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소녀 어린이작가정신 클래식 16
제리 핑크니 글, 김영욱 옮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원작 / 어린이작가정신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그동안 알게 모르게 우리는 유럽, 미국의 그림책이나 동화를 먼저 접한 터라 착하고 선한 주인공, 공주, 왕자의 이미지를 떠올리라고 하면 서구인들 특히 백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요즘 들어서야 우리나라의 좋은 그림책들도 많고 아시아, 중동 등 다문화권의 그림책들이 소개되고는 있지만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파고들어 있는 일종의 문화 사대주의를 없애기에는 아직 어려운 실정이지요. 그러기에 밤톨군이라도 좀 더 넓은 사고를 가지고 있으면 하는 생각으로 책을 살피고는 합니다.

 

그런 중에 그림책 모임에서 「제리 핑크니」라는 미국의 작가를 소개 받았습니다. 그의 그림책 속 인물들이 주로 흑인( 아프리카계 ) 이더라구요. 『눈오는날』의 작가 에즈라 잭 키츠의 그림책 주인공들도 주로 흑인아이이기는 했군요.

 

제리 핑크니의 『이솝우화』중의 어떤 이야기에는 아시아인이 나오기도 하죠. 이렇게 여러 인종을 다양하게 묘사하는 작가는 저의 짧은 그림책 이력으로 처음 만나본 것 같습니다.

 

이 작가의 이력을 먼저 살펴볼까요.

 

 

 

제리 핑크니(Jerry Pinkney, 1939/12/19 ~ )

 

미국의 작가 겸 삽화가로 1939년 12월 29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 시대 가장 뛰어난 그림책 작가 중 하나로, 1964년부터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 『미랜디와 바람 오빠』 『노아의 방주』 『미운 오리 새끼』 『사자와 생쥐』(2010) 등으로 미국 도서관협회에서 주는 칼데콧 영예상을 여섯 차례나 수상했으며, 코레타 스콧 킹 상을 다섯 차례나 수상했습니다. 수년 동안 그의 그림들은 미국과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서 전시되었고, 1988년에는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 상의 미국 후보로 오르기도 했지요. 제리 핑크니는 특히 이 책을 비롯한 『이솝우화 그림책』 시리즈를 위해 이솝우화집에 담긴 다양한 이미지를 30 여년 동안 깊이 연구하여, 전혀 새로운 이솝우화 그림책을 만들어냈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섬세하고 생동감 있는 그림으로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살아있는 그의 작품은 다양한 문화를 즐겨 다루며 상당 부분이 미국 흑인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현재 미술예술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자네 넷, 손자손녀 아홉 명과 함께 뉴욕 주 크로톤 온 허드슨에 살고 있습니다.

 

 

'그림과 작가이야기' 에 따르면 제리 핑크니는 6남매가 뒹굴뒹굴 어울려 자라는 집에서 자랐고, 엄마는 늘 책을 읽어 주었다고 합니다. 주로 안데르센 동화들이었는데, 그 외에도 남부 흑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지요. 어린 제리는 그 둘이 다르다는 것을 얼핏 느끼게 되었대요. 그것은 유럽인들의 목소리와 자신의 뿌리인 흑인들의 목소리라는 차이였지요. 그리고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는군요.

 

「소수 인종(을 대변하는) 영웅 없이 자라는 소수 인종 어린이인 나는 주변인이라고 느꼈다. 왜냐하면 나를 판타지나 역사 속에 자리매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희의 희망과 꿈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하는 온갖 은근한 메시지를 받게 된다. 문학, 영화 등 다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늘 제외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변두리에 있다고 “그들 중 하나가 아니다”라고 느낀 것을 기억한다」

그림책과 작가이야기 3 / 서남희 저 / 열린어린이

열린어린이 웹진 : http://www.openkid.co.kr/webzine/view.aspx?year=2010&month=11&atseq=1902

책 속 인용 출처 : http://www.tolerance.org/magazine/number-10-fall-1996/true-pictures 

 

흑인 예술가가 그래픽 아트 분야에서 이름을 날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고, 자기 가족과 다른 흑인들에게 초강력 역할 모델이 되기 원했던 그는 70년 평생 그림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해 온 듯 하지요. 전 이렇게 작가 제리 핑크니를 먼저 알게 되고, 그리고 이번의 신간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성냥팔이 소녀

The Little Match Girl

제리 핑크니 글/그림, H. C. 안데르센 원저

32쪽 | 411g | 223*285*10mm

어린이 작가정신

 

제가 어릴 적에 읽었던 안데르센 동화. 마침 표지도 성냥팔이 소녀였지요. 79년에 나온 저학년 어린이를 위한 세계동화 중 한권입니다. 줄거리 위주로 요약된 이 책에서 전 '성냥팔이 소녀' 와 '인어공주' 이야기를 너무도 싫어했습니다. 슬펐기 때문이지요.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읽었습니다. 싫으면서도 차마 눈을 뗄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다시 만나보는 성냥팔이 소녀. 섣달그믐, 성냥을 팔기 위해 길을 나선 소녀는 신발조차 신지 않은 채로 살얼음이 낀 거리에서 아무도 사지 않는 성냥을 팔기 위해 애씁니다. 마차와 자동차가 혼재했던 1920년대, 대공황 이전 눈부실 정도로 찬란했던 미국을 배경으로 자본주의의 부와 번영의 짙은 그림자가 추위에 떠는 소녀의 모습에 투영되어 있습니다.

 

 

 

마차와 부딪힐 뻔 하여 신발마저 잃어버리고, 성냥한 개도, 꽃 한송이도 팔지 못했던 터라 아버지의 매가 무서워 집으로 돌가가지 못합니다. 어린 시절 읽었던 그림책과 애니메이션에서는 소녀가 다른 집 창문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이 책에서는 그 장면 대신에 풍요로운 도시의 시장에서 모피코트에 화려한 모자로 차려입은 사람들의 가득찬 장바구니와 낡고 헤어진 옷의 소녀를 대비시켜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길 중 어느 하나도 소녀에게로 향해있지 않습니다.

  

절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추위에 성냥불의 온기에 의지해보려는 소녀. 그러나 성냥 불씨는 금방 꺼지죠. 소녀는 다 타 버린 성냥개비 끄트머리를 손에 쥐고서 그저 동그마니 앉아 있을 뿐입니다. 소녀의 얇은 머릿수건과 옷에 쌓여가는 눈마저 녹이지를 못하는 약한 불씨. 정말 애처롭습니다.


  

 

소녀는 커다란 난로와 근사한 잔칫상,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를 꿈꿉니다. 온기 어린 자그마한 불빛, 아마도 소녀가 원했던 세상 속 따스함이었겠지요. 그러나 세상 속 사람들은 누구하나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사실 너무 잘 알려진 이야기에 삽화를 그릴 때는 작가들도 부담스러울 듯 할텐데 제리 핑크니는 맑은 수채기법으로 그려진 등장인물을 통해 내용과 그림이 한층 풍부해지도록 꾸미지요. 소녀의 마지막 환상으로 할머니가 나타납니다. ( 소녀는 아프리카계인 듯 한데 이 장면에서는 할머니는 그리 보이지 않아서 잠깐 오래 들여다 보았지요 )

 

" 할머니, 저도 데려가 주세요! 성냥불이 꺼지면 할머니는 사라질거예요. 따뜻한 난로처럼, 맛있는 거위 요리처럼,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할머니도 사라지고 말거예요. "

 



 

 

소녀는 얼마나 춥고 외로웠을까요. 소녀는 기쁜 마음으로 땅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저 멀리 추위도, 배고픔도, 고통도 더는 없는 나라로 다가갑니다. 죽어가는 한 아이의 간절한 소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동화는 안데르센이 빈곤하게 소녀 시절을 보낸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작품이라고 하지요. 조금만 주제를 더 증폭해보면 성냥팔이 소녀의 죽음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제 12월. 벌써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리기 시작하고 곳곳에 트리들이 장식되기 시작합니다. 구세군의 종소리도 곧 울리겠죠. 이 맘때면 주위의 소외된 이웃이 없는지 살펴보게 되지요. 문득 '십시일반' 이라는 인권만화에서 패러디한 '성냥팔이 소녀 in KOREA' 라는 만화가 떠오르네요. 눈내리는 겨울, 노래방 간판 옆에서 성냥불을 켜고 눈물 짓고 있는 외국노동자의 모습. 그리고 그녀의 중얼거림이 한 페이지에 그려져 있었지요. 눈을 돌려보변 우리의 주변에 여전히 '성냥팔이 소녀' 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이 때만 잠깐 반짝했던 도움들이 문득 아이에게 부끄러워지는 부모마음이네요.

 

20세기 초반, 부유한 도시 길거리를 찍은 사진 대부분에는

채소와 꽃과 사탕과 성냥을 파는 거리의 상인들이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된 내게도 그들의 모습은 잊히질 않고

이따금 생생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 제리 핑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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