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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사용법 ㅣ 라임 어린이 문학 6
낸시 에치멘디 지음, 김세혁 옮김, 오윤화 그림 / 라임 / 2015년 3월
평점 :

시간사용법
낸시 에치멘디 글 / 오윤화 그림
라임
「시간여행」이라는 소재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고 누구나 한 번 이상은 바라보았을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 후회가 되는 일이 있어 다시 바로잡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요. 그러나 어른에게도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바꾼다는 것은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꽤나 어려운 일입니다.
「시간여행」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영화 '백투더퓨처(Back To The Future, 1985)' 가 떠오릅니다.「시간여행」의 테마는 소설에서, 영화에서 그리고 동화에서 많이 사용되는 소재입니다. 대부분의 시간여행의 규칙은 '방관자'이어야 하는데 과거의 어떤 사건에 관여하게 되면 영화 '나비효과(The Butterfly Effect, 2004)'에서처럼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주인공 깁 피니는 머피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 같은 엉망인 날을 맞이합니다. 꼬일 대로 꼬여서 제대로 풀리는 일이 없는 날. 그리고 그 날 숲에서 이상한 할아버지를 만납니다. 무엇인가 모호한 말로 할아버지는 '실수를 취소할 수 있는' 기계를 주겠다고 합니다. 어떤 실수?

만약 네가 저지른 실수를 취소할 수 있는 기계를 갖는다면 어떨 것 같니?
게임에서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네가 저지른 실수를 취소할 수 있다면? p29

리셋 증후군
컴퓨터의 가장 좋은 점. 실수를 하면 '취소'를 누를 수 있다는 것. 기계의 좋은 점일 수도 있지만 현실도 그것처럼 '취소'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는 「리셋증후군」이 떠오르네요.
문득 시간을 쉽게 다룰 수 있다면 리셋증후군과 같은 새로운 현상들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꼬리가 뭅니다. 아이야. 너는 시간을 다루는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알겠니?
「시간여행」의 매개체
시간여행의 매개체로는 과학적인 타임머신에서부터, '마법의 시간여행' 에서 처럼 마법이 담긴 두루마리라던가 영화 '나비효과' 에서처럼 일기장이 되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가 있겠죠. 이 책에서는 '어너'(시간을 지우는 기계) 라는 이름의, 마치 무선비행기 조종기처럼 생긴 것이 등장합니다. 이것의 진짜 정체는 책의 끝무렵에 밝혀집니다.

시간여행을 다룬 이야기들은 읽어나가며 퍼즐을 꿰맞추는 재미가 있습니다. 앞의 이야기에 복선이 깔려 있죠. 아이들의 동화인지라 좀 더 스토리가 단순하게 구성된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앞 장을 들춰보면서 스스로 퍼즐을 맞춰봐야 하는 어른들의 소설과는 달리 친절하게 앞의 부분을 짚어서 설명해줍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독서력에 잘 맞춰 구성한 얼개들이 아이들에게 더욱 흥미롭게 다가갑니다.
이미 다른 매체를 통하여 시간여행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 제게는 아이가 시간을 다룰 때마다 조마조마해지고는 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난 밤톨군도 다음에는 그 위험성을 조금은 알게 되겠죠. 책 속에는 「나비효과」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등장합니다. 밤톨군과 이야기할 거리가 풍부한 동화군요.

그리고,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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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 butterfly effect )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과학이론이다.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E. Lorentz)가 1961년 기상관측을 하다가 생각해낸 이 원리는 훗날 물리학에서 말하는 카오스 이론(Chaos Theory)의 토대가 되었다. 변화무쌍한 날씨의 예측이 힘든 이유를, 지구상 어디에서인가 일어난 조그만 변화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날씨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으로 설명한 것이다.
오늘날 세계화 시대에서 나비효과는 더욱 강한 힘을 갖는다. 디지털과 매스컴 혁명으로 정보의 흐름이 매우 빨라지면서 지구촌 한 구석의 미세한 변화가 순식간에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것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출처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19804&cid=40942&categoryId=32227 |
주인공은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를 목격하고 두려움을 알아갑니다. 제대로 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시간을 돌려야 하고,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 걸까요.
이제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멋대로 바꾸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p111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이 친숙한 우리 아이들에게 '시간여행' 이라는 소재를 통하여 현실은 온라인과 다르다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쉽게 '리셋' 해버리는 결과가 어떤 것인지. 현실은 쉽게 '리셋'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마지막, 일희일비(一喜一悲), 새옹지마(塞翁之馬)
마지막으로 주인공의 입을 빌어 한가지를 더 이야기해주는 군요. 인간만사는 새옹지마(塞翁之馬) 라는 것을요. 그러니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말라고.
때로는 나쁜 일이 큰 그림에서 보면 그리 나쁜 일이 아니고,
순간적으로 좋은 일이 끝까지 좋은 일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p177

아이의 동화에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거리를 찾아내고 나니 찬찬히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책의 중간마다 잠시 멈추어 아이와 어떤 이야기를 나눠볼까 생각도 해보게 되구요. "SF 동화라는 흥미로운 틀 안에서 매 순간 긴박감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행간마다 시간에 대한 성찰과 철학적 물음이 깃들어 있어 재미와 감동, 교훈을 동시에 선사하는 작품"이라는 추천사에 100% 공감합니다. 180여페이지의 그저 재미있는 소재의 웃고 끝낼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가 참 많은 생각거리를 만나고 나니 들고 있는 책의 무게가 다시 느껴지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