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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몬스터 ㅣ 라임 어린이 문학 5
사스키아 훌라 지음, 전은경 옮김, 마리아 슈탈더 그림 / 라임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화장실 몬스터
사스키아 훌라 글 / 마리아 슈탈더 그림
라임 어린이 문학 - 05
출간월 : 2014년 12월
80쪽 | 174g | 153*225*6mm
라임
" 언제나 퀴퀴한 냄새가 나는 데다 바람이 숭숭 들어와서 몸이 달달 떨리는 학교 화장실.
학교 화장실에서는 걸핏하면 누런 물웅덩이에 발이 쑥쑥 빠지고, 운이 아주 나쁘면 양말까지 쫄딱 젖는 일이 있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구역질이 훅훅 치밀곤 했지요 " - 화장실 몬스터. p21
책 속 주인공 반다가 이야기 해주는 화장실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어린 시절 다니던 초등학교( 그 시절에는 국민학교라고 불리웠었죠. )의 화장실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어떤 학교는 아예 외부에 별도로 화장실 건물이 있기도 했었어요. 겨울에는 얼마나 추웠던지, 그리고 당번이라도 되어 화장실을 청소해야 할 때면 주인공처럼 구역질이 치밀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얼마 전 밤톨군네 초등학교의 짖궂은 3학년 아이가 핫 팩을 변기에 버리는 바람에 화장실이 막혀서, 그 학년은 통째로 핫팩 금지령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요즘의 초등학교의 화장실은 시설도 좋아졌고 많이 깨끗해졌지만 이처럼 사용하는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보니 항상 청결한 관리가 필수겠지요. 아마도 단체생활을 하는 아이들에게 이 화장실이라는 공간은 분명 조심스럽고 불편한 공간임에는 틀림없을 듯 해요.
주인공 반다는 '보드랍고 따뜻한' 화장실을 꿈꿉니다. 학교 옆 카페의 화장실처럼 따뜻하고 뽀송뽀송한.
반다는 장학관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어 화장실을 좀 보들보들하고 쾌적하게 만들어 달라는 제안의 편지를 썼지만 답장을 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지저분해서 불쾌한 화장실에 이제는 커다란 검정색 구두의 무서운 사람이 나타난다는 소문마저 돌죠. 그 구두가 사라진 자리에는 희미한 붉은 얼룩도 있었다나요. 아이들의 입과 입으로 전해지면서 어마어마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니 화장실 이야기는 이제 전교생의 관심사가 됩니다.
책 속 숨은 재미 #1. 소문이 만들어지는 과정
모든 학교에서는 이러한 '괴담' 이 하나씩은 있는 듯 해요. 책 속 학교에서는 이제 '화장실 몬스터 괴담' 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렇듯 학교에서의 '괴담' 즉 소문이 어떻게 시작되고 전해지는지 그 속성을 재치 있게 보여줍니다. 사소한 일 하나가 입과 입을 거쳤을때 어떻게 재 생산되는지 말이죠.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직접 확인하지 못한, 전해들은 이야기가 엉뚱한 것일수도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으려나요.
책 속 숨은 재미 #2. 두려움과 호기심, 공포를 놀이감으로.
불안감이 커지자 직접 찾아 쫓아내기로 결심한 아이들은 먼저 몽타주부터 그려봅니다.
"그런데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누군가의 이 한마디에 아이들은 얼어붙습니다.
검정색 구두를 신었다고 반드시 사람이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양팔을 앞으로 쭉 뻗은 채 텅빈 눈으로 학교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무시무시한 좀비일 수도 있잖아요. 어쩌면 머리가 엄청나게 큰 외계인일 수도 있고요. 또 전기톱을 들고서 침을 질질 흘리는 몬스터일 수도 있지요. 그것도 아니면 영화에서처럼 미쳐 날뛰는 늑대 인간일 수도 있어요. p48
검정색 구두를 신은 수상한 남자를 잡기 위해 시작한 몽타주 그리기가 신 나는 몬스터 그리기로 변질되는 과정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몬스터란 존재를 무서워하면서도 반면 호기심을 느끼며 즐거워하는 이런 이중적인 모습은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의 속내 그대로 일 듯 합니다. 공포를 놀이로 순식간에 전환시키는 아이들의 유연한 일상을 절묘하게 포착해 낸 작가의 재치가 빛이 나는 듯 해요.

이제 한 두명의 아이들의 움직임이 학교 전체의 움직임으로 변합니다. 아이들은 체육관에 모여 일명 '화장실 몬스터' 를 퇴치할 방법을 의논합니다. 몬스터 퇴치를 위해 아이들의 의견을 모을 때, 어떤 의견도 무시하지 않는 균형 잡힌 모습을 보여 주는 주인공. 또래 친구들이 의견을 낸 아이를 타박할 때도 '아주 좋은 의견'이라고 용기를 북돋우는 모습에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정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견을 내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무엇인가를 해결해나가는 경험,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작가의 메시지를 더불어 읽게 됩니다. 아이들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모둠을 짜서 각각의 의견에 맞추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뒤에 하나하나 실천하기로 하죠. '끈끈이 모둠', '못 방석 모둠', '개 모둠', '마늘 모둠'.. 아이들의 상상력은 모둠 이름에서부터 독특함을 보여줍니다. 저절로 웃음이 쏟아집니다.

수업이 시작되어도 아이들이 나타나지 않자 당황한 선생님들도 모이고, 점심시간인데도 아이들이 집에 밥을 먹으러 오지 않자 부모님들도 모였습니다.
책 속 숨은 재미 #3. 열중하는 아이들, 지지해주는 어른들.
아이들은 여태껏 학교에서 이렇게 온 힘을 쏟아 가며 무언가를 열심히 해 본 적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이 상황이 은근히 재미가 있기도 하고 흥분이 되기도 했어요. p64
수많은 그림이 체육관 바닥을 메웠고, 벽에는 각 계획의 장점과 단점을 적은 목록이 붙었지요. p66
이런 모습 때문이었을까요. 선생님과 부모들은 아이들의 작업을 막지도 않고, 강제로 해산시키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하든 끝낼 수 있도록 부모끼리 의논하여 학교에서 오믈렛을 만들어주기로 하지요. 이렇듯 어른들의 조용한 지지 속에 아이들은 극적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됩니다. 어떻게 이루었는지는 책 속에서 확인해보시기를요. 아이들은 화장실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용자의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답니다.
화장실에 나타난 커다란 검정색 구두에서 비롯된 두려움이 아이들의 기발한 상상력을 통과하면서 무시무시한 소문으로 몸집을 불렸다가, 엉뚱한 몬스터 퇴치 작전 소동을 불러오는 얼개를 통해 학교 화장실에 대한 아이들의 고민과 불만을 능청스럽게 그려낸 재미있는 이 작품.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끼며 즐겁게 읽고, 함께 읽는 어른인 저는 아이들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이루고 스스로 해답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한발 물러서 기다려주는 모습에 큰 인상을 받게 되었네요.
작가의 아이에 대한 믿음과 따뜻한 시선 덕에 책 속 아이들은 '보들보들' 한 화장실을 가지게 되었고, 아이와 저는 마음 속에 기분좋은 '보들보들' 한 온기 하나를 얻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