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5 - 2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5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얼마나 큰 약점인가. 절망에서의 탈출 뒤에 온 희열이란 또 얼마나 서글픈 찰나인가.

희망이 일렁이는 금녀 가슴에는 뜻하지 않았던 조바심이 아프게 저 바다의 파도가 방천을 치듯 쉴 새 없이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빼앗길 그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겐 불안이 없다. 지금 금녀가 가져보는 앞으로의 자기 운명에 대한 기대와 흥미가 과연 희망적인 것인지 그 어떤 실마리도 잡아보지 못한 채 방향도 알지 못한 채 악몽 속에 허덕여온 여자는 희망 그 자체를 겁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354쪽)

 

5권부터 이야기 배경이 하동 평사리에서 간도 용정으로 바뀌면서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에도 들고 남이 있다. 평사리에 남아있는 사람 (조준구 가족), 서희 일행으로 함께 용정으로 이주한 사람 (길상, 용이, 임이네, 월선, 김훈장), 이전부터 용정에 살고 있던 사람 (공노인, 옥이네, 심금녀 등) 이 등장한다.

평사리에서 소작을 부쳐 부와 권세를 유지하던 최참판가였다면 용정으로 와서 서희는 공노인의 조언과 길상의 도움으로 새로이 장사에 뛰어든다. 서희 자신이 살 거처를 새 터전에 새로 짓고 논을 부치는 대신 가게들을 지어 적당한 자들에게 장사를 하게 한다. 그러니까 요즘으로 치면 상가임대업이랄까. 어찌 양반가의 혈통으로서 장사로 치부할수 있냐며 김훈장은 노하지만 서희의 목표는 무슨 일을 해서든 다시 일어서서 고향에 돌아가 최참판가의 주인 자리를 되찾는 것이라는게 5권에서도 확실히 드러난다.

혼기에 이른 서희는 아버지 최치수와 친구 사이였던 이동진의 아들 상현이 서희를 마음에 두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의 구애는 의남매 사이를 맺자는 요청으로 돌려버리고 대신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자신의 목표를 향한 삶에 동반자로서 적격자라고 생각, 길상에게 먼저 결혼하자고 제안한다. 오히려 길상은 과수댁 옥이네에 마음을 품고 있던 차, 윤씨부인의 은혜를 떠올리고 오로지 자기 의지대로 자기 앞날을 결정할 수 없는 자신의 입장과 상황에 혼자 답답해하며 울분을 터뜨린다.

5권에 처음 등장하는 인물중 한 사람 심금녀. 무책임한 아버지때문에 야비한 김두수에 팔렸다가 도망쳤지만 사랑했던 윤이병에게서도 배신을 당하고 인질로 잡히기도 하는 고난의 여정을 걷는 처자이다. 맨 위 인용문장은 그 금녀를 묘사한 부분이다. 희망이 절망으로 반복되는 삶을 경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생각, 이해할 수 있는 심정이다. 작가는 과연 앞으로 금녀의 앞날을 어떻게 보여줄지 궁금하다. 희망 자체에 겁을 먹는 지경까지 그녀가 걸어왔을 삶이 상상만으로도 애처롭다. 

토지의 중심 인물은 꼭 서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가 뚜렷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가 확고한 그녀의 캐릭터는 단순히 착한 사람이냐 악한 사람이냐 라는 단순하고 일률적인 잣대로 분류할 수 없을 것 같다. 본보기가 될만하고 존경받을 만한 인품을 가진 인물을 소설의 중심 인물로 내세우기 보다는 기존의 다른 소설에서 보여지지 않는 독특하고 뚜렷한 성격의 인물을 내세우고 싶은 것이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그래서 서희라는 인물은 토지의 대표 인물이지 꼭 중심 인물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나 작가의 애정이 토지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에서도 골고루 느껴지지 서희에게서 특별히 더 느껴지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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