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부인 The Collection Ⅱ
벤자민 라콩브 글.그림, 김영미 옮김 / 보림 / 201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2차대전 때 히로시마와 더불어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으로 유명한 항구도시 나가사키. 이곳에는 일본으로 귀화한 스코틀랜드인 토머스 글로버의 저택과 글로버 공원이 있고, 공원에는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 오페라 [나비부인]의 주역 소프라노 미우라 다마키가 극중 차림새로 아이를 데리고 서 있는 동상이 있다고 합니다.

 

미국 작가 존 루터 롱은 선교사의 아내로 나가사키에 살았던 누이를 통해 개항과 함께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서양인들을 상대했던 게이샤의 실화들을 듣게 되었고, 1898년 미국 잡지 <센추리 일러스트레이티드>에 이 실화를 소설로 각색해 연재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사실 이와 비슷한 소재를 다룬 피에르 로티의 소설 [국화부인]이 이미 세상에 알려져 있었고, 롱 역시 로티의 작품을 상당부분 참고한 것으로 이야기 되곤 한다는군요.

 

이 흥미로운 소재가 연극으로 만들어지고,  런던에서의 연극공연을 본 자코모 푸치니는 '루이지 일리카'와 '주세페 자코사'에게 각색을 맡기고,  화려하고 감성적인 선율과 시적 정서, 색채감 있는 관현악으로 가득 찬 푸치니의 음악을 입혀 관객에게서 매번 감동의 눈물을 이끌어내는 오페라를 탄생시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오페라 '나비부인' 이 탄생된 배경입니다.

 

이제 오페라 [나비부인] 은 그 영역을 다른 영역으로 넓히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강수진을 주연으로 인스부르크 발레단이 동명의 발레공연을 선보였지요. 그리고 이제 눈으로, 시각적으로 들어보는 그림책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림책으로 오페라를 '듣다'...

 

 

 

 나비부인

벤자민 라콩브 글/그림

보림

 

책을 만나보면 먼저 그 크기와 묵직한 무게감에 놀라고, 책에 들인 여러가지 정성과 그림의 색감에 다시 놀라게 됩니다. 보림의 일반적인 다른 그림책들과 비교해보았습니다. 시원한 판형이 눈에 띄는군요.

 

 

그림책에서 제법 큰 편에 속하는 '수잔네' 시리즈 보다도 큽니다. 어른인 제가 더욱 소장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고 독특한 책입니다.

 

 

병풍형식으로 되어있는 이 책은 속지도 마치 오페라나 뮤지컬의 프로그램을 받아본 것처럼 기대감에 부풀게 했습니다. 그림책으로 된 한편의 공연을 앞 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공연관람 전의 두근거림, 설레임을 느끼게 해주네요.  


 

 

 

 

벤자민 라콩브는 오페라 <나비 부인>을 자신만의 언어와 감수성으로 각색하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그림을 완성해 냈습니다. 시대적인 배경 속의 공간을 구현해 내기 위해 정교한 그림을 완성해 내었고, 색채 또한 나비 부인의 감정에 충실하게 변화하는 모습을 표현해냅니다. 이로서 인물들 사이의 극적인 드라마에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군요.  아무리보아도 이 책은 영유아들을 위한 책은 아닌 듯 합니다. 어른들을 위한 예술그림책이라 부르고 싶어지네요.

 

『나비 부인』은 일본인 게이샤 나비 부인이 남편인 미국 해군 장교를 기다리는 슬픈 사랑과 애틋한 마음을 그린 작품입니다. 몰락한 집안의 게이샤인 나비 부인은 주재 미국 해군인 핑커튼 중위와 결혼을 합니다. 남편의 종교까지 받아들이며, 남편을 사랑한 나비 부인과는 달리 핑커튼 중위는 동양의 풍습과 순종적인 나비 부인이 신기하고 신선했을 뿐,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가 새로운 아내를 맞이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문화적 차이와 사랑의 깊이가 다름에 비극으로 끝나고만 나비 부인의 지고지순한 사랑. 그림책으로는 어떻게 표현되었을까요.

 

 

오, 나비! 나비의 날개를 건드리면 그 나비는 죽게 된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가 만났던 날이 지금도 생생하다.

<중략>

젊은 여자 네 명이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섬세한 의상과 우아한 몸짓을 가진 그녀들은 완벽하게 정돈된 자연 속에 녹아들어 있었다. 그것은 병풍 속의 그림과 같았다! 그 중 유독 한 사람이 내 눈길을 끌었다.

<중략>

 

파닥파닥 날다가 우아하고도 섬세하게 내려앉는 이 나비는 이제 내 것이 될 것이다.

내가 나비의 날개를 산산조각 내게 될지라도....

 

 

그림책 《나비 부인》을 이끌어 가는 핑거튼 중위의 나지막한 독백을 시작으로 그림과 그림 사이의 긴 호흡의 글을 읽고 페이지를 넘겨 그림과 마주합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백미는 다양한 나비들이 그녀에게 모여들어 나비와 혼연일체가 되는 장면으로, '나비 부인'이 되는 과정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슬픔이 가득한 눈빛이 정말로 공허해보이는 표정입니다. 그녀가 버림받고 절망하고, 죽음에 이르는 장면들은 슬프고 때론 섬뜩하기도 하지요.  

 

 

 

연극이나 오페라에서도 그녀의 자결장면은 극적인 효과를 사용하고는 하는데, 책에서는 글로 표현하고 죽음을 암시하는 그림으로 표현하였답니다. 그 장면은 책에서 직접 확인해보시기를요.

 

이 책은 병풍형식으로 주욱 펼쳐지는 책입니다. 다 펼치면 10미터가 넘는다고 하네요. 사진으로 보여드린 그림들은 유화로 그려진 병풍의 앞면입니다. 화려하고 감각적인 이 앞면 그림과는 달리 뒷면은 여백의 미가 넘치는 색연필과 수채화로 마무리한 그림들이 채워져 있습니다. 작가의 다양한 분야에서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과 풍부한 실무 경험은 이렇게 앞과 뒤를 극적으로 배치함으로 마치 서양과 동양의 감각이 부딪치는 것처럼 상반된 조화로움을 통해 묘한 여운을 남겨 주네요.  

 

그나저나 이국풍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에서 출발한 푸치니의 '나비부인'은 서양인들로 하여금 일본이라는 나라를 아시아나 동양 전체로 확대해서 바라보게 하는 오류도 만들어내기도 하였죠. 또한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왜색이 짙다' 라는 평가를 받으며 다양한 방법으로의 변주가 시도되지도 못했구요. 그래서인지 그림책으로 해석된 나비부인을 만나보니 반가운 마음이 앞섭니다. 이 아름다운 그림과 이야기를 많은 분들이 만나보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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