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2 - 1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2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토지'하면 사람들은 어떤 인물을 제일 먼저 떠올릴까. 아마 '서희'가 아닐까. 그렇다면 그건 주인공이 뚜렷해야하는  TV 드라마의 영향일것이다. 책에선 꼭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게, 2권에서 서희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귀녀, 최치수, 그밖의 최참판댁 노비와 평사리 작인들 이야기가 지루할 틈 없이 펼쳐진다.

몰래 같지만 알 사람은 다 아는 용이와 월선의 연정은 별당아씨와 구천, 길상과 서희 관계보다 더 절절하다.

노비라는 신분에서 탈피하여 다른 삶을 살아볼 욕망이었다고 표현하면 너무 고상한가. 최치수라고 하는 병적으로 고립된 인간의 상황을 이용하여  노비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배부른 삶을 꾀한 귀녀와 김평산, 그리고 여기에 동조하는 우매한 인간 칠성이에 비하면 그저 귀녀와 연을 맺고 싶어했던 사십줄 총각 사냥꾼 강포수의 욕망은 차라리 순수했다.

최치수는 교살되고, 이 일로 인하여 누구는 자결하고 누구는 식솔을 데리고 몰래 동네를 뜬다.

구천과 김개주, 윤씨부인의 관계가 2권에서 모두 설명되는데, 이것이 최참판 집안 비극의 시초가 되는 것 같지만 사람일에 어디 분명한 시작점이 있을 것인. 끝이라면 혹시 있을지 몰라도.

구천과 함께 달아난 아내를 찾아 사냥길에 나선 최치수 앞에 지네 한마리가 갑자기 나타난 것을 보더니, 잃어버린 짝을 찾아내려고 또 한마리 지네가 곧 출현할 것이라고 옆에 있던 화전민 아낙이 대수롭지 않게 던지는 말에, 최치수는 새파랗게 질린다. 작가는 이런 대목을 어찌 이렇게 절묘하게 인용하였는지. 여기서 배운 말로 하자면 소분지애씨* 이겠지만 말이다.

(* '약과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뜻 )

악인, 의인, 노비, 양반 등 실로 다양한 연령층, 다양한 성격의 인물들이 작품 전체에 걸쳐 등장하는데 작가는 그 중 어느 하나 애정을 갖지 않은 인물이 없었다고 한다. 악인에게조차도 마찬가지이다.

병적인 인간 최치수가 장암선생에게 자신의 처지에 대해 스스로 설명한 부분을 들어보자.

산에 와도 사냥꾼이 못 되고 마을에 가도 사내가 못 되고 서원에 들어서도 학자가 못 되고 만석꾼 땅문서는 있되 장자가 못 되고 어머님이 계셔도 아들이 못되고 자식이 있어도 아비가 못 되고 계집이 있을 때도 지아비가 못 된 위인이 개화당이 되겠습니까, 수구파가 되겠습니까, 가동들을 거느린 의병대장이 되겠습니까. 신선이 못 되면 허깨비라도 되어야겠습니다만 무엇에 미쳐서 허깨비가 되오리까. 그럼에도 잡사를 잊지 못하니 신선인들, 이 적막한 산속에서 어찌 이다지도 저는 사람임을 잊지 못하고 영신이 없음을 절감하게 되는지요. (318쪽)

 

무거운 숙명적 삶을 살아야했던 어미 윤씨부인때문에 일찌기 어미 정을 못받고 자란 최치수란 인물은 위에 인용한것처럼 어디에도 부합하지 못하는 고립된 삶을 살았고 결국 짧은 생을 살다 간다. 그의 자조적인 자기연민 대사에서, 작가는 그를 아예 악인으로만 그리지 않았구나, 오히려 그 반대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1973년 작가가 쓴 토지 1부를 마치고 남긴 서문 일부를 옮겨본다.

앞으로 나는 내 자신에게 무엇을 언약할 것인가.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 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 도전함으로써 비약할 것인가. 다만 확실한 것은 보다 험난한 길이 남아 있으리라는 예감이다. 이 밤에 나는 예감을 응시하며 빗소리를 듣는다.

-1973년 6월 3일 밤, 작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