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아름드리나무 라임 어린이 문학 4
루이사 마티아 지음, 바르바라 나심베니 그림, 이현경 옮김 / 라임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달동네 아름드리나무

라임 어린이문학 - 04
루이사 마티아 글/바르바라 나심베니 그림

출간일 : 2014.09.16
151쪽 | 300g | 153*225*10mm

라임

 

 

이사를 자주 다니고, 거의 공동주택에서만 살아왔던 저로서는 집과 집 사이로 꼬불꼬불하게 난 골목길이나 담벼락, 문 밖에서 "OO야, 놀자~" 라고 부르던 친구들의 목소리에 대한 추억이 거의 없습니다. 반면 옆지기는 서울의 한 지역에서 토박이로 살아온 터라 "우리 동네" 에 대한 기억이 뚜렷하지요. 이 책에 나오는 친구들처럼 이웃과 반가이 인사를 나누고 친구들을 소리쳐 불러 골목골목을 어울려 뛰어다녔던 이야기를 아이에게 종종 해줍니다. 날이 어둑해지면 어느 한 집에서든 먼저 "밥 먹어라~" 라는 소리가 들리면 흩어졌다가 후다닥 먹고 다시 모이고, 엿장수가 오는 날이면 누군가 자기 집 주전자 들고 나와서 엿으로 바꾸어 먹었다가 다함께 혼나고 말이죠. 늘 이야기 속에는「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함께」 였기에 더욱 행복하고 즐거웠을 기억들. 그 이야기를 할 때 짓곤 하는 옆지기의 미소 가득한 표정이 전 늘 부럽습니다.

 

어떤 날은 잔뜩 꼬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술술 풀리기도 하면서 하루하루는 그렇게 흘러간다.

무슨 일이든 순리대로 흘러가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없이 아름답기만 한 날들도 있을까?

그런 날 들도 있다.

p.7  

 

할머니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부터, 아니 더 어렸을 때부터 그곳에 있던 집. 그리고 그 집 들이 들어서기 전부터 서있던 아름드리 나무. 책 속의 서민주택지역, 달동네라고 불리는 지역의 아이들은 풀밭의 나무를 오르기도 하고, 나무 주위에서 뛰놀며 하루하루 행복하게 지냅니다. 이 곳은 이탈리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소피아네 가족, 아프리카에서 온 술레이만네 가족, 필리핀에서 온 윌슨네 가족, 브라질에서 온 조콘다네 가족, 그리고 홀로 살아가는 마리아 할머니, 수위인 마리오 아저씨가 서로 믿고 의지하며 한 가족처럼 지내는 마을이죠.

 

 

그런데 어느날, 이 지역에 건설 장비로 무장한 '그들'이 쳐들어와 달동네에 쇼핑 센터를 짓겠다고 선포하죠. 그 시작으로 먼저 이 나무를 베겠다고 합니다. 삶이 여유롭지 않은 어른들의 약점을 쥐고 협박하는 통에 처음에 반대하던 어른들도 하나둘 슬픈 표정으로 나무를 포기하려고 하지요.

 

그러나 아이들은 이 나무를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나무' 를, 그리고 '마을' 을 지키는 것이 '우리'를 지키는 것임을 느낀 것일까요. 아이들은 나무를 지키기 위하여 말하는 나무를 만들어보자는 기발한 작전으로 당당하게 '그들' 과 맞섭니다.

 

 

아이들은 나무 속에 무전기를 숨겨놓고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줍니다. 마땅한 대답을 찾기 위해 옛날 이야기 책에서 주로 대답을 찾고는 했죠. 일종의 바넘효과(Barnum effect) 라고 할까요.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들어맞을 수밖에 없는 일반적인 정보'를 듣고도 그게 '꼭 내 이야기 같다' 라고 믿으려는 경향이 있죠. 이렇게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심리적 특징을 자신만의 특성으로 여기는 심리적 경향을 바넘효과라고 부릅니다. 나무를 찾아와 답을 구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읽어주는 문장을 듣고 답을 구한 듯 나무에게 감동합니다. 굳이 심리학 용어로 설명하지 않아도 아마도 답은 그들안에 이미 있었을 거겠죠. 그들은 누군가에게, 이왕이면 신령스러운 존재에게 확인받고 싶었을 뿐이겠죠.


 

 

너는 원래 구름이었거늘 어쩌다 돌이 되어 붙박여 있구나

달려라, 달려! 그리고 웃어라 딸아.​

느린 거북이가 빠른 토끼를 이긴다.

삶은 매일 새로 열리니 깨끗이 잊어버려라, 아들아.

- 아름드리 나무가 사람들에게 일러준 이야기들 중에서. 

 

 

그러나 아이들의 일은 금방 들통이 나고 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무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나무의 심장이 시게든 뭐든 우리에겐 중요하지 않아요."

"목소리가 있든 없든 중요하지 않아요."

"그 목소리가 아이들의 목소리였어도 중요하지 않아요."

.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이렇게 이야기하죠. 이제 사람들은 이 나무를, 이 지역을 지켜주고 싶어합니다. 아이들의 진심이 마을 어른들을, 그리고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움직인 것이겠죠.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이들을 통해서 모두 깨달은 것이겠죠.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에 통쾌해졌죠.

 

아이들이 지키고자 한 것은 나무였지만 결과적으로 더 중요한 '우리' 를 지켜낸 것이겠죠. 아이들과 마을 어른들이 나무를 지키기 위해 나무에 올라가는 장면에서는 문득 여행길에서 운명적으로 캘리포니아의 삼나무 숲을 만나 살아 숨쉬는 생명의 에너지를 체험하게 되면서 벌목 위기에 처한나무 지킴이가 되었던 환경운동가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 이 떠오릅니다. 그녀는 천년 동안 터전을 자리잡은 삼나무를 지키기 위해 2년간 나무 위에 올라가 생활합니다. 자그마치 61미터 높이의 '루나' 라는 삼나무 위에서 먹고 자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등 모든 생활을 하죠. 그녀가 나무위에서 생활한 기간은 738일. 결국 삼나무 보호협상은 이끌어 냈습니다.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 : http://www.juliabutterfly.com/

 

"나는 루나에 처음 올라오던 날 벌목꾼들과 대화를 하면서 나의 주장을 펼쳐 가려면 마음과 직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들 역경과 고난은 그때그때마다 변화에 필요한 지식을 주면서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고 있었다. 우주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늘 보내주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준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를 더욱 강하게 단련시켜 주기도 한다. " / 나무 위의 여자 (가야북스)

 

그녀의 말처럼 책 속의 우주도 달동네 사람들을 더욱 강하게 묶어준 듯 합니다. 앞으로도 이들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면서 한 가족처럼 다정하게 지내겠죠. 그 모습을 이 아름드리 나무가 빙긋 웃으며 지켜보고 있을 테구요.

밤톨군에게는, 지금의 우리에게는 「함께」하는 누군가가 있을까요. 책에서 눈을 떼고 둘러보니 조금 쓸쓸해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