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지네 현관문에 쪽지가 있어요 생각하는 숲 16
모리스 샌닥 글.그림, 홍연미 옮김 / 시공주니어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로지네 현관문에 쪽지가 있어요

The Sign On Rosie's Door  

모리스 샌닥 글/그림

생각하는 숲 - 16

48쪽 | 243g | 175*227*9mm

시공주니어

 

「생각하는 숲 시리즈」.

이 시리즈의 책들은 꽤 많이 읽었지만 리뷰는 얼마 해보지 않은 듯 합니다. 시리즈의 이름처럼 많은 생각을 이끌어주는 책들로 구성이 되어 있지요. 모리스 샌닥의 책들은 늘 충분한 생각거리를 주는 작가인터라 늘 이 시리즈에 포함되고는 합니다. 책을 펼치기 전부터 심호흡을 하였다지요.

 

이 책은 루스 크라우스(Ruth Kraus) 의 글에 삽화를 입혔던 그림책 '구멍은 파는 것(A Hole Is To Dig)' 로 모리스 샌닥이 삽화가로서 인정을 받게 된 후 하퍼 앤 브라더스(Harper and Brothers)사의 편집자 우슐라 노드스툼(Usula Nordstorm)의 권유로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낸 첫 그림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초판이 1956년에 나오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모리스 샌닥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아이들의 '상상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듯 싶습니다.

 

첫번째 이야기부터 네번째 이야기까지로 구성된 이야기 보따리에는 아이들의 신기하고 근사한 상상들이 가득차 있습니다. 어느 여름날 상상과 놀이를 통하여 즐겁게 지내는 모습들이 그려져 있죠. 널리 알려진 「괴물들이 사는 나라」 등의 중기 이후의 일러스트에 비해 초기의 가늘면서도 섬세한 펜의 느낌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듯 하기도 합니다. 

 

'비밀을 알고 싶으면 세 번 두드려' 라고 씌여진 로지네 집 문 앞에 걸린 쪽지로 시작하는 첫번째 이야기. 캐시가 로지네 현관문에 있는 쪽지를 보고 문을 두드리자, 로지가 나와 자신을 환상적인 목소리를 가진 가수 '앨린다'라고 소개하고, 쇼를 할 거라고 말합니다. 함께 하고 싶던 캐시는 아라비아 무용수 '차차루'가 되기로 합니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뭔가가 되어 보는 것은 어린 시절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겠지요. 한참 겨울왕국의 '엘사'가 되어 거리 곳곳과 유치원을 누비던 여자아이들이 떠오릅니다. 밤톨군은 지구를 지키는 영웅이 되기 위해 보자기나 벨트가 필요하다고 했었지요. 결국 탄력이 좋았던 제 스포츠 머리띠 하나를 허리에 차면서 잔뜩 늘려놓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니 드래곤이 되어 마트를 가기도 했고, 상자 하나 뒤집어쓰고 자동차가 되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이 모여들고 쇼가 시작되는데 중간에 등장하는 불청객 레니는 어쩌다보니 방해꾼이 되어 버립니다. 소방관 놀이를 하고 싶은 레니와 쇼를 계속하고 싶은 로지. 잠깐 같이 노는 듯 하더니 레니는 남자애들을 몰고 사라져 버립니다. 결국 여자친구들도 떠나며 쇼를 보러 왔던 친구들이 모두 가버렸습니다.

 

 

몸에 맞지 않지만 한껏 꾸민 로지의 쓸쓸한 뒷모습과 바닥에 쓰러진 채 놓여있는 의자들의 모습이 눈에 먼저 들어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글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말 멋진 쇼였지?" 로지가 묻자 캐시가 대답했어요.

"내가 여태껏 본 쇼 중에 최고였어. 다음에 또 하자. "

 

로지는 혼자 남았어요.

고지는 의자 위로 올라가 가만히 입을 열었어요.

"신사 숙녀 여러분, 앨린다가 '햇살 비치는 거리에서'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이윽고 앨린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를 불렀답니다.

 


 

 

 

그 다음 이야기들.

아무것도 할 게 없어 심심해하는 로지. "음, 뭐든 하렴" 이라는 엄마의 말에 로지는 뭐든 하기로 했습니다. 로지는 현관문에 쪽지를 붙인 뒤, 빨간 담요를 덮어쓰고 지하실 문에 걸터앉습니다. 쪽지에는 ' 나를 만나러 왔어도 찾기는 쉽지 않을 거야. 난 지금 변장하고 있거든, 앨린다 '라고 쓰여 있지요. 똑같이 아무것도 할 게 없어 심심했던 친구들은 놀러왔다가 쪽지를 보고 앨린다를 찾아 나서고, 함께 앉아 '매직맨'을 기다립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친구들은 내일 다시 모이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첫날은 아이들은 아주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래야 매직맨이 오니까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그냥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면서 중얼거립니다. "이거 재미있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엄마들이 오후 내내 뭘 했느냐고 묻자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모자랐고, 내일 다시 할 거라고 대답했답니다! 엄마들은 더이상 캐묻지 않고 "그랬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여줍니다.

 

다음날, 눈을 꼭 감고 기다리다 앨린다가 인사하는 소리를 듣죠. " 안녕하세요. 아, 정말 친절하시네요.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아줌마한테도 안부 전해주시구요. ". 그동안 모두 손을 모으고 눈을 뜨지 않고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던 녀석들의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요. 녀석들은 매직맨이 아이들 모두 폭죽이 될 거라고 했다는 말 한마디에 신나는 폭죽 흉내내기 놀이를 한답니다. 자유분방한 먹색 펜화에 녹색과 적색의 보색 대비로만 이루어진 일러스트의 색감은 경쾌함과 율동감이 넘쳐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표현해주는 듯 합니다. 아이들 각각의 얼굴 표정과 입 모양 등 하나하나 섬세하게 묘사된 손동작과 발동작이 지켜보는 이들도 덩달아 신 나게 하는군요.


 

 

 

 

아이들의 엉뚱한 생각, 행동을 그들의 눈높이로 내려와 함께 바라본 적이 있는 부모라면, 그것이 얼마나 유쾌하고 즐거운 상상인지 아시려나요. 그들의 엉뚱한 상상의 공이 마구 튀어올랐을 때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그저 의미없는 장난이 되고, 시간 낭비로 전락해버리는 경우가 많은 듯 해요. 결국 이런 상상은 제지하고 통제하는 대상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어린 시절 몸이 약해 침대에 누워 몽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는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아이들이 마음껏 상상하고 자유롭게 뛰놀 수 있도록 지켜보라고 권유하는 듯 합니다. 여러 책들을 펴내면서 다양한 기법을 작품에 도입하고 작가적 역량이 커진 모리스 샌닥이지만 작가의 가장 진솔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데뷔작 등의 초기작에서 가장 잘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모리스 샌닥은 어른의 기준에 아이를 맞추지 않고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 아이가 만들어 낼 세상이 얼마나 무궁무진한지를, 잠들기 전에도 끝나지 않는 로지의 근사한 상상으로 분명히 말해 줍니다. 굉장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로지는 고양이 자리에서 고양이가 되어 잠듭니다. 고양이는 로지의 침대에 뉘어 다소곳이 이불을 덮어주고 말이죠.

 

이미 다 만들어진 장난감으로 놀고, 심심하면 어른들의 스마트폰을 뒤져 게임이나 동영상을 보는 요즘 아이들에게 이 책은 무엇을 느끼게 해줄까요. 심심해하는 어른이들에게 장난감이 없어도 얼마든지 '상상놀이' 만으로도 하루가 짧게 느껴질 정도로 재미있게 놀 수 있다고 손짓하고 있지요. 누구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친구가 옆 집에 살았으면 좋겠다구요?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로지와 같은 친구가 되어보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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