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바다 암실문고
파스칼 키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음악과 미술 등 다양한 예술을 소재 삼아 새로운 사고를 창출하는 작업에 특히 뛰어나다'라고 소개되곤 하는 작가 파스칼 키냐르의 작품이 늘 궁금했었다. 그는 대대로 언어학자와 음악가를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나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며 자랐으며, 바이올리니스트, 첼리스트, 오페라 작곡자, 베르사유 바로크 음악 센터의 임원으로도 활동하는 등 인생에서 음악을 빼놓을 수 없는 작가로, 지금까지도 많은 작품에서 음악을 모티프로 활용해왔다. 나는 이제 그 호기심을 푼다.




키냐르는 우리가 잊고 있던 17세기의 음악가들을 소환하고, 사랑, 음악, 바다, 유혹, 죽음 등에 관한 이야기들을 이어간다. 


1652년, 류트 연주자 샤를 플뢰리 드 블랑크로셰(Charles Fleury de Blancrocher, 1605~1652)는 계단에서 떨어져 사망한다. 그의 친구들은 그를 기리며 4개의 톰보 를 바치기로 한다. 작가는 III장 <음악가들> 편에서 블랑슈로슈와 그의 친구이자 하프시코드(harpsichord) 연주자 요한 야콥 프로베르거(Johann Jakob Froberger, 1616~1667)를 등장시키며 그 이야기를 가져온다. 



야콥 프로베르거가 직접 악보 머리에 써넣은 정확한 제목은 이러하다. <블랑슈로슈 씨의 죽음에 바치며 파리에서 지은 이 추모곡은 박자에 얽매이지 않고 재량껏 매우 느리게 연주할 것.> 

p134


류트에 대한 이야기는 블랑슈로슈의 스승이었던 드니 고티에로 이어지고, 그가 등장하는 그림 한편도 소개된다. 가운데 류트를 들고 있는 인물이 드니 고티에다. 


작가는 『사랑 바다』 를 소설이라 부르지만 어느 순간 논픽션처럼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실존했던 인물들에 대해 찾아보고, 음악을 찾아보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독백과도 같은 함축적인, 시적인 문장을 만나 오래 시선이 머문다. 문장이 노래하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몸을 발견하는 일, 불안해하거나 조심스러워하거나 수줍어하며 이루어 내는 그 발견보다 더더욱 감동적인 일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가 익히 알고 사랑하는 몸이 다시 나타나는 걸 보는 기쁨이다. 

   이전과 비슷하고, 여전히 비할데 없이 향기롭고, 저항하기 힘들 만큼 매혹스러우며, 생생하고, 따뜻하며, 자신만만하고 숭고한 그 몸을 다시 만나는 건 행복이다. 

   그 몸에 똬리를 트는 건 황홀한 일이다. 

   어쩌면 바로 거기서 음악과 사랑이 만나는지도 모른다. 

   음악은 말하지도 않고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암호화하고 다시 찾아낼 뿐이다. 

   그것은 뇌의 그늘 깊은 곳에서 잃어버린 것을 되살려 낸다. 

   그것은 뒤로 돌아가 돌진하고, 한 악장 한 악장 천천히, 그러다 별안간 빠르게 나아가며 마음을 뒤흔든 모든 것을 되찾는다. <중략>

   음악은 특출나게 감동적인, 어딘가 미쳐 버린 인식같다. 세상 이전의 세상에 있던 것, 되찾으리라 더는 기대하지 않던 것과의 아연한 재회 같다. 

- p195



책 속의 등장 인물들은 서로 반응하고, 중첩되고 그리고 분리된다. 각 장의 시점은 불현듯 각 인물들의 시점으로 바뀌기 일쑤다. 몇 줄만 읽어도 관점이나 시간, 장소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음악에서는 류트가 사라지고, 비올라가 소멸하며 피아노가 부상한다. 요한 야콥 프로베르거가 '프랑스 모음곡' 형식을 처음 작곡한 이후 한 세기가 지나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가 그 형식을 이어받는다. '프로베르거가 이 새로운 형태의 협주 소나타를 구축한 건, 아니 부서진 듯하고 조각난 듯한 이 새로운 형태를 내놓은 건 류트 연주자 블랑-로셰, 아치류트 연주자 하튼, 리라 연주자 하노버, 그리고 빈과 로마와 아비뇽에서 그를 사사한 스승 아타나시우스 키르허의 가르침 덕이었다.' (p504)


책 소개에서는 『세상의 모든 아침』 과 『음악 혐오』를 한데 모은 것 같은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두 권을 이어 읽어보면 『사랑 바다』 가 좀 더 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끝없는 바닥 - 제44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이케이도 준 지음, 심정명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6월
평점 :
품절


이케이도 준의 이름을 만나면 나는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그만큼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었다. ( 일드도 다 찾아서 봤다. ) 


제44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그의 데뷔작이 되었던 『끝없는 바닥』 을 펼치며 『한자와 나오키』 와 같은 기업소설( 좀더 세분화해보면 은행이 무대가 되는 소설 )의 시작을 엿볼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들썩거렸다.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 당시 “은행 미스터리의 탄생을 선언하는 작품”이라며 새로운 분야의 미스터리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주인공인 이기 하루카는 대형 은행에서 융자 담당으로 일하는 평범한 직원다. 외근을 나가던 중 마주친 동료 사카모토는 “너, 나한테 빚진 거다?” 라는 묘한 한마디를 남긴 채 자리를 떠났는데 몇 시간 후 시체로 발견된다. 사인은 알레르기로 인한 아나필락시스 쇼크다. 동료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사카모토가 고객의 돈을 횡령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온 형사는 사카모토의 아내인 요코가 이기의 전 연인이었기도 한 터라 이기를 의심하기도 한다. 사카모토의 업무를 인계받은 이기는 이 일련의 사태에 의문을 품고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소설은 벌어진 사건의 해결을 위한 주 서사에, 돈과 권력을 좇는 인물과 그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인물의 대립구도가 강조되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등장인물들의 대화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주인공을 보는 시선이 어떤지 금방 알 수 있다. 


회사는 너 같은 놈이 제일 다루기 힘들어. 출세에 혈안이 된 놈들이랑은 다르고, 그렇다고 해서 안온하게 월급쟁이 생활을 계속하는 것도 아니고, 조직에 달라붙어 있지 않으면 길거리에 나앉는다는 비애도 없고, 요컨대 너한테는 지킬 게 없어. 그러니까 조직 입장에서는 종잡을 수 없는 존재로 보이지. 

- p188


"그렇게 부은행장이나 부장이 중요합니까? 파벌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자기 출세를 위해 이용하고 있을 뿐이죠. 필요 없어지면 키우던 사람도 아무렇지 않게 짓밟는 놈들이에요. 선배 의견은 어떻습니까?"

"내 의견? 나는 월급쟁이야. 상사가 하는 말은 따를 수밖에 없어. 그게 기업의 논리잖아."

"비굴하네요. 비애가 느껴집니다. 그런 기업의 수장이 꼭 나쁜 짓을 하죠."

"이 새끼……. 장래가 아깝지도 않아?" 

- p277


작가는 은행에서 일하다가 소설가로 데뷔했기에, 그의 경험이 매우 전문적으로 현장감있게 녹아있다. 이 책이 처음 나온 1998년은 일본 장기 신용은행의 파산, 불량채권 등 일본이 금융위기를 겪던 시기라 더욱 이 책이 주목을 끌었다고 한다.


소설 속 사건의 시작은 은행에 관련된 일이었지만 무대는 '산업의 쌀'로 비유되는 반도체 업계로 확대되며, 연속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하드 보일드한 감각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 다만 오래 전 데뷔작이기에 비디오테이프 등의 오래된 아이템이 등장해서 옛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

주변의 시선으로 성격을 짐작했던 이기가 자신의 속내를 밝히는 장면에서 주인공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더 높아진다. 무엇인가 지킬 것을 갈망하며, 인생에서 키워갈 온기를 찾는 주인공. 


나는 다카하타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주위에서 마시고 있는 이들의 표정을 관찰하고 있었다. 즐거워 보이는 표정도 있는가 하면 가라앉아서 납빛을 한 눈을 가진 사람도 있다. 터질 것 같은 웃음도 있는가 하면 분노로 얼굴을 붉히고 뭔가를 필사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많은 인간이 있지만 집단으로 인식할 수는 없다. 있는 것은 개인이다. 도시 특유의 단절된 감각에 오랜 시간에 걸쳐 익숙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 내 가슴속에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의 추함과 허무함이 표류할 뿐이다. 


지킬 것이 필요하다. 무언가.

갈망하고 있었다. 추억이 아니라 현실에 있는 것으로서. 인생에서 키워갈 온기를 나는 갈망하고 있었다. 

-p310



이 소설 속 이기를 바탕으로, '한자와 나오키' 라는 캐릭터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추측을 해보게도 된다. 이케이도 준의 소설은 대부분 영상화가 되었는데, 이 소설 또한 2000년 2월, 후지 TV에서 와타나베 켄 주연으로 TV 드라마화 되었다. 

주인공의 끈질긴 추적으로 사건의 진실은 밝혀진다. 이 과정에서 은행과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관련된 음모, 은행 안의 복잡한 파벌 싸움을 마주하게 되고,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불의도 불사하는 비열한 상사와 정면 대결하게 되기도 하며, 살인을 저지르는 잔혹한 범죄자와도 맞서 싸운다. 


형사가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하겠지만 이기 씨, 이 사건은 분명 당신이 해결해야만 하는 사건이었던 겁니다. 사카모토 씨한테서 당신이 물려받은 은행원으로서의 본능이랄까 집념이랄까 그것이 사건을 해결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p392



소설의 제목을 다시 생각한다. 『끝없는 바닥』 . 누구의 바닥인가. 은행과 기업의 유착이 보여주는 비리의 바닥인가, 도덕을 상실하고 권력을 탐하는 인간의 바닥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끔찍한 남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7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르틴 베크 시리즈도 어느덧 일곱 권째를 펼쳤다. 일곱권을 책꽂이에 나란히 꽂아두니 책 등의 글자들이 점점 의미있어졌다. 한 글자씩 써있으니 'Martin Beck' 에서 'MARTIN' 이 완성된 후 'B'를 추가했다. 이번 편에서는 전직 경찰서장이 입원한 병실에서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마르틴 베크는 같은 경찰관 동료를 죽인 살인자를 검거해야 한다. 



살해된 스티크 뉘만은 동료들에게도 '나쁜 경찰'이라는 평을 받는 인물이다. 콜베리는 "그는 오늘날까지도 경찰 전체의 수치야. 나로 말하자면, 그와 같은 도시에서 같은 시기에 경찰로 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창피해(p117)" 라고 말할 정도다. "망할 연대감이라는 것이 우리의 제2의 천성이 되었단 말야. 우리는 단결심을 세뇌당했다고" 라면서 잘못된 것을 보면서도 지적할 수 없는 경찰조직에 대해 한탄한다. 마르틴 베크 또한 실마리를 찾으려 수사를 하면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경찰 조직의 추악한 민낯을 확인할 뿐이다. 스티크 뉘만은 고위 경찰이라는 지위에서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법을 집행했으며, 그의 긴 경력만큼이나 부당한 피해를 입은 사람이 많았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병실에서 수사를 이어가던 렌나르트 콜베리와 군발드 라르손은 갑자기 울린 총성을 듣는다. 솔나의 순찰조 크리스티안손과 크반트가 총을 맞는다. 누군가가 지붕에서 소총으로 경찰관들을 쏘고 있다. 아마도 그가 스티크 뉘만을 살해한 범인일 것이다. 그동안 범인과 대치하여 액션을 주고 받던 장면이 없었는데, 이번 편은 총알이 오고 가는 액션이 숨가쁘게 펼쳐진다. 콜베리와 라르손은 물론 마르틴 베크 또한 위험에 직면한다. 


『어느 끔찍한 남자』 는 범인이 누구인지 찾는 과정보다는 검거하는 과정에 집중하게 되는 소설이다. (범인은 다른 편들과 달리 금방 누군지 유추할 수 있다. ) 경찰을 향해 총을 겨눈 범인의 검거를 위해 최루탄을 터뜨리고 헬기도 투입되는 등 대규모 작전이 펼쳐진다. 앞선 에피소드들에서는 볼 수 없던 작전이다. 헬기 한 대는 격추되어 사상자가 발생하고, 마르틴 베크는 자진해서 건물해서 잠입한다. 장면들이 긴박감이 넘친다. 

그 짧은 순간에 마르틴 베크가 본 것은 그게 다였다. 그리고 시퍼런 사각형 총신에 큼직한 손잡이가 달린 헤메를리 권총의 기이한 생김새. 총은 작고 까만 죽음의 눈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표현을 어디선가 읽었던 게 기억났다. 하지만 주로 든 생각은 너무 늦었다는 거였다. 

- p324



등장인물의 눈을 빌려 묘사하는 스톨홀름 도심의 모습은 '쓸쓸함과 황량함'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1960~70년대의 사회제도와 구조에 대한 가감없는 묘사는 두 작가가 범죄소설의 형식을 빌려 복지국가라고 여겨졌던 스웨덴 사회의 여러 문제점을 고발하고자 했던 의도를 담고 있다. 

지난 십년동안, 스톡홀름 도심은 대대적이고 폭력적인 변화를 겪었다. 원래 있던 동네는 모조리 철거되고 그 자리에 새 동네가 지어졌다. 도시 구조 자체도 바뀌었다. 도로가 확장되었고 고속도로가 놓였다. 그런 활동을 부추긴 것은 사람들이 어울려서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꿈이 아니라 귀한 땅을 한 뼘도 남기지 않고 최대한 착취하겠다는 욕망이었다. 도심에서는 기존 건물의 구십 퍼센트를 허물고 기존 도로망을 깡그리 지운것만으로도 모자라 지형 자체에도 폭력적인 변화가 가해졌다. <중략>


힘없는 사람들은 교외로 추방되었고, 그들이 살고 일하던 활기찬 동네는 폐허가 되었다. 도심은 시끄러운데다가 통과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한 건설 현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서서히, 집요하게 새 도시가 솟아났다. 넓고 소란한 간선도로의 혈관, 번쩍거리는 유리와 금속의 얼굴, 죽은 콘크리트의 평평한 땅, 그리고 쓸쓸함과 황량함으로 이뤄진 도시가. 

- p82



책 속 사건은 종결되었지만, 사건이 일어나게 된 근본적 원인은 여전히 남아있다. 심지어 오늘날 현실에서도 비슷한 일은 계속되고 있다는 느낌에 씁쓸함을 느끼며 완독한 책을 다시 책장에 꽂는다. 추리소설이 아니라 사회고발소설을 읽었나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둑 신부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7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성주의에 대한 주제 의식뿐만 아니라 환상과 그 너머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둑 신부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6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니콜라스 하이델바흐의 ‘그림 메르헨‘ 속 「도둑 신랑」 을 읽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었다. 마칭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들을 읽고 있는 터라 이 책 또한 매우 궁금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