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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의 컬러링 일기
구작가 지음 / 예담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돌이켜보니 지난 주에는 두가지 컬러링 작업을 했다.
첫번째는 아이의 방의 페인트칠. 아이가 직접 고른 어쥬어 스카이(azure sky) 라는 색의 페인트를 벽에 도색해주기 위해 프라이머(젯소) 작업 등 준비작업이 많았다. 벽지 위에 바르면 쉽게 끝날 일을(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 벽지를 호기롭게 벗겨내는 바람에 엉겁결에 초배지 도배까지 경험해야 했던 파란만장한 작업이었다. 무엇인가 벽에 바르고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두번째 컬러링으로 이 책을 펼쳤다.

컬러링북의 인기는 프랑스를 필두로 유럽에서 먼저 시작됐다고 한다. 작년 가을무렵 세계적 베스트셀러이자 컬러링북의 원조 격인 「비밀의 정원」이 한국에서도 출간되면서 컬러링북 열풍이 시작되었던 듯. 컬러링북의 열풍을 보면서 '어른들의 색칠놀이려나. 키덜트를 위한 것인가? 복잡한 도안을 보면서 과연 힐링이 되기는 하는걸까' ( 오히려 나같은 사람은 선 밖으로 나가면 스트레스 일지도 모르겠다며) 여러가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한 권을 골라 직접 해보니 몰입효과는 최고다. 잘 칠해보고자 하는 욕심을 내려놓으니 복잡했던 머리가 비워지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사각사각' 색연필을 칠하는 소리도 경쾌하다. 누군가 색칠놀이는 오감을 쓰는 것이라고 하던데 정말 그렇다.
전문가들은 컬러링북의 유행에 대해 "아트 테라피"와 "안티 스트레스" 라는 두가지 키워드를 제시한다. 디지털 시대 속에 사는 사람들이 아날로그적 감성을 찾는 경향으로 이해된다고 했다. 어른이 되면서 잊고 살았던 도구로 색을 칠하며 어릴 적의 색칠놀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치유가 되는 것이라고. 또한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기에 잡념이 사라지며 '힐링' 효과를 내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무엇인가를 시작하기 전에 도구부터 갖추어 놓는 사람이 있다. 사실 내가 그런 사람이다. 본격적인 색칠을 해보기 전에 남들처럼 파버 카스텔이니 프리즈마등의 여러색의 색연필을 갖추어놓고 싶었다. 그런데 아들녀석이 여기저기서 선물로 받아놓은 색연필을 보니 새로 사기가 미안해지는 마음은 뭔가. 결국 녀석의 색연필들을 그러모아 색칠을 시작했다.

이 그림을 그린 구작가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한다. 들리지 않는 자신을 대신해 좋은 소리를 많이 들으라고 귀가 큰 토끼 베니를 그려내며 『그래도 괜찮은 하루』라는 책을 펴냈다. 지금은 빛도 잃어가고 있지만 씩씩하게 하루를 보내는 일상을 그린 컬러링북( 일기 )을 펴내며 희망을 담아내었다. 작가의 '소소한 즐거움', '따스한 즐거움', '달콤한 즐거움' 을 느껴보며 함께 책을 완성해본다.

컬러링 도안들은 난이도에 따라 단계별로 구성되어 있다. 마음은 이렇게 복잡한 것에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실력을 키우기 위해 쉬운 난이도의 앞페이지 것들을 도전했다.


함께 아이의 방을 칠하고( 페인트를 칠하겠다는 생각은 옆지기의 아이디어였다. ) 쉬는 동안 색칠을 하고 있는 나를 보더니 옆지기도 함께 색연필을 잡는다. 둘이서 말없이 한칸 한칸 완성해갔다. 둘이서 마주앉아 무엇인가를 해본 것이 오랫만이었던 듯 하다. 옆지기가 토끼의 몸통을 갈색으로 칠해버려도 괜찮다. 함께 색칠하다보니 완성됐을 때의 전체적 조화를 예상하며 색상 선택에 고심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끌리는 색을 선택할 수 있어 좋다. 밤톨군이 즐겨쓰는 '빨주노초파남보' 순서로도 칠해보았다.

물론 한 칸에 한가지 색으로 칠하다보니 은근 명암도 줘보고 싶고 다른 색도 써보고 싶다. 색칠 감각같은 것은 없지만 이것저것 시도해보며 색칠해보니 문득 그림도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맨 뒷면에 있는 작가의 완성본을 슬쩍 들춰보았다. 전혀 색을 칠할 수 없을 때는 따라해봐도 좋을 듯.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손에 잡히는 색도 틀리고, 힘 조절도 틀려지는 것이 컬러링의 또다른 매력인 듯. 한 페이지를 완성한 후 짤막하게 소감을 기록해 두면 마치 일기를 되돌아보듯 자신의 심리상태를 체크해 볼 수 있다고도 한다.

'컬러테라피'라는 것이 궁금해서 찾아 보았다. '컬러테라피' 란 색(色)을 매개로 치료효과를 보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색채디자인개발원 C&D 연구소'라는 곳에서는 상황에 따라 이런 색을 권한다.
1) 빨강 : 우울하거나 무기력할 때
2) 주황 : 슬픔과 상실감에 빠져 있을 때, 소화가 잘 되지 않을 때
3) 노랑 :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 우울할 때, 운동으로 통증이 생겼을 때
4) 초록 :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때, 주의를 집중하고자 할 때
5) 파랑 :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분하게 만들고자 할 때, 바쁘거나 힘겨운 일이 있을 때, 두려운 마음이 생길 때
6) 보라 :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할 때, 정신적 스트레스와 두려움이 있을 때
※ 자료: (주)한국색채디자인개발원 C&D 연구소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이용하면 더욱 쉽고, 멋지게 색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손으로 만지고 직접 느낄 수 있는 것을 구태여 원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간접 경험에 둘러싸여 있는지를 역으로 이야기해주는 듯 하다. '디지털 세대'로 자라난 우리들에게 기기와 미디어의 발달은 편리함을 제공했지만 그만큼 오감을 활용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앗아갔다. 컬러링 열풍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아날로그적인 놀이로의 회귀는 '디지털 디톡스' 의 하나라고도 말해지는 이유일 듯.

어느덧 「이불이 좋아요」라는 페이지를 완성했다. 밤톨군은 토끼의 귀가 어디로 갔냐고 묻는다. 네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으면 네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더라. 라고 대답해준다. 조각보로 이어진 베니의 이불을 보니 앤 조나스의 '조각 이불' 이라는 그림책도 떠오르고 페트리샤 폴라코의 '할머니의 조각보' 라는 그림책도 떠올랐다. 완성된 그림을 보며 그림책을 떠올리다니 나도 참 못말린다. 그래도 밤톨군의 방을 가족 모두가 페인트를 칠했듯 이 컬러링북도 함께 칠해볼까. 다함께 감상도 적고 그림책처럼 떠오르는 것들도 찾아보고 말이지. 내게는 우리집 남자 두명과 '함께' 하는 것이 최고의 힐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