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마중 보림 창작 그림책
김동성 그림, 이태준 글 / 보림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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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때마다 언제나 큰 울림을 주는 그림책. 별 다섯개가 아니라 별 열개를 주고 싶은 그림책입니다. 어쩌면 아이보다도 어른이 더욱 감동을 받는 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을 때마다 크고 작건 엄마를 기다려 본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르며 내 안의 아이가 함께 발을 동동 구르게 됩니다. 월북 작가 이태준님이 1938년 조선아동문학집에 실었던 동화에 그림작가 김동성님의 그림을 입혀 아름다운 한편의 작품으로 탄생한 그림책. 바로 『엄마마중』입니다. 이전에 '소년한길'에서 나오던 책이었는데 절판되어 중고책으로만 구해야 했다가 이번에 보림출판사에서 다시 재출간되었습니다. 절판책을 구해보려고 동동거렸던 기억을 떠올리니 이리 다시 좋은 출판사를 통해 만나볼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입니다.

 

엄마마중  

이태준 글 / 김동성 그림 

38쪽 | 350g | 260*247mm 

보림   

 

   

책은 군밤장수 모자와 두툼한 솜옷을 입은 아기가 어디론가 가는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여백이 가득한 한편의 아름다운 그림 속 아가의 아장아장 걸음을 따라가봅니다.



 

 

전차 정류장에 짧은 다리로 애를 쓰면서 낑낑 거리면서 올라가는 아가의 뒷 엉덩이. 아무래도 아가는 엄마를 오기를 기다리다가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엄마를 마중나온 것 같습니다. 아마도 엄마는 하루 끼니를 위해 어디론가 일을 하러 갔겠지요.

 

 

아기를 등에 업은 소녀, 봇짐을 잔뜩 등에 진 아저씨, 책보퉁이를 끼고 어디론가 내달리는 까까머리 중학생 등 1930년대 거리의 풍경이 흑백사진 속 풍경처럼 아름답게 그려집니다. 전차 정류장에서 금긋기 놀이를 하다가 정류장 푯말에 매달렸다가 쭈그리고 앉아서 기다리는 아가의 모습도 애틋하고 사랑스럽습니다. 동양화를 전공해서인지 김동성 작가의 그림은 수묵화의 느낌을 아주 잘 살리고 있는데다 우리의 정서를 듬뿍 담고 있어 마냥 친근하고 따뜻하게 다가오지요. 

 

그림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1930년대의 거리 모습과 사람들의 옷차림, 엄마를 기다리는 아기의 모습은 단색 톤으로 표현되는데 전차가 들어오는 장면은 화려하고 강렬한 컬러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흑백과 컬러의 대조는 주인공의 심리나 사건의 전개 등을 묘사하는데 종종 쓰이곤 합니다. 존 버닝햄의 '곰 사냥을 떠나자' 의 경우 사건이 전개되는 서사 부분에서는 흑백을, 의성어와 의태어가 나오며 운율감을 살리는 부분에서는 컬러를 사용하며 흥미를 돋우었죠. 편집자는 단색과 컬러의 대비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더군요.

 

  
 

엄마가 오기만을 힘겹게 기다리는 아이에게 전차는 커다란 나무를 지나고, 푸른 바닷속을 헤엄치듯 지나오며, 새들과 함께 하늘에서 날아오는 간절한 희망 이다. 작가는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과 곧 엄마를 만날 거라는 희망을 대조적으로 표현해, 아이의 간절함을 더욱 극대화시켰다.

 
  

 

 

 

이제 전차들이 들어옵니다. 전차가 올 때마다 아가는 기웃거리며 묻습니다.

 

 

엄마마중

p.11~18

또 전차가 왔습니다. 아가는 또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 안 오?”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하고 차장은 ‘땡땡’ 하면서 지나갔습니다.

또 전차가 왔습니다. 아가는 또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 안 오?”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하고 이 차장도 ‘땡땡’ 하면서 지나갔습니다.

 

 

 

그 때 친절한 차장이 "다칠라, 너희 엄마 오시도록 한군데 가만히 섰거라, 응?"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때부터 아가는 한 자리에 붙박이 처럼 서서, 엄마를 기다립니다. 어느덧 땅거미가 지고 바람이 붑니다. 아가는 바람이불어도 꼼짝 안하고, 전차가 와도 다시는 묻지도 않고, 코만 빨개져서 가만히 서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읽어주던 제 목소리는 이 지점에서부터 떨리기 시작합니다. 콧등이 시큰해지죠.

 

 


엄마를 만나고 싶어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이 강렬하게 와 닿습니다. 어여쁘고 귀엽기만 했던 아이가 이렇게 간절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애잔하여 제 안의 아이가 함께 웁니다. 어쩔 때는 기다리는 아이를 빨리 만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되어 마음이 조급해지고 가슴이 아파옵니다. 얼른 달려가 꽁꽁 얼어붙은 아이의 코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싶어집니다. 아이를 안아올려 품에 꼭 안아 그 얼은 몸을 녹여주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저는 이렇듯 아이 마음. 엄마 마음. 두 마음 모두 한꺼번에 느껴지는 바람에 가슴이 뭉클하여 이 모습에서 한동안 멈추게 되는군요.

 

 

펑펑 내리는 함박눈에 마을은 하얗게 변해갑니다. 아가는 엄마를 만났을까요? 전차 정류장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이야기. 그저 차례로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전차의 차장에게 엄마가 언제 오는지 묻는 게 줄거리의 전부임에도 강렬한 울림을 주는 그림책.

 

 

원본 글에는 없었으나 그림작가가 나중에 추가했다고 하는 마지막 페이지를 보며 간절하게 바라게 됩니다. 아가는 바라던 대로 엄마를 만나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갔다구요. 현실과 환상을 단색과 컬러로 표현했던 앞페이지를 떠올리며 이 장면이 아이의 희망일뿐이라고 생각해보지만 마음은 그럴리 없다고 외칩니다. 아이의 간절한 마음을 위해 작가 스스로의 그림 흐름의 규칙을 깨서 더욱 머무르게 하는 전략일 것이라구요.

 



 

밤톨군은 아이는 당연히 엄마를 만났을 것이라고 대답하며 제 눈의 물기를 닦아주고는 합니다. 얼마전까지 아빠와 함께 버스 정류장에서 앉아 발을 흔들며, 늦은 퇴근길의 엄마를 기다리던 밤톨군의 모습이 떠올라 울컥하곤하는 제 마음을 이녀석은 알고 있으려나요. 밤톨군이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지를 않길 바라며 그때 어떤 마음으로 엄마를 기다렸을지 차마 물어보지 못하는 이 마음까지두요. 조금 더 크면 이 녀석이나 저나 함께 이야기해볼 날이 올거라 생각해봅니다. 그러고보면 이 책은 간결한 글과 그림만으로 볼 때는 유아들에게도 읽어줄 수 있는 책이지만 이 책의 이 정서를 제대로 느끼려면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는군요.

 

안 읽어보신 이웃님들이라면 이 책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배경이 이 겨울과 더욱 어울리는 책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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