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
켄트 하루프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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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 번역본이 소개된 것이 2017년이니까 아주 신간은 아니라서 읽기 전부터 제목과 표지가 눈에 익다. 우연히 즐겨듣는 팟캐스트에서 이 책이 소개되는 것을 듣고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제목의 소설, 에세이가 적지 않은데 이 책은 미국 작가 켄트 하루프의 장편 소설이다. 1943년에 태어난 그는 이 책이 미국에서 출판된 다음해인 2014년, 지병인 폐질환으로 71세의 나이를 끝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니까 책 제목은 축복이라고 되어 있지만 죽음에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내용의 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제목이 왜 축복일까.

 

미국 콜로라도 주 한 마을에서 철물점을 하고 있는 대드 루이스. 77세 나이에 의사로부터 이제 살아있을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다는 말을 듣는다. 병원에서 치료받을 단계도 아니고 이제 집에서 쉬며 조용히 생을 정리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의사의 선고를 듣고 흥분하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없다. 그가 우는 장면은 뒤에서 딱 한번 나오는데 177쪽까지 이야기가 진행된 후이다. 어떤 특별한 상황은 아니었다. 자기가 경영하는 철물점을 차를 타고 지나가던 중이었다. 손님이 물건을 구입하고 있었고 점원이 돈을 받고 영수증을 떼어주는 것을 본 것 뿐이었기에 옆에 타고 있던 아내는 남편이 우는 이유가 궁금해서 물었지만 그는 대답을 못하고 울기만 한다.

나중에 집에 와서야 말한다. 거기서 내가 보고 있던 것은 바로 내 인생이었다고.

아까 상점 앞에서 내가 울었던 것 말이오. 나로 하여금 울음을 터뜨리게 한 그 일 말이오. 거기서 내가 보고 있던 것은 바로 내 인생이었소. 어느 여름날 아침 앞쪽 카운터에서, 나와 다른 누군가 사이에 오간 사소한 거래 말이오. 몇 마디 말을 주고받는 것. 그냥 그뿐이었소. 그런데 그게 전혀 쓸모없는 일이 아니었던 거요. (182쪽)

사소한 일상, 지금 내가 보내고 있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 순간이 바로 죽음을 앞두고 나를 울릴 시간들이라니.

대드 외에 여섯 명의 여자가 나온다. 대드의 아내 메리, 대드의 딸 로레인, 오랜 이웃 버타 메이와 버타 메이가 돌보는 손녀딸 앨리스, 그리고 윌라 존슨과 그녀의 딸 에일린이다. 버타 메이는 암으로 딸이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은 노부인이고 자기 외에는 혼자 남은 어린 손녀딸을 맡아 돌볼 사람이 없다. 윌라 존슨은 오래전에 과부가 되어 혼자 살아 왔었고 지금은 사십년 교직에 있다 은퇴한 그녀의 딸 에일린과 함께 살고 있는데 에일린도 이미 육십이 넘은 나이.

대드가 죽음을 맞는 과정이 큰 줄기를 이루지만 큰 줄기와 더불어 외로운 아이 앨리스의 마음을 열어주고 가족의 역할을 조금이나마 해주려고 이웃들이 마음 쓰는 이야기, 마을의 젊은 목사와 주민들 사이의 대립, 수십년전 집을 나간 대드의 아들 프랭크,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혹시 프랭크가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바람 등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맞물려 진행된다.  이 이야기들이 어쩌면 그렇게 잘 어울리게 엮여있는지.

사람의 심리를 풍경 묘사로 대신하는 것은 켄트 하루프의 강점 중 하나가 아닌가 할 정도로 책 여기 저기서 눈에 띄었다. 특히 300쪽부터 시작되는, 네 여자가 개울에서 함께 수영을 하는 장면은 무심한듯 객관적인 기술로 보이기도 하지만 나이 들어감에 따른 육체의 변화 묘사를 통해 불가항력적인 세월의 흐름, 수영이라고는 해본적이 없는 앨리스에게 처음 수영을 가르쳐주는 과정을 통해 나이든 세대가 이제 자라나는 세대에게 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작가의 의도가 보이는 명장면으로 꼽고 싶은 부분이다.

후반부에서 마을 주민들로부터 배척받고 목회 활동을 중단하고 있는 목사 라일에게 대드의 가족은 대드를 위한 마지막 기도를 부탁한다. 바로 benediction, 축복의 기도이다.

저희의 마음이 이 자리에 계신 대드 루이스와 더불어 평온하기를 비옵니다. 이 방안에 평온함과 사랑과 조화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 집 바깥의 저 모든 힘들고 충돌하는 세상도 똑같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당신이 더는 고통이나 후회나 불행이나 가책이나 스스로에 대한 회의나 걱정 없이 이 육신의 세계를 떠나실 수 있기를, 모든 시련과 곤경과 근심을 놓아두고 떠나실 수 있기를 빕니다. 오로지 당신이 평온하시기를 빕니다. 이 방안에 있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도 평온하기를 기원합니다. 이제 저희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모든 축복을 구하나이다. 아멘. (425) 

대드 루이스가 이 세상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듣는 말이다. 굳이 종교와 연관지어 생각하지 않더라도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죽음으로 떠나보내는 순간을, 이렇게 축복을 구하며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죽기 전까지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작가는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어떤 이야기도 아니고 어찌 보면 지루하고 결말이 이미 다 밝혀져 있는 이야기를 소재로 선택했을까. 대단한 업적이 있는 것도 아닌 평범한 한 노인의 죽음을 통해, 본인 역시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의 의미를 채우려 했던 것일까.

 

 

 

 

 

* 영어의 "benediction"은 우리말로 "축복" 보다는 "축복의 말, 축사"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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