통령 수행단의 일원으로 이 분이 바티칸 까지 동행하였는데 기업인의 자격으로서가 아니라 '몰타기사단'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단체의 한국 대표로서라고 했다.

궁금증은 가지되 선입견과 편견은 버리고 읽자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에게도 그늘이 없으란 법 없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최고경영자로서의 고충외에도 두산그룹과 관련되어 그동안 세간에 알려져 있는 내적 외적 사건들이 떠올리고 있었다. 


내 인생에도 '그늘'이 있다고 말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운 좋은 인생이었다 할지라도 양지뿐인 인생은 드문 것 같다. 

이 책 속의 글이 얼마나 솔직할까는 읽는 사람들이 판단할 몫이다. 솔직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면 듣는 나는 왜 그럴까 갸우뚱하면 그걸로 끝이다. 왜냐면 이 글들을 쓰는 동안 철저하게 나 혼자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글을 쓰면서 더없이 즐거웠고 후련했다. 내가 충분히 몰입해서 내 이야기를 쏟아내며 즐길 수 있을 만큼 외롭고 철저하게 혼자였기 때문이다.

어떤 잣대에 비춰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그냥 친구의 즐거운 이야기를 듣듯이 읽어주시기를 소망한다.

들어가는 글 중 한 대목이다. 

과연 그의 말대로 딱딱한 글 아니고 호탕한 목소리로 바로 앞에서 들려주는 얘기를 듣는 듯한 기분으로 400여 페이지의 책장이 후딱 후딱 넘어갔다.

국내에선 그야말로 최고 수준의 학교들을 나왔고 대학원은 미국 유학파에, 한 기업의 회장직까지 지낸 사람이지만 어느 날 친구가 '너는 지금까지의 삶에서 언제가 제일 행복한 순간이었냐'는 물음에 금방 대답을 못하고 밤잠 설치며 생각하던 끝에 마침내 무릎을 치며 얻어낸 답이 이것이라고 한다. 어제 저녁 아내와 김치밥을 해놓고 식탁에 마주 않았을 때. 즉, 아무 특별한 일이 없는 저녁 식구들과 저녁상에 둘러 앉았을 때가 바로 그 순간이라는 것이다. 사람에게 기본적인 것은 다 비슷한것인가.

1955년생, 66세의 나이지만 관습과 고집으로 벽만 두떱게 하기보다 프로젝트에 따라 샌드박스 제도에 매달려 일을 추진할 수도 있는 사람 (샌드박스란, 현행 규제를 받지 않으면서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고 그 결과를 보아 가며 나중에 법과 제도를 보완하도록 하는 제도), 남 시켜 일을 쉽게 하려고만 하지 않는 이유는 '수행은 위임할 수 있지만 판단을 위임할 수는 없다'는 소신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 착각하지 말고 겸손해야 하고 실력은 단단해야 하는데 정반대로 깨우치는 예가 많음을 직원들 중에서도 많이 보아 지적한다는 사람.

허영과 욕심을 목표라 착각하고 나태와 포기를 초월이라 착각한다. 

소위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저지르기 쉬운 실수로서 개인의 취향과 사업을 혼동하게 만드는 것이 있는데 기업총수가 자신의 숙원 사업이라는 것 때문에 회사가 어려워지는 무리수를 두어가며 욕심을 부리다가는 회사는 파국을 향해 달려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아무리 내가 하고 싶거나 갖고 싶어도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전력적 역량이 갖춰지지 않으면 욕심일 뿐이고 꼭 갖고 싶다면 역량을 갖추거나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역량을 빌려와야 하는데 그도 저도 아니면서 회장의 숙원이라고 성역을 만들어 포장하고 매진하면 결과는 실패일 뿐이라고. 이 대목을 읽으면서 대한민국의 어느 전직 대통령이 바로 떠올랐음은 숨기지 않겠다. 

대부분의 상황을 보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란 하나다. 리더의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는 여러 개의 의사 결정 변수들로 시작해서 그 딱 하나의 의사 결정에 이를 때까지 선택지를 좁혀나가는 과정을 얼마나 빠르고 과학적으로 처리하느냐다. 그리고 결정을 내린 뒤에 '결정했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다 같이 과학적으로 내린 결론을 실행할 책임을 내가 지겠다는 선언이다.

이것은 단지 기업 회장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 자신은 나 라는 기업의 총수이고 책임자이다. 합리적인 결정, 과학적으로 결론을 내려야 할 일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른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업적을 남겼고 어떤 과실을 저질렀나를 떠나서 다 관심이 간다. 한 사람은 곧 하나의 우주. 평가하고 판단하려는 월권을 자제하고 그냥 그의 이야기를 듣기로 한다면 세상에 이보다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을까 (내 경우 그렇다는 뜻). 그래서 책에 대한 평점도 평범하게 별 세개. 그건 어쩌면 최고의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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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1-12-24 2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김치밥이라면 김치 볶음밥을 해 놓고 식탁에 앉았다라는 뜻이겠죠?
정말 그 시간이 제일 행복한 순간이었을까?의혹이 드는 건 아직 제가 그 나이가 안되어 봤기에 하게 되는 생각이겠죠?^^
저녁 시간도 지나가고 밤이 되어 가군요?
나인님 댁도 평안하시고 기분좋은 성탄절 되시길 바랍니다♡

hnine 2021-12-25 05:13   좋아요 2 | URL
김치밥이라고 해서, 밥 할때 김치 썰어서 쌀과 함께 앉혀서 하는 밥이 있더라고요. 저도 해보진 않았고 저에게도 김치 볶음밥이 더 친숙하지요.
김치밥이라고 한건 그날 메뉴가 김치밥이었기 때문일 것이고, 아마 내가 먹을 양식이 눈 앞에 있고, 함께 할 누군가 옆에 있는 그 상태가 행복한 순간. 행복한 순간은 찾아오는게 아니라 내가 발견해내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나요.
어제 저는 시어머님 제사 준비하고 모시느라고 다른 일정 없었고 오늘도 강추위라고 해서 우리 꼼짝 말고 집에 있어야할 구실만 늘었구나 하고 있답니다. 책읽는나무님, 그래도 기분 좋지 않을 이유는 없겠지요? 이렇게 인사 나눌 수 있는 알라딘 친구분들이 계시니까.
가족과 함께 행복한 성탄절 되세요~~~

2021-12-30 1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21-12-31 05:23   좋아요 1 | URL
저도 사실 제목때문에 읽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
내 인생에서 그늘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떠올리며 없었으면 더 좋았겠다, 더 깊이 묻어두고 싶어하지 않았던가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제목이지요.
다른데 딱히 갈곳 없기도 하고 정도 많이 들어서 저는 여기 계속 있을 것 같아요. 오래동안 모습을 안보이시는 서재지기님들 저도 가끔 생각나고 궁금하고 그래요. 좋은 일로 바쁘시거나 아니면 안좋은일로 침잠해 계시거나, 건강이 안좋으신건 아닐까 염려도 되고요. 그러다가도 언젠가 다시 밝은 모습으로 돌아오실 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환해집니다.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말이 자주 떠올라요. 행복을 기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겸손하시고 사려 깊으신 점 저에게는 늘 귀감이 됩니다.
오늘은 2021년 마지막날이어요.
여긴 눈이 많이 온답니다.

평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