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투성이 과학 - 지금 이 순간 과학자들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진짜 과학 이야기
스튜어트 파이어스타인 지음, 김아림 옮김 / 리얼부커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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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란 무엇일까. 탐구하는 방법이다. 사실을 입증하여 보편타당성을 보이기 위한 방법이다.

저자인 스튜어트 파이어스타인은 컬럼비아 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로서 대중의 과학적 이해를 돕는 프로그램에 관련된 활동을 해오며 연구실에서 알아낸 실험적 결과뿐 아니라 과학의 본질에 대한 것, 과학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에 대한 강연과 저술을 해오고 있는 사람이다. 이 책을 번역한 분 역시 생물학을 전공하신 분. 읽기 전 부터 신뢰가 갔는데 과연. 유익한 내용이 술술 읽히기 까지 하니 더 바랄게 없는 책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우리말 제목은 <구멍투성이 과학>이라고 되어 있지만 원제는  Failure. Why science is so successful. 우리 말 제목에 비해 다소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제목이다. '구멍'이란 'failure', 즉 '실패'를 말하는 것으로 구멍투성이 과학이란 제목은 실패가 과학에서 갖는 특별한 의미를 뜻한다.

혹자는 과학적으로 얻어진 결과라면 실패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종교적인 믿음이 아닌 이상 이 세상에 어떤 것도 실패나 오류란 있을 수 없다는 생각부터 놓아야한다. 물론 실패를 목적으로 하진 않지만 내가 지금 얻은 이 결과도 맞지 않을 상황이 있을 수 있고 그런 상황에 대한 연구와 가능성을 계속 열어놓어야 한다는 자세, 그런 자세가 과학적인 실패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저자는 실패는 생각보다 폭넓고 심오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실패는 성공의 일부라고 보았다. 그 이유는 첫째, 실패는 더 큰 통찰을 이끌어 내고, 둘째, 거의 예측 불가능한 영감을 주고, 세째, 우리가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보도록 하기 때문이다.

실패 없이 곧바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우리가 들을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하며 쓸 만한 조언도 갖고 있지 않다.

핵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실험을 통해 가설을 증명하는 데 성공하면, 여러분은 측정을 한 데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가설을 증명하는 데 실패하면 여러분은 뭔가 발견을 한 것이다."

과학분야에서는 실패를 해도 잘 삼키고 소화해야 할 뿐 아니라 실패 자체를 즐겁게 맛보는 일도 필요하다. (36쪽)

여기서 말하는 실패는 예상하지 않은 결과가 나온 것을 말하지 부주의나 경험 부족으로 생기는 '실수'와는 구별된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특히 과학분야에서 실패를 다르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격려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내용이 책의 중반을 넘어가서 본격적으로 나온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163쪽)

과학에서 창의성은 실패로부터 비롯하기 때문이다. 순수한 과학의 과정이란 그래야하는데 문제는 요즘의 연구는 실패할 만한 것을 피해서 접근하고 시도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고 그것은 현장에 있는 많은 과학자들도 느끼고 있는 점이라 생각한다. 연구비를 따기 위해서는 연구계획서를 내야하고 누구에게 연구비가 돌아가느냐 결정되는데는 경쟁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예상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는 계획서를 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실패한 결과를 논문으로 내지는 않는다. 예상하던 결과가 예상하던 원리에 의해 얻어졌을 때 그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게 되고 연구 실적은 곧 논문 편수와 논문의 질로 평가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니 순수한 연구에 대한 열정은 식고, 경쟁력과 목적을 달성해야겠다는 의욕만 활활 타오르는 현장이 되어있다.

결과를 보는 자세도 중요하다. 과학적 실험의 결과는 늘 객관적인 해석이 따를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도하지 않아도 그렇게 보이게 하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고 원하는 결과만 수집하게 하기도 한다.

물리학자 파인만은 과학의 실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첫번째 원칙은 스스로를 속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187쪽)

과학자의 태도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외일지 몰라도 '정직성'이라고 생각한다. 그 정직성의 대상은 다름 아닌 연구자 자신이라는 것도.

과학이라면 갖춰야 할 요건중에 fallibility 라는 것이 있다. 반증가능성이라는 것이다. 과학을 신뢰한 만한 이유는 바로 과학이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가설을 설정하려면 해당 가설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기각할 수 있는 실험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어떤 가설을 확실하게 반증할 수 없다면 그것은 받아들일 만한 가설이 아닌 것이다. 가설이란 부정적인 시험 결과를 허용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가설이 틀려야만 한다는 뜻이 아니라 틀릴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을 과학이게 하는 "반증가능성"이라는 것이다. 과학이 실패를 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근원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제는 틀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라마르크 유전학도 최근에 후성유전학이라는 분야를 통해 귀환한 예를 들면서 저자는 실패가 영원히 실패일까 묻고 있다.

최근 영국의 유명한 과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과학자들이 모험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고 특이한 아이디어를 감당할 여력이 없이 좁은 길만 계속 고수한다고 한다. 인류가 20세기와 그 이전에 이뤘던 위대한 과학의 진보는 다르게 사고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이 있었고 이들에게 연구의 가치나 쓸모를 성급하게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지금과 매우 대조적인 환경이다. 그래서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때보다 훨씬 많은 숫자이고 어쩌면 과도한 인력이 과학이란 분야에 매달려 있음에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과학적 방법론이 무엇인지 다시 강조하며 맺는다. 진정한 과학적 방법론이란 의심과 불확실성, 무지, 실패를 폐기하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끌어안고자 하는 것이다. 과학은 단순한 사실들의 집적이 아닌 과정으로 바라보며 명사가 아닌 동사로 여기는, 즉 계속 진행되어 가는 과정으로 여기는 것이다.

인간 복제가 거론되는 세상이면 뭐하나. 그것이 과학이 아니고 기술에 불과하다면. 근본이 망각된 첨예화된 기술에 불과하다면. 근본을 무시하고 오래, 멀리 가는 것이 있던가.

오랜만에 과학에 관한 후련한 에세이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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