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일본 소설들은 참 빨리 읽히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들은 말이다. 이 책,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소재의 독특함, 소설 속의 인물들의 독특함만으로도 벌써 매력있는 책이다. 교통사고로 80분 까지만 기억이 지속되는 나이든 수학 박사와 그 집에서 출, 퇴근 파출부로 일하는 20대 후반의 여자, 그리고 그녀의 열살짜리 아들이 등장한다.

감정 묘사를 직접 드러내놓고 하기 보다는, 주위의 사물이나 날씨, 풍경 묘사를 통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잘 전달받게 하는 작가의 글 쓰는 방식도 매력있다. 몸도 기억력도 온전치 못한 쇠약한 노박사가 여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어떠했는지 작가는 단 한줄도 쓴 적 없으며, 파출부 여자가 박사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없다. 또한 그녀의 열살 짜리 아들을 귀여워하고 보살펴주려는 박사의 모습, 어리지만 할아버지 뻘 박사를 나름대로 배려하려는 아이 마음의 바탕이 무엇이라고 말한 적도 없다. 이심전심으로 전해지는 이 들의 사랑이 그저 따뜻하고 애틋하기만 한다.

중학교때 수학 선생님께서 어느 날 칠판에 쓰셨다. '수학은 신(神)의 학문이다.'라고. 짖궂은 아이들은 당장에 '에이~~'하고 장난스럽게 대꾸했지만 그러면서도 어딘지 가슴 속으로 날카롭게 꽂혀드는 말이었기에 수십년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생각이 난다. 세계와 소통하는 방식으로서의 수, 이 세상의 열쇠를 찾아나가는 방식으로서의 수, 신의 의도와 그 의도를 간파하는 인간의 노력.

박사가 사랑한 것은, 수식을 통해 자신과 이 세상 사이에 소통되고 있는 그 무엇에 대한 믿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여자, 그리고 아직 꿈을 펼치기 전 단계에 있는, 그 꿈을 소중하게 보호해주어야 할 그녀의 어린 아들 역시 박사가 사랑한 대상이었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