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5 - 4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5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5권까지 왔다. 이제 토지는 주요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기 보다 인물들을 번갈아 등장시키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느낌이다. 1권부터 등장한 인물들을 다 합치면 적은 수가 아니라서 그들을 한번씩 등장시키며 근황을 펼쳐도 이야기 거리로 충분하다.

15권의 배경은 주로 간도. 간도란 지형적으로 백두산 북쪽의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인데 지금은 이 이름이 사용되지 않고 있고 연변, 길림성 등이 예전의 간도 땅을 대신해 쓰이고 있지 않나 싶다. 간도의 북쪽 위로는 만주 땅이 있다.

지형에 대한 것은 그렇고, 조선과 관련된 간도의 역사적인 내력에 대해 토지에서 언급하고 있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한말 (韓末), 일본이 조선을 먹어 들어올 무렵, 의병 봉기에 이어 오늘 현재까지 (토지 15권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1930년대를 말한다) 가히 민족의 대이동이라 할 만한, 수많은 조선인들이 고향을 버리고 남부여대, 이주해갔고 항쟁의 터전으로 부상된 곳, 조선 민족에게는 서사시적 무대이며 아득한 옛적부터 민족의 혈흔이 점철된 그곳 간도의 땅을 중국에게 결정적으로 넘겨준 것은 일본이었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두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등박문을 사살했던 그해, 1909년 청일 간간도협약을 맺음으로써 그 땅은 청국으로 넘어갔다. 말하자면 일본은 두 걸음 전진하기 위하여 한 걸음 후퇴한 것이다. (165쪽)

 

간도 내에 거주하는 유민중 조선인이 십만이요 청인이 삼만, 십 대 삼이었지만 그간 대국의 세를 믿고 청인의 핍박을 조선 백성은 겪어야 했고 그 고초는 오죽했겠는가. (1885년 무렵 상황, 168쪽)

 

간도협약 이후의 간도 사정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말하여 간도의 백만을 헤아린다는 조선인은 중국와 일본 사이의 쿠션 같은 존재였다. 중국은 조선인을 때림으로써 일본을 때리는 효과를 얻으려 했고 일본은 조선인을 방패 삼아 밀고 나간다 할 수 있었으니까. 조선인의 대부분이 소작농과 고용의 입장에서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데, 착취는 중국이, 탄압은 일본이,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간도 주민 자체가 완강한 저항세력이었기 때문에 일본의 경찰권은 강화되고 일본 경찰권의 강화에 불안을 느끼는 중국은 조선 독립운동을 지지하려 들었고 일본이 중국침략을 계획하는 만큼 조선인을 앞세워 토지매수를 공작하고 중국은 또 불안하여...조선인은 이중의 탄압에 신음해야 했다. (169-170쪽)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 낀 조선의 상황이 그려지면서, 이중 탄압에 신음하면서도 왜 간도가 독립운동의 한 거점이 되어야 했는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시대적 배경이 그러한지라 토지 15권에는 소설인지 역사서인지 모를만큼 시대 상황에 대한 설명이 자주, 많이 나온다. 그것이 일방적인 설명의 형태이든, 대화의 형태이든, 좀 딱딱하고 읽는 재미가 덜하긴 매한가지였지만 한번은 알고 넘어야 할 부분이라서 꾹 참고 읽었다.

다음은 이 시대 문학을 비롯한 예술의 경향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다. 남천택이라는 사람과 아예 이름도 김 모 라고만 되어 있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 형식을 하고 있다.

"복고주의든 신파든, 낭만주의일 때 뭔가 근사하고 진짜처럼 보이긴 하지. 지금 국내에서 뭐 한다 할 만한 사람들, 바이런이 아니면 하이네다." (206쪽)

이 당시 유행하던 낭만주의의 실체를 요약하고 있는데 '선봉장은 기독교요 동경 유학생, 후원자는 일본'이라면서, 낭만주의는 애국주의도 되고 감상으로도 변신하며 선동적으로 하부에까지 침투하는 장점을 갖고 있어서, 아주 대중적이기도 하지만 그건 착각이라고 단파한다. 

 

검 (劒)과 우애를 각각 한 손에 쥔 그들 (일본)의 역사, 그것을 환상화하고 교묘히 합리적으로 써먹는 낭만인지 감상인지 알쏭달쏭한 그것, 밟을 땅도 없는 만주벌판 설한풍을 가는 망국인, 임금노예가 된 일본 땅의 우리 조선인 노동자들, 한 (恨)이 있을 뿐이야. 오직 불변한 것이 있다면 내가 살아 있다는 자각과 죽을 것이란 그것 뿐이지. (206-207쪽)

 

페이지를 넘겨 되돌아가서 다시 한번 읽고 넘어가야 했던, 뼈있는 대화이다. 우리 나라에 낭만주의 사조가 들어와서 이용되는 과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되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친일귀족 조병모의 장남, 조강지처를 버리고 임명희와 결혼했으나 동생 찬하와 명희와의 관계를 의심하고 질투해오던 끝에 명희와도 헤어진 조용하. 그가 최후를 맞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인간형으로 그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작가는 그도 역시 한 인간이었다는 연민의 눈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시대 친일지식인의 한 비애를 조용하를 통해 그리는 듯 한.

 

이 권에서 계속 연급되는 두가지 사건이 1931년 만보산 사건과 1932년 홍구공원 사건 (윤봉길) 인데, 만보산 사건은 일본의 침략에 더해진 중국국내 사정, 만주군벌의 복잡한 내용, 조선 독립권의 활동이 배경이 되어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 들 중 하나였다. 조선은 이렇게 늘 중국와 일본의 세력 다툼에 끼인 나라였다. 뒤이어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상황이고 여기에 러시아, 서양 세력까지 얽히고 들어가니 복잡하지 않을 수 없다.

 

15권까지 왔으니 이제 다섯권이 더 남아있다. 20권까지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다 읽는다면 그 순간 느낌은 아마도 책을 다 읽었다는 느낌보다는 한동안 살던 동네를 떠나는 느낌이 들것 같다. 재미있는 부분도 있고, 지루한 부분도 있고,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런 것도 닮지 않았는가 우리 사는 일이랑.

 

15권은 이중 읽기 쉽지 않았던 권 중에 속한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소설보다 역사서 같은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인실이 꿋꿋하게 일어서는 모습도, 길상이 봉순과 이상현 사이의 딸 양현을 이부사댁에 처음 데리고 가서 인사시키는 대목도, 마지막 부분에 일본인 중에 이런 인물들이 과연 있었을까 싶게 코스모폴리탄적 시국관을 보여주는 일본인들 모습도, 부록처럼 읽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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