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행성에서 너와 내가 사계절 1318 문고 123
김민경 지음 / 사계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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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이 책이 내 손안에 들어와 오랜만에 청소년소설을 읽는다. 예나 지금이나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을 좋아한다. 이제 내 아이도 청소년기를 지났건만 그런 것 상관없이 내가 청소년기일때보다 어른이 되고 나서 더 많이 읽은 듯 하다. 작가의 이름이 생소하고 이 책에 대한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음에도 책이 손에 들어오자 마자 읽은 것도 여전한 그 애정때문이다. 청소년소설은 아주 좋음 아니면 보통, 이 둘중 하나인것 같은데 이 책은 과연 어떨까 기대를 하면서.

 

두명의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고등학교 1학년 새봄이 (여)와 지석이 (남). 둘은 같은 고등학교 클라스메이트인데 4년동안 학교를 쉬다나온 새봄이는 지석이보다 한살이 많다.

그런 새봄이가 지석이에게 읽어보라고 권해준 책을 지석이가 망설이면서 읽기 시작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그 책은 다름아닌 허먼 멜빌의 <모비딕>. 새봄이는 왜 모비딕을 읽어보라고 했고 이것은 둘 각자의 인생에, 그리고 둘 사이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사실 새봄이의 경우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아니라 인생의 큰 고비를 넘기게 해주는 리더 역할을 이 책이 해준다.

좋아하는 새봄이가 권해주긴 했지만 두껍고 재미없어보이는 책을 앞에 두고 지석이는 처음에 망설이지만 몇장 읽어나가며 이 책의 묘한 매력에 빠져든다. 그리고 3월초 새봄이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린다. 이후 내용은 1인칭 서술 형식으로 지석이가 모비딕을 읽으며 이해해가는 과정이 나오고 중간 중간 새봄이의 지난 일기가 삽입됨으로써 새봄이의 지난 4년에 대해 설명이 된다.

새봄이의 엄마는 4년전 새봄이가 열네살때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엄마의 발인날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다. 이후로 학교도 휴학할 정도로 마음을 잡지 못해 어려운 시기를 지내던 새봄이, 그렇게 4년을 보내고 마침내 다시 학교에 들어가게 되는데 여전히 적응이 힘들고 집중이 안되어 뛰쳐나가고만 싶다. 뛰쳐나가고 싶은 기분이 들때 새봄이는 우연히 운동장을 달리기 시작하고, 그렇게 혼자 스스로 버티려고 애쓰던 어느 날 누군가 옆에서 같이 뛰어주는 일이 일어난다. 그렇게 새봄이는 지석이와 친해지게 된다. 이러면서 모비딕이라는 책의 역할이 시작되는데, 모비딕이라는 고전 한권이 소설의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인용되며 줄기를 이루어나가는 것이 특이하다. 간혹, 모비딕이 이 소설을 위해 이용되었나, 이 소설이 모비딕을 위해서 쓰여졌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새봄이가 모비딕에 심취하게 된 경위가 그렇게 필연적인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교실을 뛰쳐나와 찾아간 도서실 문 앞에 다른 아이들이 책 읽고 붙여놓은 포스트잇을 보게 되고 그 중 하나가 모비딕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문구였다.

인간은 누구나 포경 밧줄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모든 인간은 목에 밧줄을 두른 채 태어났다. 하지만 인긴들이 조용하고 포착하기 힘들지만 늘 존재하는 삶의 위험들을 깨닫는 것은 삶이 갑자기 죽음으로 급선회할 때뿐이다.

엄마의 죽음을 계기로 삶과 죽음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던 새봄은 '삶이 죽음으로 급선회할 때뿐'이라는 문구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고 무시무시한 고래 눈이 표지에 크게 그려져있는 모비딕이라는 책을 읽어보기로 한다. 또하나의 계기가 있다면 세월호 추모식 포스터에 그려져 있는 고래이다. 그 포스터에서 고래의 모습은 모비딕이라는 책 속에서의 고래와 아주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고래가 바다에 떠있고 주위에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는 모습, 고래가 아이들을 태우고 날아오르는 그림이었다. 고래를 보고 한가지를 이렇게 다르게 해석할수 있는가 새봄은 의문을 가지게 된다.

모비딕을 다 읽은 후 새봄은 이 책은 죽음이 아닌 '삶'에 관한 책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살고 싶어졌어. 내가 겪어 보지 못한, 내가 모르는 세상이 아직도 무궁무진하다는 걸 알았어. 나는......이미 모든 걸 다 겪었다고 생각했거든." (146쪽)

열여덟살에 이미 모든 걸 다 겪었다고 생각했던 새봄은 책을 읽으며 내가 모르는 세상이 아직도 무궁무진하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더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열여덟살이 아닌 내 나이에도 다시 새겨보게 되는 말이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아직도 무궁무진하다는 것.

이 책 제목이 <지구 행성에서 너와 내가>가 된 것에 대한 설명은 지석이와 새봄이의 다른 대화에서 나온다. 역시 모비딕에 관해 둘이 나누는 대화이다.

"맞아.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 지구라는 행성에서 수많은 종들과 살아가는 인간의 자세, 인간의 시선에 대해서 말이야." (166쪽)

 

책 전체에 걸쳐 모비딕 구절이 자주 인용되고 그 구절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나오는 건 이 소설의 특징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작품 전체를 한정된 틀에 갖히게 할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어떻게 인용되었든 본 작품의 서사가 뚜렷하고 강렬하면 주와 부가 혼동될 염려가 없겠으나 아쉽게도 이 작품은 그정도의 뚜렷하고 독창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다만 청소년기 주인공들답게 때묻지 않은 순수한 동기와 방법으로 자기의 문제를 헤쳐나가는 모습이 전형적이고 교과서적인 것 같으면서도 또 그래서 새롭게 보였다. 이 세상 청소년이 모두 새봄이와 지석이처럼 맑고 순수하고 긍정적인 영혼을 지켜나갈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책으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해나갈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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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10-29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표지가 참 예뻐요. 색연필로 그린 것 같은 느낌도 좋네요.
그렇지만 내용은 밝고 가볍지만은 않은 모양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hnine 2020-10-30 04:43   좋아요 1 | URL
그래도 해피엔딩이랍니다.
다만 너무 교과서적이고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제 개인적인 소감이네요.
EBS에서 이책이 느닷없이 집으로 배송이 되어 와서 읽게 되었어요. 제가 신청한 적은 없는데 무슨 선물로 온 모양이어요.

2020-10-29 2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30 0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30 0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