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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꼬리가 있다면? - 2014년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 라가치 상 수상작 ㅣ 푸른숲 그림책 28
율리아 호르스트 글, 다리아 리치코바 그림, 손화수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만약에 꼬리가 있다면?
율리아 호르스트 글 / 다리아 리치코바 그림
40쪽 | 328g | 200*260*7mm
출간월 : 2015년 2월
푸른숲주니어
' 만약에 '
아이와 책을 읽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상상을 펼칠 때 이보다 좋은 말은 없을 듯 합니다. 주인공이 겪는 사건을 이 말로써 다시 뒤집어보기도 하고,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기도 하면서 말이지요.
물론 이 말을 즐거운 상상이 아닌 지나간 과거를 '반성' 해보거나 더 나아가 '후회'하는데 사용한다면 또 그만큼 서글픈 단어도 없습니다. 전 어른이 되고 나서 한동안 '만약에' 란 말의 방향을 주로 과거로 돌려 사용했던 것 같아요. 이제 아이와 함께 책을 읽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다시 이 말을 즐거운 상상에 사용하며 유쾌한 기분을 맛보고는 합니다. 그러기에 제목에서 '만약에' 라는 말을 만나자 빙그레 웃음부터 지었습니다.
표지와 제목을 보며 아이와 책의 내용을 상상해봅니다. 아이는 우선 '꼬리'라는 말에 '구미호'를 생각해냅니다.
: 꼬리가 아홉개나 달렸잖아요. 사람 모습이구요.
: 그래, 그럼 구미호 나라에서 사람 모습일 때 꼬리는 그냥 장식일까?
: 음. 꼬리 아홉 개를 빙글빙글 돌리면 하늘을 나는 프로펠러가 되는 거예요!

▷ 애니메이션 '다다다' 의 (우주) 시터 고양이 '바바'
녀석과 한바탕 신 나는 상상을 해본 후 책을 펼쳐봅니다. 만약 사람에게 꼬리가 있다면 말야~
우리 삶은 지금과 많이 다를 거예요.
하지만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거예요.
누구에게나 꼬리가 있다면, 팔과 다리처럼
꼬리도 당연해 보일 테니까요.

손 대신 서로의 꼬리를 잡고 가는 어린 아이들 모습을 보며 아이는 벌써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 엄마, 저 아이들 옷에는 꼬리 구멍이 있어야 겠어요. " 꼬리 하나만으로 변화되는 생활의 모습들이 유쾌하게 그려집니다.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이야기를 통해 꼬리가 생기는 것만으로 평범한 일상이 어떻게 새롭고 신기하게 변모하는지 지켜보게 되지요.

작가는 유쾌한 상상 뒤에 슬쩍 인간에 대한 풍자를 끼워 넣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그동안 인간이 그 시대의 관습이나 유행에 맞춰 외모를 가꾸기 위하여 벌였던 행동을 응용합니다. 과거의 여성들이 잘록한 허리를 보여주기 위해 과도한 코르셋을 착용하여 건강을 해친 일이나 오늘날에도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은 머리카락이나 얼굴을 보이면 안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죠. 그리고 아이는 ' 왜? ' 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지게 됩니다. 이 책이 인간과 삶의 관계를 구석구석 잘 그려 낸 그림책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지요.

그림작가는 등장하는 사람들을 모두 각기 다른 꼬리로 꾸며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꼬리가 있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등장하지만 모두 개성과 생동감이 넘치는 터라 쉽게 책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특별한 모험이나 자극적인 내용 없이 기발한 질문 한개에 어울리는 멋진 삽화와 함께 얼마든지 흥미진진해질 수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으신가요. 빛바랜 듯한 독특한 종이 위에 그려진 흑백과 컬러를 오가는 아름다운 그림이 꼬리가 있는 사람의 여러 모습을 인상 깊게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이 책은 2014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 라가치 상 OPERA PRIMA(신인상)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지요.

슬쩍 관용구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떼레야 뗄 수 없는 관계" 가 "꼬리를 떼레야 뗄 수 없는 관계" 가 되었네요.

책 속 '꼬리인류' (혹은 외계인) 들은 우리를 상상합니다. 우리가 꼬리가 있는 그들을 상상하듯 그들은 우리처럼 '다른 별에는 혹시 꼬리가 없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을까?' 라고 상상하며 그것들을 책으로, 영화로 만들어 냈겠지요.

상상해 보세요. 만약 나에게 꼬리가 있다면?
' 혹시 '
이제 '만약에' 로 시작한 상상은 '혹시' 라는 말로 변합니다. 아이는 우리 인류가 먼 조상때에는 꼬리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놀랍니다. 퇴화된 꼬리뼈를 직접 만져보며 "엄마, 혹시 내 꼬리가 자라고 있는 건 아닐까요? " 라고 하지요.

책 속과 면지에 가득한 꼬리들을 살펴보며 어떤 동물의 꼬리와 닮았을 까 상상해보는 건 이 책의 또다른 즐거움일까요. 만약 내가 꼬리가 있다면 어떤 꼬리를 가지고 싶은지 골라봅니다. 아이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것도 꽤 즐겁다는 것을 배웁니다.

꼬리가 있다면? 이라는 기발한 발상을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담은 이 한 권의 그림책으로 마음껏 상상을 해보고,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보다가, 진화나 생물에 관한 과학 이야기도 나누기도 하고, 인간의 역사를 되돌아 보며 역사 이야기로도 튀어보게 되네요. 숨겨있는 여러 이야기들의 흔적을 찾아 아이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눠보시는 건 어떠실까요. 꽤 즐거운 일이 될 것 같지 않으신가요.
* 아이가 꼬리에 관해 흥미를 가진다면 이런 책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