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력고사 세대이다. 선지원 후시험도 아니었고, 수시모집 같은 제도도 없었고, 논술 고사라는 것도 따로 없었고, 그냥 학력고사 시험 한번 보고 나오는 성적과 고등학교 내신 성적으로 적당한 대학에 지원을 하는 시스템하에서 시험을 치뤘다.

고등학교 2학년, 이과반으로 들어간 후 부터 성적이 조금씩 떨어지더니,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모의고사니 중간 고사, 기말 고사 점수는 시험 한 번 볼 때마다 오르는 일 없이 계속 뚝 뚝 떨어졌다. 어디까지 내려가려고 이러나 처음엔 불안하고 걱정되고 속상하고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니 3학년 2학기를 넘어가면서부터는 거의 포기 상태. 공부를 뒷전으로 하고 다른데 정신이 팔려 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하루 24시간 공부 생각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그게 문제였던 것 같다. 걱정, 걱정이었다 공부에 대한 걱정. 책상에 새벽 2시까지 앉아서 내가 한 것은 공부가 아니라 공부에 대한 걱정이었다.

학력고사 시험날, 시험장까지 작은 외삼촌께서 차로 데려다 주셨는데, 엄마도 함께 타고 가셨다. 나를 내려 주시고 엄마는 바로 직장으로 출근. 떨리지도 않고, 그냥 이 시험이 빨랑 지나가버렸으면 했다. 어차피 난 내가 어느 정도의 성적을 받을지 알고 있었으니까. 모의고사는 괜히 보나. 그동안의 성적으로 충분히 짐작할수 있는 나의 코 앞의 미래.

한 교시 끝날때마다 서로 답을 확인해보는 아이들을 보며 난 책상에 가만히 앉아서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이제 한 시간 끝났다, 이제 두 시간 끝났다, 마음속으로 세면서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내내 모의고사 볼때마다 나를 괴롭히던 두통이 이 날도 예외 없이 찾아왔다. 3교시쯤부터 시작되는 이 두통은 한쪽 머리가 쪼개지듯이 아파서 4교시 시험볼때쯤이면 (나의 취약점인 과학 과목이 주루룩 들어있는) 제대로 문제에 대한 생각을 할수도 없을 정도였다. 어차피 잘 모르는 답인걸 하며 늘 4교시 답안은 대충 메꿔 내곤 했던 것이다. 아...오늘만은 그러지 않길 바랬는데, 예외가 없었다.

드디어 4교시에 걸친 시험이 모두 끝나고, 같은 고사장 다른 교실에서 시험을 치른 단짝 친구를 만나니 그 친구는 답을 확인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고사장을 나오니 그 친구의 어머니께서는 고사장 문 밖에서 시험치르고 나오는 딸을 기다리고 계셨다. 함께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데 벌써 라디오에서는 정답과 해설이 나오고 있었다. 귀를 쫑긋하며 듣는 친구, 일부러 안들으려고 하던 나.

고등학교 3학년 어느날 그 친구에게 자조적으로 말한 적이 있었다. 나 이러다가 XX대 정도밖에 못 갈것 같아. 그랬더니 그 친구, 그래도 그 학교보다는 나은 데에 가야하지 않겠니?

결국 나는 그 XX대에 입학을 하였고, 그 친구는 그보다 훨씬 나은, 아니 우리 나라 최고 명문대에 입학을 하였다.

학력고사를 보고나서 입학 원서를 내고, 입학 결정이 되기까지의 얘기는 또 한 묶음거리이다.

그것이 벌써 몇년 전 일인데, 이렇게 대학 입학 시험 날이 되면 어김없이 생각이 나는가. 그리고 우울해하는가. 이유를 찾자면, 그 이후로 나란 인간은 아주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직도 나를 얘기할때  최소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시점이 바로 그 시점이 되기 때문이다.

덧붙임 1.고3 내내 나를 괴롭히던 그 두통에 대해 누구에게도 얘기한 적이 없다. 난 아플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던걸까. 그 두통은 학력고사보던 날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덧붙임 2. 위의 그 단짝 친구와는 지금까지도 단짝 친구이다.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친구이기 때문에 나를 너무나 잘 아는 제2의 나 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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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오리 2006-11-16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공감이 되는 내용입니다.
저도 오늘 출근길에 제가 학력고사 보던 날을 떠올렸었거든요.

저도 학교 다닐 때는 공부보다는 공부에 대한 걱정이 더 많았었죠.
어른이 되어서도 어떤 일보다는 그 일에 대한 걱정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걱정하는 시간에 뭔가를 그냥 뛰어들어서 해보자하고 있지만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하는 글이네요...

hnine 2006-11-16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해적님도 학력고사 세대? 방가방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