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길 위에서 자란다
김선미 지음 / 마고북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던 사람답게 이 책은 여정의 에피소드보다 저자의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게 은근히 눈에 들어오는 책이다. 초등학교 3학년, 5학년 두 딸을 데리고 경기도 광주의 집 앞에서 시작해서 3번 국도를 따라 제주도 남단 마라도까지 열나흘에 걸친 자동차 여행 기록인 이 책은 곤지암-이천-장호원-충주-괴산-상주-김천-거창-함양-산청-진주-사천-남해-순천-고흥-제주, 마라도 까지, 출발 전 날까지도 떠날까 말까, 할수 있을까 없을까, 날씨가 좋을까 궂을까, 이만하면 준비가 되었나 아닌가 등등, 소심한 그러나 한번 세운 계획을 지켜 나가보려는 저자의 강단있는 성격을  잘 드러내며 시작된다.

여자 셋이 떠나는 여행. 눈을 통해 들어오는 경치를 즐기며 맛있는 것 찾아 먹고 편안한 잠자리가 보장된 그런 여행이 아니라서 아직 어린 두 딸들은 불만도 많았고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엄마로서의 어려움이 여기저기 잘 드러난다. 두 살 터울이지만 서로 다른 자매의 성격, 감성적이어서 토라지기도 잘 하지만 속이 깊은 첫 딸과, 언니보다 자신을 더 부각시키고 싶어하는 애교넘치는 둘째 딸,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엄마의 마음, 그러지 말았을걸의 연속인 저자의 마음 속 갈등 등, 여행기가 늘 그렇듯 어디 단순한 여행지 기록이랴. 이런 맛에 더 재미를 주는 듯 싶다.

여행 일정 중 많은 시간을 보낸 제주도와 마라도 부분을 읽으면서는, 제주도에 두번이나 가보았지만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호텔에서 자고, 테디베어 박물관, 여미지 식물원 등, 정해진 관광 코스를 따르기 보다, 제주도의 올록볼록 '오름'에 올라보고, 자전거로 제주도 땅을 달려보고 싶으며,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도 가보고 싶다. 섭지코지에 올라 성산일출봉을 내려다 보고 싶으며,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으며 제주도는 꼭 항공편으로만 가야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어 메모해두었다. 남해 육지에서 카페리로 3시간 50분 걸린다는데, 자동차도 함께 승선할수 있다는 것. 또 하나, 사는 동안 불운했던 화가 이 중섭 기념관에 가서 그가 살던 방에 걸려있는 <소의 말>이라는 시를 읽어보고 싶다. 좋은 그림은 보는 이의 가슴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이야기들을 길어올리는 것이라고 저자는 쓰고 있지만, 그것이 어디 그림에만 해당되랴.

마지막 여행지 제주도를 떠나 돌아오는 배에 오르며 쓴 구절이다.
' 이제 정말 섬을 떠날 시간이다. 섬은 고립과 단절의 상징일때 더욱 애절한 그리움이 남는다. 다리를 통해 바다를 건너간 남해도보다는 차를 배에 싣고 건너온 제주도가, 그리고 차마저 두고 다녀온 마라도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깊이 남을 것이다...(240쪽)'

일정이 고생스러웠는지 다시는 여행 안 갈거라고 하던 두 딸은 그 해 겨울에도 영하20도를 기록하는 강원도 평창의 눈밭에서도 야영을 했다고.
저자는 막상 길위에서 자란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일찌감치 성장판이 굳어버린 엄마, 자신이었다고 고백한다.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대관절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보게 한다.

(마노아님, 책 감사해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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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6-14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미 해보셨군요. 섬사이님의 대학다니실 때 얘기가 궁금해지는데요? ^ ^

마노아 2007-06-15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들이 가진 추억과 경험이 너무 부러웠어요. 우리에게도 이런 멋진 여행의 기회가 언젠가 올 테지요? ^^

hnine 2007-06-15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기회는 늘 우리 주위에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못 잡고 그냥 흘려 보내는 것 같아 아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