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럭저럭 

                              - 조   병   화 -


          이럭저럭  며칠  걸려서
          당신 뵈러
          내수동  집
          당신  방문  열면


          어,  너왔니
          무심도  하지
          늙은  에미  내버려  두고
          요샌  발에  힘이  없어
          네  집엘  자주  못  간다
          구순히  지내라
          너도  이젠  어른  될  때  됬다
          모든  거  참아라
          참으면  되느니라
          속  상하는  일  있어도
          살아  보면  그게  그거더라
          네  에미는
          항상  줄에  앉은  새다
          훅,  눈감으면  그만이지만
          어디  그러니
          참고
          마음  편히  지내라
          한  평생  잠깐이다
          마음  아파하질  말라
          풀어라
          풀고  살라
          사내  대장부
          허허  웃고  살  것이지
          이런  일,  저런  일
          그런  일도  있지  할  것이지
          얘기할  거  있으면  얘기하고
          타이를  거  있으면  타이르고
          기분  얺짢은  거  있으면  언짢다  하고
          확  확  터놓고  살  것이지
          남자가  그러면  못  쓴다
          네가  대학  교수고  시인이고
          사회에  이름난  사람이고
          하더라도
          네  속  너  혼자  썩고  사는  거지
          그게  어디  사는  거냐
          잠깐이다
          한  세월  잠깐  가니라
          그까짓  거
          웃고  살어라
          할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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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4-09-24 10:45   좋아요 0 | URL
우리 어머님 말씀과 한자 틀리지 않는 어머니 말씀.
항상 줄에 앉은 새몸 이라고 하시던 어머님,
남자가 그러면 못 쓴다고 하시던 어머님 ...........

조선인 2004-09-24 10:49   좋아요 0 | URL
수암님이 요새 절 매일 울리네요.
한가위를 맞아 휘엉청해가는 달 때문인지, 부쩍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돌아가셨을 때보다 요새 더 빈자리가 실감이 난다죠.
시부모님이랑 친정아버지 선물만 사면 된다는 게 왜 이리 속상한지.

水巖 2004-09-24 10:58   좋아요 0 | URL
저도 추석때가 되니 어머님 생각이 나서 그런답니다. 어머니께 다녀와야 하는데...
자꾸 우시면 안된다고 하더군요. 나쁘다고 하데요.
이제 어머니로 돌아가야지요. 마로의(물론 그러시겠지만)
좋은 고향길이 되길 빕니다. 오가시는데 고생들 하지 말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이 고향인 사람들은 갈곳이 없어 고향 없는 사람 같네요.

로드무비 2004-09-24 13:01   좋아요 0 | URL
서재 지붕이 멋지네요.
선글래스 낀 멋진 소년이 진석인가봐요.
좋은 시 잘 읽었고요.
수암님 추석 잘 보내세요.
그 동안도 알라딘 서재에서 뵙게 되겠죠?
(저는 추석 전날 1박 2일로 서울 형님댁 가서 음식장만 도울 거예요.)

水巖 2004-10-03 03:04   좋아요 0 | URL
서재 지붕 멋있죠. 예 진석이 사진인데요.조선인님이 만들어 주신 지붕이랍니다. 예, 진석이 사진인데요, 핸드폰으로만 찍으니까 선명치가 않네요.
바쁠때라 서울 오셔도 못 뵙는군요.
제가 장남이라 또 계수들은 우리집에 온답니다. 여동생들은 또 저희들 가족이 모이느라 못오고 때로 다음 날 오기도 하고 이제 부모님 제사나 성묘하는 날 모이게 되죠.
 

           어  머  니 

                 1

                            - 김   초   혜 -


          한몸 이었다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었는데


          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뉘일  줄
          어이  알았으리


          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익혀
          단  줄  모르는  자식


          처음대로
          한몸으로  돌아가
          서로  바꾸어
          태어나면  어떠하리

 

 

 

            어  머  니 

                 12

                                  - 김   초   혜 -


          어머니는  무덤에  계시면서도
          농  속에도  계시고
          부엌이나  장독대
          시장  구석구석
          어물전에도  계시어
          손끝에  묻은
          생활의  때를
          빛내주신다


          어둑해오는  봄날  저녁
          상긋한  산나물에서도
          숱한  이야기는  살아나
          살이랑마다
          고뇌를  짠다


          살면서  멀어질  줄  알었던
          베쪽같이  해쓱한
          마지막  모습은
          이승과  저승에  다리를 놓는다


          퍼덕이는  외로움  물고
          젖은  구름을  타고
          떠난  어머니
          살  익는  입김에
          가슴메여
          뒤채이다  나면
          남겨두신  정(情)에  운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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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거울 2004-09-23 12:51   좋아요 0 | URL
절절하네요. 주고도 주고도 모자라다 생각하는 게 부모님 마음인데, 자식들은 왜 받아도, 받아도 모자라다고 생각하는지... 참. ㅠㅠ

水巖 2004-09-23 13:02   좋아요 0 | URL
하늘거울님, 명절때면 더욱 그리워지는 분, 그래서 어떤분은 애통하시고 ....
이제라도 어머님이 마지막 떠나시던 병원으로 달려가면 아직도 그병원 어느 병실에 계실것만 같어지는.....
자식들이 마음 아프게 해 줄때면 어머님께 더욱 죄송하고.
추석이 얼마 안남은 날, 어머니 詩로 어머님을 그리워 해 볼랍니다.

2004-09-23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머님,  당신은  지금 

                                                     - 조   병   화 -

 

          어머님,  당신은  지금
          사람의  눈으론  보이지  않는  세상에  계시옵니다.
          때론  가까이
          때론  멀리
          제  곁에  항상  계시오며
          하얀  제  생각  속에  계시옵니다


          어머님,  당신은  지금
          사람의  귀론  들리지  않는  세상에  계시옵니다
          때론  가까이
          때론  멀리
          제  곁에  항상  계시오며
          하얀  제  혼자  속에  계시옵니다


          얘,  순리대로  사는  거다
          매사  탁  풀고  사는  거다
          마음  상할  거  없다
          아파할  거  없다
          당하는대로  사는  거다
          늦추며  늦추며  자연대로  사는  거다
          아리게  혼자  사는  거다
          잠간이다,  하시며


          어머님,  당신은  지금
          사람으론
          갔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세상에  계시옵니다.
          때론  가까이
          때론  멀리
          제  곁에  항상  계시오며
          하얀  제  눈물  속에  계시옵니다.

 

                                제 21시집 『어머니』 -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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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9-22 16:47   좋아요 0 | URL
넘 슬퍼요...

水巖 2004-09-22 16:51   좋아요 0 | URL
너무 슬픈 이야기, 너나 없이 한번은 겪고 아퍼야 할 이야기, 그리고 언젠가는 또 그렇게 겪게 만들어 주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어떤분의 思母의 모습을 보고 생각 난 詩랍니다.

sweetmagic 2004-09-22 17:37   좋아요 0 | URL
너무 슬퍼요 흑흑흑 ..

水巖 2004-09-22 17:42   좋아요 0 | URL
sweetmagic님, 님의 흐느낌을 보고 ? 저도 다시 한번 읽었습니다.
님의 흐느낌 때문에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나에게  잃어버릴  것을 

                                                     - 조   병   화 -

 

          나에게  잃어버릴  것을  잃어버리게  하여  주시고
          나에게  남을  것을  남게  하여  주십시오

 

          와글와글  타오르던  무성한  여름은
          제자리  자리마다  가라  앉아
          귀중한  생명들을  여물게  하였읍니다

 

          보시다시피
          어젠  담당할 수  없이  숨찬  계절이었읍니다

 

          이제  돌아갈  것을  돌아가게  하여주시고
          총총히  서  있는
          잎  떨어진  나무  상수리  지나는  바람에도

 

          생명을  알알이  감지할  수  있는
          소리  없는  가을을  나에게  주십시오

 

          기름진  미운  얼굴을  거두고
          기도를  올리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우수수  세월이  지나는  나의  자리
          검은  수림처럼  그대로  말  없이

 

          잃어버릴  것을  잃어버리게  하여  주시고
          나에게  남을  것을  남게  하여  주십시오                                                                     

                       

                                                                 제 5시집.  -  사랑이 가기  전에 -  에서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시집 [사랑이 가기 전에]는 조병화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이고 1955년 발행되었다.
  어느 소녀에  의하여 읽게된 이 시집은 내가 대학 들어 가고 나서인  1955년 겨울인것 같다.

  조병화 선생은 이때 서울고등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치고 계실때여서 한동안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기억되군 하였다.    

  그 소녀,  지금쯤은 손주, 손녀 여러명 있는 할머니가 되었음직 한데 도무지 그림이 안 그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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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04-09-21 09:59   좋아요 0 | URL
혹시..그소녀가 수암님의 첫사랑 아니신가요?..^^

水巖 2004-09-21 10:13   좋아요 0 | URL
그런가봅니다. 그래서 조병화 시인의 시를 좋아했나 하고 문득 생각해 보는군요.

이렇게 되줄을 알면서도
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이런 시도 있었죠. 한 동안 외우고 다니던 시였죠. 지금은 중간 열들이 헝크러지고 생각이 잘 안나지만.

진주 2004-09-21 13:56   좋아요 0 | URL
1955년에 대학을 들어가시고, 조병화를 좋아하는 소녀를 만나시고.......
1955년이라면 아직 태어날 꿈도 못 꾸던 저도 조병화님의 시를 좋아합니다.
과연..좋은詩는 세월을 초월한다는 생각이 듭니다.늘 건강하세요^^
조병화님의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살며시 두고 갑니다.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서러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외로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사나운 거리에서 모조리 부슬러진
나의 작은 감정들이
소중한 당신 가슴에 안겨들은 것입니다.

밤이 있어야 했습니다.
밤은 약한 사람들의 최대의 행복
제한된 행복을 위하여 밤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눈치를 보면서
눈치를 보면서 걸어야 하는 거리
연애도 없이 비극만 깔린 이 아스팔트

어느 이파리 아스라진 가로수에 기대어
별들 아래
당신의 검은 머리카락이 있어야 했습니다.

나보다 앞선 벗들이
인생은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한 것이라고
말을 두고 돌아들 갔습니다.

벗들의 말을 믿지 않기 위하여
나는
온 생명을 바치고 노력을 했습니다.

인생이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하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믿고
당신과 같이 나를 믿어야 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 하나의 최후와 같이
당신의 소중한 가슴에 안겨야 했습니다.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水巖 2004-09-21 16:11   좋아요 0 | URL
박찬미님, 조병화 시인의 시를 좋아하시는 군요. 저는 어느 해 도서전시회에 갔다가 당시 학원사에서 발행한 조병화 시전집 아홉권을 산 적이 있었답니다. 이 9권의 전집에 조병화 시집 30권이 들어가 있는 전집이였는데 장정도 그렇고 4.6판에 반양장이여서 전집이라고 하기엔 좀 초라해 보였지만 제1시집에서 제 30시집이 들어 있어 좋다고 사 버렸죠.
그 이후 들쑹 날쑹 사서 전 52시집에서 없는것도 있고 이중에 한정판 시집이라는 책도 있는데 제34시집인 [후회없는 고독] 미학사刊 인데 제가 산 책은 344/500 (2쇄) 500부 한정판에 조병화 선생의 친필 싸인이 있는 시집이랍니다. 1990년 간행된 이 시집은 당시 시집으로는 일금 10,000원이라는 무척 비싼 책값이였죠. 양장본이긴 하지만.
그런데 2刷인 이 책이 1,2쇄 합해서 500부 한정판인지 아니면 각각 500부 한정판인지 좀 모호 하더군요.
< 이렇게 될줄을 알면서도> 시 감사합니다.

진주 2004-09-21 16:40   좋아요 0 | URL
앗...좋아한다는 말을 경솔하게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병화님의 시집도 한 권 안 갖고 있으면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갑자기 양심에 찔려요 흑흑...
그러나, 열악한 여건 때문에 제겐 다른 책들도 거의 없습니다. 거의 도서관을 이용하는 편이지요.
조병화님의 시전집...부럽습니다....

水巖 2004-09-21 16:59   좋아요 0 | URL
책을 소장해야 좋아한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이제 이분도 돌아가셨으니 누가 한번 진짜 전집 한번 안 만드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작이어서 엄두를 못내는거 아닌가 몰라요. 돌아가신 뒤로 빠진 책 메꿔 볼라고 주문해 보는데 또 품절된 책도 많더라고요.
말만 전집이지 학원사刊 전집, 원래는 10권인데 (수필집이라 한권 뺐답니다) 정말 초라한 책이였어요. 여러 사람이 다 보라고 일부러 그렇게 간행 했는지는 몰라도 장정도 뭐 별로 였답니다.
학원 이라는 잡지 아세요? 내가 중학교 다니던때 중고등 학생을 위한 잡지였답니다. '학생계'인가 하는 잡지도 있었는데 중도에 없어지고 유일한 학생 잡지였는데 그 잡지사에서 만든 시집이 좀 그랬다 싶더군요.
 

                      여우난골족(族)


                                                 - 백       석 -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머니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 나무가
          많은 신리(新理) 고모 고모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
          열여섯에 40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모
          고모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동이
          60리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던 말끝에 섧게
          눈물을 짤때가 많은 큰골 고모 고모의 딸 홍녀(洪女) 아들
          흥동이 작은 흥동이
          배나무 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지를 좋아하는 삼촌 삼촌엄매
          사촌누이 사촌 동생들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찰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볶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 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이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기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기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 가는 집안에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랫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윗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우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랫목 싸움 자리 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시누이 동서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 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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