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타
민정영 글/그림
길벗어린이
어린 우리 두 남매를 앞에 앉혀놓고 낡은 통기타를 치며 동요를 불러주시던 친정어머니의 젊은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아이는 언제나 부모의 물건들이 탐이 납니다. 신비해 보이는 어른들의 물건은 늘 흥미로울 뿐더러 지니고 있으면 스스로가 어느새 어른이 된 것 같은 "위대한" 느낌이랄까.. 어떤 뿌듯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어머니의 기타를 그렇게 탐을 냈지요.
그림책 속 아이에게는 벌써 아빠의 기타가 자기 것이 되었습니다. 아빠는 '너한테는 너무 커' 라고 말하지만 아이는 딱 맞다고 느낍니다. 이유같은 것은 없답니다. 그냥 '기타는 나랑 딱 맞아요' 일 뿐이죠.
아이는 아빠가 치던 모습을 흉내내어 보기도 하고 ( 아마도 그것이 쉽지가 않으니 ) 가야금처럼 뉘어놓고 튕겨보기도 합니다. 저도 늘 뉘어놓고 동생과 함께 여기저기 튕겨보고 음정이 맞지도 않는 노래를 부르고는 했었죠. 이 기타를 가지고 있던 어른의 흉내를 내보는 것이었죠. 그러면 마치 나도 어른이 된 것 같았거든요.
그러나 '악기' 라는 기타의 본연의 모습과 '어른의 흉내' 를 위한 것에서 기타는 아이에게 함께 노는 친구가 됩니다. 아이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기타한테 재미있는 책을 읽어줍니다. 미장원에 손님으로 초대해 예쁘게 꾸며주기도 하고, 함께 모험을 떠나 꼬옥 껴안고 밤하늘의 별을 보기도 하지요. 실제로는 움직이거나 말하지 못하는 대상이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 듯, 아이에게도 기타는 이제 '살아있는' 친구니까요. 마음속 상상과 일상의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무엇이든 친구가 될 수 있는 거거든요. 아이들은 이렇듯 현실과 상상을 구분 없이 뒤섞으며 욕구를 마음껏 발산하고 충족하면서 자라날 힘을 얻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도 혹시 저처럼 어른의 기타를 가지고 논 경험이 있거나 혹은 자신의 아이가 가지고 노는 모습을 관찰해 본 걸까요. 저도 늘 이렇게 기타를 핑그르르 돌려서 늘 어머니께 꾸지람을 듣곤 했거든요. 제게는 기타가 '제 것' 이 아니었으니까 더욱 세심하게 다뤘어야 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러나 그 나이에 세심함을 기대하기란 무리라구요. )
후반부의 이 장면. 여자라면 공감하실까요? 늘 탐이 나던 엄마의 악세사리. 그리고 굽 높은 구두. 살짝 엄마의 화장품을 빌려 얼굴에 색칠을 하는 것을 잊으면 안되죠. 이렇게 차리고 있으면 나도 멋진 숙녀가 되어있는 듯한 느낌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전 동화 속 왕자님이 절 데리러 와주기를 바랬던 것 같아요. 난 예쁜 공주가 되었으니까. 처음에는 아이의 상상세계에 집중하며 읽어주다가 이 후반부 장면 때문에 아이가 기타를 '내 기타' 이기를 바라는 것이 '어른의 것' 에 대한 '동경'( 혹은 호기심? ) 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느낌으로 다시 앞부터 읽어보게 되었지요.
다만 마지막 장면은 조금 아쉽습니다. 아무리 미디어에 일찍 노출된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이렇듯 완전한 어른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좀 안타깝거든요. 뭔가 아이다운 모습의 상상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이라면 이 기타를 들고 우주라도 갈 기세가 될 듯 한데 말이여요. ( 이건 남아를 기르는 엄마의 상상이려나요? )

그래도 아이들의 낙천적인 세계와 지칠 줄 모르는 상상 에너지가 부러운 오늘입니다. 리뷰를 쓰다보니 밤톨군은 종종 우리 부부의 물건 중에 탐이 나는 것들이 있을 때 나중에 자신이 크면 달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이 아빠의 자동차, (게임이 깔려있는) 엄마의 스마트폰 이런 것들이지만 말입니다. 아이 아빠는 아주 신나게 대답해주지요. " 그럼그럼. 너 크면 이 차 너 줄께. ( 그리고 아빠는 새 차 사야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