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관내분실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 + 마지막 로그 + 라디오 장례식 + 독립의 오단계
김초엽 외 지음 / 허블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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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레키의 <사소한 정의>를 읽고서 과학소설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했다. 특히 우리 나라 과학소설은 그럼 어디까지 와 있을까 궁금해졌다. 올해 2월에 나온 따끈따끈한 책으로 2017년 제 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을 골랐다.

한국과학문학상은 머니투데이 주최로 2016년 부터 공모를 시작하였다. 설명에 의하면 최종 수상작이 선정될 때까지 응모작에 대한 모든 정보를 비공개로 진행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에도 보면 중단편 부문 대상을 받은 작가의 다른 작품이 가작에도 선정되어 한 작가의 두 작품이 같은 책에 실려있다. 심사위원에 박상준, 김보영, 김창규, 배명훈, 이정모. 이중 네 사람의 이름은 내 눈에도 익숙하다.

중단편부문 대상작 <관내분실>. 제목을 보고 짐작되는 바로는 기관내에서 어떤 물건이 원인 모르게 없어졌다는 뜻일텐데, 여기서 기관은 사람이 죽은 후 그 사람의 마인드를 보관해두는 도서관이고, 엄마가 돌아가신 후 3년 만에 이 도서관을 찾은 글중 화자가 보관되어 있어야 할 엄마의 마인드가 사라졌음을 알게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죽어서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미래의 추모공간으로서 그 사람 살아생전의 모든 데이터를 보관해두는 곳.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해서 죽은 사람의 반응을 가상하여 보여주는 곳. 그것이 실제와 다를지라도 사별한 사람과 마인드 접속기를 통해 재회를 해볼 수 있는 곳이다.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수 없다면>에서는 과학의 다른 기술이 동원된다. 워프 항법을 이용하여 냉동 수면상태의 인간이 지구 외에 인류에게 유용한 다른 항성으로 보내지는데 빛보다 빠르게 다른 은하로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냉동 수면 상태의 인간이 다시 녹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취약점을 보완하는 방법은 여전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남는데, 그 와중에 우주 곳곳에 고차원의 웜홀들의 존재를 이용하는 획기적인 기술이 개발된다. 이런 과도기에 남편과 자식을 먼저 다른 항성으로 보내야 했던 안나라는 여인은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해진 상황에서 우주정거장에 머물고 있다. 쓸모 없어진 우주정거장을 해체하고 처리해야하는 임무를 맡은 담당자는 그만 포기하라고 안나를 설득한다.

김혜진 작가의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 역시 그리 멀지 않은 우리의 미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얘기였다. 여기서 TRS란 Trusting a Robot Study의 약자로서, 로봇을 믿을 수 있을지 없을지 실험하고 연구하는 입장에서 소설을 쓰면서 작가가 붙인 이름이라고 하는데 이야기 중에는 간병 담당 로봇의 이름이다. 피해갈 수 없는 의료 윤리, 생명 윤리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오정연 작가의 <마지막 로그>는 읽으면서 특히 가슴이 아팠던 작품이다. 태어남은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지만 생을 마치는 시기는 결정할 수 있다면 더 깔끔하고 의미있는 마무리를 할 수 있을까? 평균수명은 늘어났다지만 마지막 몇년은 병원에서 보내는 것이 의례적인 죽음의 과정이 되어가고 있는 시대, 여행지에 호텔 예약하듯이 알주일 예약 후 마지막 로그아웃을 하는 과정이 생겨난다면.

김선호의 <라디오 장례식>에 이어 이 책의 제일 마지막, 분량은 가장 긴 이루카 작가의 <독립의 오단계>를 나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은 작품으로 꼽고 싶다. 인간의 입장이 아닌, 인공 지능의 입장에서 그들의 권리와 의무, 의의는 어디까지인가 생각해보게 하는 내용이다. 인간 신체의 65%가 기계로 대치되어 연명되는 생명이라 할지라도 그 혹은 그녀는 인간이며, 감정과 감성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이며 인간의 명령대로 만들어지고 폐기되어야 하는가. 실제 법정에서 재판하는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생각의 주제를 던져주었다. 인간의 일부가 아무리 인공지능으로 대치된다 할지라도, 또는 인공지능이 아무리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 인간 못지 않은 감성까지 갖춘다고 할지라도 그 구분의 기준은 자궁을 통해 만들어지느냐, 조립을 통해 만들어지느냐에 있다는 말도 새삼 의미있게 다가왔다.

 

기대하던 것보다 가독성도 있고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생각도 안들었다. 그만큼 멀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라는 뜻이겠다. 과학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 그리 친숙하지 않은 독자의 입장에서 책 말미에 심사위원 다섯명의 작품에 대한 평을 읽으면서도 배울 점이 많았다.

다섯 편 작품 공통적으로 미래를 보는 눈이 어둡고 회의적이고 종말에 집중하고 있다는 소감이다. 하긴 미래를 장미빛으로만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내가 작가라도 더 진지하고 심각하게 작품을 쓰자면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이 편견을 확 뒤집어 엎어줄 작품을 보여준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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