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 없는 법칙이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법칙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법칙이라고 하니 딱딱하게 들릴지 몰라도 쉽게 말하면 어떤 패턴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즉

규칙적이고 반복적이어서 예측 가능한 패턴으로서 이것은 물질에도 존재하지만 생명현상에도 존재한다.

이렇게 말로 하면 과학이 아니다. 이것을 객관적으로 나타낼 수 있어야 하고 그래서 보편성을 증명할 수 있을때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자손이 부모 세대를 닮는 현상이 무작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일어난다는 것, 그래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손도 미리 그 형질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아내었고 그 규칙성을 숫자의 형태로 구체화하여 발표한 사람, 오스트리아의 수도사 그레고르 멘델이다. (그 당시는 오스트리아였으나 지금은 체코땅 브르노 -Brno- 이다).

 

막연하게 꿈꾸고 있다가 체코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게 된 마지막 방아쇠는 우연히 보고 있던 EBS 교육방송이었다. 과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은데 마침 멘델에 대한 것을 하는 날이었나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학자 멘델. 이유는, 유전학에 대한 개인적 관심과 애정도 있지만 멘델이 걸어온 평탄치 않은 길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넉넉치 않은 가정, 처음부터 탄탄대로 과학 교육의 혜택을 받을만큼 눈에 띄지 못했던 사람. 오히려 시험에 자꾸 떨어지자 시험 노이로제까지 있었던 심약한 사람. 집안에선 장남으로서 동생들을 돌볼 책임까지 있었던 사람.

당시 교육의 기능까지 일부 담당했던 수도원의 기능에 따라 수도사가 되면 성직자로 봉직하면서 원하던 공부도 할 수 있을 거라는, 막판의 돌파구로 들어간 수도원이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수도원 한 구석에서 식물을 재배해가며 관찰하고 기록하며 혼자 수십년의 세월을 보낸 끝에 발견한,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결과들을 정리하여 학회지에 발표했으나 아무도 눈여겨 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멘델은 자신이 평생 해온 일이 훗날 전 세계에 어떤 큰 파장을 일으킬지 모르는 채로 눈을 감았다.

 

갈수록 돈이 되는 연구, 상업성이 있는 프로젝트, 결과 중심의 연구에 치우쳐가는 현대 과학의 트렌드를 보면서 (물론 모두 그렇진 않다) 멘델의 저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끌고간 연구를 본받고 싶었다. 과학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저런 마인드여야 한다고. 가는 길이 멀고 험난하더라도 저런 순수한 마음이 포기하지 않는 길잡이가 되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런 과학자가 비단 멘델 한 사람은 아니겠지만 그 당시 내 눈에 들어온 사람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TV에서는 마침 멘델이 살고 일하던 수도원 사진이 나오고 있었다.

"가서 직접 봐야겠다!" 불현듯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고, 그날로 체코행 비행기 표를 예약하게 되었다.

 

그렇게 떠난 체코 여행이었다. 그런데 왜 브르노 가는 일정을 하필 여행 마지막 날로 잡았던 것일까. 숙소가 있던 프라하에서 브르노까지는 기차로 약 3시간 거리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트램을 갈아타면서프라하 중앙역까지 가서, 프라하 중앙역에서 브르노행 기차를 탔다.

브르노는 프라하 다음으로 체코 제2의 도시라고 알려져 있는 곳인데, 나는 멘델이 일하던 수도원 이외엔 어디에도 관심이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보니 브르노는 프라하와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대학 도시라서 그런지 어딘가 더 활기 있고 젊은 도시 느낌이랄까. 역시 시내를 가로질러 다니는 트램.

 

 

 

 

 

 

 

St. Thomas Abbey 라고 구글맵에 치고 찾아갔는데 정작 도착한 곳은 내가 알고 있는, 사진으로 본 그 수도원 모습이 아니었다 (↓). 하얀 벽의 그야말로 보통 보는 성당의 형태를 한 건물이었고, 멘델이 있었다던 그 붉은 벽돌의 수도원이 아니었다.

 

 

 

 

 

 

 

나중에 알았다. 멘델이 있던 그 수도원은 지금은 Mendel Museum으로 아예 이름이 바뀌어 그 명칭으로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겨우 택시를 잡아타고 10분 정도 갔더니 거기에 내가 찾던 그 붉은 벽돌의 수도원이 있는 것이다. 멘델이 수도사로 있었고 그가 완두를 재배해가며 실험을 했던 정원이 있는 그 수도원이다 (↓).

 

 

 

 

 

 

반가운 마음이 가시기도 전, 어째 이상하다. 사람들도 없고 분위기가 썰렁해서 보니 내가 간 월요일이 하필 휴관일.

 

 

 

 

 

 

 

 

 

아, 내가 왜 체코엘 왔는데.

그때부터 내 입이 댓발은 나왔지만 누구를 탓하랴. 미리 그 정도 정보도 없이 간 내가 모자랐지.

 

멘델이 실험하던 정원과 기념관엔 들어갈 수 없었기에 할 수 없이 수도원 둘레만 돌아보았다.

 

 

 

 

 

 

 

 

 

 

 

아직도 낯설다. 영어가 맨 앞이 아니라 체코어 설명이 맨 앞에 나오는 모든 안내판. 독일어까지 설명이 있는 경우엔 심지어 독일어 다음, 맨 끝이 영어이다.

 

 

 

 

 

익숙한 저 그림.

 

 

 

담쟁이 덩굴로 덮인 위의 저 건물은 Mendel's Orangery인데 이를테면 멘델이 연구실로도 쓰고 손님도 맞고 휴식을 취하기도 했던 장소라고 한다. 안에 들어가면 난로, 책상, 접이식 테이블, 의자, 그림 등이 있다고 설명에 나와있었다.

 

아래 사진은 예전의 모습이다.

 

 

 

 

멘델은 순전히 노력형 인물이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날 돌아보면서 여러가지 기록과 포스터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니, 노력도 했지만 이 사람 역시 영재 기질이 다분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유전학 뿐 아니라 과학 다방면에 관심이 많아서, 누가 시키지도 않는, 알아주지도 않는 연구를 평생 해온, 그야말로 타고난 학자 타입이었던 것 같다.

아래 기록은 그의 기상학자로서의 기질을 보여주는 손글씨 기록인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 쓰듯이 기록을 했다고 한다. 단정한 손글씨.

 

 

 

 

 

 

멘델 박물관을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으니 시간이 남아 브르노의 다른 곳을 가봐도 좋았을텐데, 실망감이 커서 그냥 프라하로 돌아오는 기차를 탔다. 겨우 오후 2시 7분.

 

 

 

Perseverance and immense dilligence in whatever he did helped him achieve extraordinary results in a number of areas.

 

멘델에 대한 안내글 중 일부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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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8 10: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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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8 15: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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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8 15: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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