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떠난 사람들이 간절히 원했던 오늘 하루
하재욱 지음 / 나무의철학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오늘 하루] 심지어 글까지 늘은 하재욱은 하재욱이다

 

 


누군가에겐 헛된 하루였을 오늘이 누군가에겐 절실한 하루였을 것입니다. 무수히 많은 날들이 남아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에게 오늘 하루는 대충 뒹굴어도 아깝지 않은 무엇일 테지만, 무수히 많은 날들을 떠나보낸 이들에게 오늘 하루는 지상에서 펼쳐보는 마지막 선물일 수도 있겠지요. 이 차이를 느껴버린 이의 어깨 위에 놓인 하루는 얼마나 무거울까요,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삶이 고단하고 무거울수록 오늘이라는 단 하루만을 상상하고 노래하고 스케치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묘하게도 간절해집니다. 오늘 하루치 고단함이 너무 간절해서 고마워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하루치 사랑이 너무 간절해서 느닷없이 눈물이 맺히기도 합니다. - 작가의 말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하루는 어제 죽은 이가 간절히 바라던 내일이다.” 3 시절, 이 말이 소포클래스가 한 말인지도 모르는 애들도 교실자습실독서실 등 각종 책상에, 스케줄러 등에 열심히 써놓곤 하였다. 너무나 뜨겁게 감동한 누구는 한낱 필기구로는 비장함이 표현되지 않는다며 커터칼로 문구를 새기다가 엄마보다 매운 선생님의 불손맛을 알기도 하였다. <어제 떠난 사람들이 간절히 원했던 오늘 하루(이하 오늘 하루”)>, 제목을 보고 피식하였다. 옛날 생각이 나서, 열 살 넘는 나이 차가 아무렇지 않아져서. 그 동안 하루 연작을 보고 또 보며 아끼면서 공감은 하면서도 큰 형님의 이야기, 간절한 나의 미래처럼 느꼈던 감이 더 컸는데 세 번째 하루 연작인 <오늘 하루>는 제목을 의식해서인지 책이 한결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책의 주인공과 아이들은 더욱 컸음에도, 평행선을 달리며 같은 시간을 사는 사이임에도 새삼스럽게.

 

 

그 놈의 장 자끄 상뻬. <오늘 하루><안녕 하루>, <고마워 하루>에 이은 하재욱의 세 번째 하루 연작이다. <오늘 하루>는 이전 두 책과 달리 출판사를 바꿔 토네이도미디어그룹의 자회사 나무의철학에서 나왔다. 장서가의 입장에서 그로 인해 판형까지 바뀔까봐 걱정했는데 서체만 바꿨을 뿐 판형은 다행히 유지하였다. 흥미로운 건 두 출판사 모두 한국의 장 자끄 상뻬를 밀며 홍보한다는 점이었다. 작가에게, 화가에게 2○○이란 호칭은 어떤 느낌일까. 물론 인지도를 좀 더 빨리 높이기 위해선 그만한 마케팅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프레임에 벗어나기 전까지 하재욱 그대로의 하재욱은 꽤 가려질 수밖에 없다. 색감과 화풍, 채색기법이 확연히 다를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남성 독자에게 소구 가능한 남자 그림 에세이라는 점에서 더욱 아쉬웠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 성인 그림책 시장이 30대 미혼 여성을 중심으로 소비도 마케팅도 여성향인데다가, 장 자끄 상뻬가 그 대표적인 작가이므로.

 

 

함부로 피어나고 느닷없이 져도 다시 피어나는 봄날이 오는 것은 이제 너희들 이야기다. 나는 이제 여름밖에 없는 사내처럼 뜨겁게 식혔다가 다시 뜨겁게 일해야겠다. 황혼 때까지 남은 내 모든 봄날 너희에게 주마 아이들에게

 

사는 것도 그렇다. 생활의 무게감이 없으면 두 발이 땅에 닿지 않고 붕 떠 있어 곤혹스럽고, 생활의 고단함에 허리가 꺾일지언정 두발은 땅속 깊이 단단히 박힌다. 어디 오도 가도 못하지만 헛다리짚지 않는다. 집단린치 또는 민간요법

 

과거의 나에 대해 이런저런 평론을 하다가 그립다 못해 아름다워져버린 내 과거를 더 이상 표절하진 말자 싶었어요. 멀고 먼 미래의 내가 표절하고 싶은 지금을 살아야지 싶었어요. 오늘 하루부터

 

시는 못 되겠지만 가슴 아픈 시구절 하나는 될 수 있을까

소설은 못 되겠지만 아름다운 문장 하나는 될 수 있을까 내 하루

 

 

게다가 세 번째 책인 <오늘 하루>에 와서 하재욱은 글까지 늘었다. 그 동안 하루 연작의 장르를 카툰포엠으로 보았다. 0.7mm 국민볼펜 모나미로 쓱쓱 스케치해 스캔한 후 컴퓨터로 채색한 그림에 마지막이 제목이자 반전인 짧은 글을 덧대 놓았으므로. 한 살 더 먹은 만큼 여성호르몬이 늘어났거나 숨겨왔던 솜씨를 이제 드러낸 것일 수도 있으나 <오늘 하루>에 실린 글 중엔 긴 글도 꽤 많고, 정색하고 진지하게 읽게 되는 글도 좀 있었다(‘그림에세이로 수렴하려나). 세권 다 작업방식은 같은데 채색이 좀 다른 그림들이 좀 있다. 아니면 출판사가 달라져 콘셉트 자체가 달라진 건가 제목도, 소제목도, 글도 길어지고 비슷한 듯하지만 낯선 감성의 그림들이 등장한다. 소재는 여전히 가족과 직장을 중심으로 한 평범한 샐러리맨 40대 초반 가장의 일상이지만. 하루 연작을 계속 읽고 있거나, 이참에 모두 읽으려고 계획 중인 독자는 이 미묘한, 그림과 글의 변화를 알아채보길

  

 

남자는 문제 해결자여야만 할까, 한국 남자는 위로의 주체여야만 할까, . 1년 동안 시중에 나온 위로’, ‘힐링과 관련한 온갖 책들을 최선을 다해 읽고 훑고 외우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였다. 으레 토닥이는 남자(작가)와 토닥임을 받는 여자(독자)’의 구도가 형성되어 있었다. 심지어 토닥임이 간절히 필요했던 남자도 어떻게든 괜찮아지고는 자신이 위로받는 글보다 자신이 위로하는 글을, 남자보다는 여자를 챙기며 책을 쓴다. 마음이 힘든 건 사람의 문제고 실제 생물학적으로도 남자가 더 감성적임에도 으레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로, 스스로 털고 일어나게. 그래서 <오늘 하루>를 비롯한 하재욱의 하루 연작이 반가웠고, ‘한국’ ‘남자들에게 많이 권하였다. 같은 시대를 견뎌나가는 소회가 있고, 소년에서 남자가 된 모든 한국 남자에 대한 위로와 공감이 있다. 간 괴롭히며 소주 털어놓고 있는데, 어떤 털 숭숭난 아재가 다가와서는 던지고 초록병 뺏어가는 느낌의 책이다. 그거랑 같은 건데 속 안 아픈 거야.


 

대부분 정신없이 보낸 평범한 날이었지만, 그 하루들을 켜켜이 쌓아놓고 보면 다시 만날 수 없어 그립고, 이제껏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스스로가 대견하다. 하재욱의 하루 채록은, 그 글과 그림이 주는 위로는 ‘하루’ 그 자체 같다. 그게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아주 진국인데 책만 펴보면 넘어가는데, 외양이 너무나 소박해서, 쉽게 남들을 홀리지 못한다. 그래서 더 그의 ‘라이프 스케치’ 하루 연작이 계속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의 하루’만큼 ‘남의 하루’를 존중하는, 그래서 ‘우리의 삶’을 애틋하게 아끼는 사람들은 많으니까 점점 발견되라고. 사실 하루 연작 외에도 하재욱은 여러 가지 그림을 그린다. 예명과 연재처도 여럿이라 여기저기서 그의 그림과 마주친다. 그럼에도 하루 연작에 가장 눈과 마음이 간다. 하루 연작이 그의 그림 중 가장 현실적이고 평범해서일까, 그 현실의 하루하루를 사는 중인 한 보통 사람에겐 아무튼 그러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