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9 - 5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9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오십을 갓 넘긴 나이, 아직도 그는 아름다웠으나 몹시 수척했다. 십여 년 동안 놓았던 수틀을 다시 매어놓고 수를 시작한 것만 해도 허약해진 자기 자신을 추슬러보려는 그의 심중의 일단을 넘볼 수 있었다. 벌써 삼 년이 넘어가려 하는 길상의 감옥살이, 어쩌면 서희가 길상보다 먼저 지쳐버렸는지 모른다. (49쪽)

 

서희가 간도에서 진주로 귀향한 후 서희 집 일을 맡아해주던 장연학은 서희 집에서 독립하여 진주에 남강여관을 경영한다. 위의 구절은 장연학이 오랜만에 서희에게 들러 문안을 드리며 본 서희의 모습이다.

토지에는 워낙 등장인물이 많다보니 어느 시점부터인가 딱히 서희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지만, 잊을만할때쯤 등장인물들이 서희를 중심으로 한번씩 엮였다 풀어졌다 한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항일 운동에 두드러진 역할로 행동을 보여주는 길상은 아니지만 아무튼 길상은 연달아 옥살이를 하는 것으로 나와 가족과 떨어져 지낸다. 서희와 길상 사이의 두 아들 은 모두 장성하여 장남 환국은 이미 가정을 꾸리고 있고 차남 윤국은 기화의 딸 양현과의 혼인이 성사되지 못하자 학병으로 지원하게 된다. 양어머니인 서희와 윤국의 간곡한 뜻에도 불구하고 양현이 정작 마음에 두고 있는 상대는 백정 출신 송관수의 아들 송영광이다. 영광도 양현을 좋아하지만 신분 차이, 다리 불구, 번번한 직업을 못갖고 있는 처지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영광은 양현의 뜻을 거부한채 양현이 있는 인천을 떠나 멀리 만주로 간다.

집나간 친엄마 양을례를 따라갔다가 거기서 알게 된 일본군 중위로부터 성병에 걸려 피폐해진 채, 자기가 무슨 병인지도 모른 채 할머니집을 찾아온 남희를 장연학은 병원에 데려가 비밀리에 치료를 받게하고 도솔암에서 요양을 시킨다.

토지 역시 사람 사는 세상 이야기이니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관계도 여럿 나오는데, 그중 한 쌍이 정신이 깨인 일본인 오가타와 동경유학생이며 항일의식이 투철한 신여성 유인실이다. 오가타 모르게 혼자 아이까지 낳은 유인실은 아이를 조찬하에게 부탁하고 만주로 독립운동을 하러 떠난다. 유인실의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고 있는 조찬하는 아이가 커감에 따라 아버지인 오가타를 만나게 해주는 기회를 만든다.

아직 마지막 한권이 남아있긴 하지만 19권까지 읽은 소감으로는, 토지라는 이 길고 긴 작품은 기승전결 구분되며 파도치듯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끊이지 않는 잔물결을 계속 만들어내며 큰 바다를 보도록, 그렇게 쓰여진 작품에 가깝지 않나 생각된다. 작품의 말미에 오니까 더 그렇다. 마지막 한권, 400여쪽을 남겨두고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게, 언제나 그렇듯이 조상부터 이어져오는 자손들의 북적거리는 삶의 이야기가 흘러가듯 펼쳐진다. 부모 세대, 또 그 부모세대의 과보로부터 좀처럼 자유롭지 못한 자손들의 삶이다. 그건 최참판가의 서희도 그렇고, 백정의 자식이라고 차별받는 송영광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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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9-07-16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장정의 끝이 이제 보이는군요!!
대단하십니다^^
라디오에서 모프로에서 4주년의 취지에 걸맞게 축하받고 싶은 사연을 보내달라고 했더니,어떤 청취자가 토지를 읽는데 4년이 걸렸다고 축하받고 싶다고 한 사연이 생각납니다.
hnine님은 4년이 아니어도,토지를 곧 완독한다는 것은 참...뭐라 말로 표현할 수가 없네요~미리 축하드립니다^^
아..저는 언제 읽으려나요??ㅋㅋ

hnine 2019-07-17 04:51   좋아요 1 | URL
1권부터 읽는 중간중간 다른 책도 읽어가면서 쉬엄쉬엄 읽어갔는데 어느 덧 마지막권을 읽고 있네요.
읽으면서 격하게 흥분한 때도 딱히 없고, 지루하게 읽은 적도 없고, 읽을만 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 만난 제 친구는 제가 토지 읽는 것을 보더니 자기가 가지고 있는 책 표지와 다르다면서,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토지 두 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물론 완독했고요.
책읽는나무님께서도 언젠가 읽게 되실겁니다. 격려해주셔서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