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전작 '치킨마스크' 를 보면서 전 '페르소나(persona)' 라는 개념이 떠올랐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진정한 자신과는 달리 다른 사람에게 투사된 성격을 뜻하는 용어라고 합니다. 위키디피아에 따르면 본래 페르소나라는 말은 그리스의 고대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서 정신분석학자인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에 의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데 그는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가면)를 지니고 있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쓰고 관계를 이루어 간다고 하였습니다.

갑자기 아이의 그림책 리뷰에서 페르소나를 언급하다니 조금 지나친 감이 있는 듯 합니다. 그래도 우선 전작 『치킨 마스크』 이야기부터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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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마스크는 항상 자신감 없이 풀 죽은 채로 지내요. 다른 친구들은 재능이 가득 담긴 그릇을 가졌는데, 자신의 그릇만 텅 비었다고 생각하지요. 치킨 마스크는 올빼미 마스크처럼 계산을 빨리 하지 못하고, 햄스터 마스크처럼 만들기를 잘 하지도 못해요. 체육, 음악 시간도 뒤에서 지켜볼 뿐입니다. 친구들의 빛나는 부분이 하나둘 눈에 들어올 때마다 치킨 마스크는 점점 더 주눅이 들어갑니다. 친구들한테는 적어도 하나씩은 있는 빛나는 부분이 저한테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것 같습니다. 급기야는 "나는 왜 나로 태어났을까? 내가 내가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 같은 애는 차라리 없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그때 치킨 마스크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평소 부러워마지 않던 마스크를 모두 써 볼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올빼미 마스크를 쓰니까 안 풀리던 수학 문제가 술술 잘도 풀립니다. 개구리 마스크를 쓰니까 노래하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치킨 마스크는 어떤 마스크도 선뜻 골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치킨 마스크가 아니면 어떤 마스크가 되어야 할지 오히려 더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내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을 밖에서 찾으니 그럴 수 밖에요. |
어른에게도 '가면'은 매력적인 물건입니다. 한번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 싶은 마음, 누구나 가져보는 거니까요. 다시 "페르소나"로 돌아가보면 " 페르소나가 있기 때문에 개인은 생활 속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반영할 수 있으며, 따라서 자기 주변 세계와 상호관계를 맺을 수 있다. 또한 자신의 고유한 심리구조와 사회적 요구 간의 타협점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페르소나는 개인이 사회적 요구에 적응할 수 있게 한다.” 라고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는 이야기지만 사람의 전 생애를 통하여 그것이 과연 행복한 일일까요? 너무 오래 그렇게 살아오면서 스스로의 "참자기" 를 잊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치킨 마스크』에서도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치킨마스크처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볼 기회가 된다면 어떤 사람이 될 지 생각해보고, 무엇보다도 "그래도 내가 좋다!" 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 것이 아닐까 하구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도록 칭찬과 격려를 줄 수 있는 것이 우리 어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라구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하며 아이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 봐 온 작가가, 자신감과 자존감이 부족한 아이들을 위해 따뜻한 격려의 마음을 담아 쓰고 그린 그림책일테니까요.
그렇다면『치킨 마스크』( '그래도 난 내가 좋아' )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 이라면 이번에 나온 신간 『상어 마스크』는 어떤 내용일까요. 부제로 '내마음을 알아줘' 라고 되어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상어마스크
우쓰기 미호 지음
40쪽 | 338g | 200*200mm
책읽는곰
“난 험상궂게 생긴 상어 마스크, 친구들은 겉모습만 보고 날 싫어해.”
이번에는 마스크 초등학교 친구들 가운데 가장 험상궂은 마스크(?)를 자랑하는 ‘상어 마스크’가 주인공입니다.

"같이 놀자.. "라고 먼저 다가가도 험상궂게 생긴 얼굴만 보고 "째 좀 봐. 우릴 째려보잖아. 무서워! " 라며 자리를 피하던 친구들. 상어마스크는 외롭습니다. 그래서 상어마스크는 친구들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친구 실내화 몰래 숨겨 놓기, 선생님이 우수작으로 뽑아 붙여 놓은 친구 그림에 낙서하기, 별 이유도 없이 친구 때리기 같은 심술을 부립니다. 그러나 그럴 수록 관심을 끌기는 커녕 아이들이 점점 더 상어마스크를 멀리하게 되버립니다.

그래도 상어마스크가 용기를 내어 함께 놀자고 하려고 공놀이 하는 친구들에게 다가갑니다. 그러나 날라왔던 공이 상어마스크의 몸에 맞고 튕겨나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이들은 상어마스크가 또 심술을 부리는 거라고 비난하죠. 난처해진 상어마스크는 결국 미안하다고 말하기는커녕 도리어 “알 게 뭐야!” 하고 큰소리 치고 자리를 피하고 맙니다.

친구들에게 오해를 받은 상어마스크는 마음이 아픕니다. 진심을 보이고 싶어 몇 날 며칠을 강둑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닙니다. 이런 모습조차도 “공이 탐나서 그러는 거야.”라는 오해를 사지만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공을 찾아냅니다. 공을 반짝반짝 정성스레 닦아서 장수풍뎅이 마스크에게 달려가면서, 상어 마스크는 ‘미안하다고 말해야지.’ 하고 결심하죠.

햄스터 마스크와 공의 주인인 장수풍뎅이 마스크를 만나서 입을 떼려는데, 햄스터 마스크가 먼저 또 심술부리러 온 거냐고 화를 냅니다. 결국 또 상어 마스크는 성격대로 “이딴 거 필요 없어!” 하고 응수하지요. 과연 앞으로 상어마스크는 어떻게 될까요.

“친구를 위해 온 힘을 다하면, 그 마음이 전해질 거야!”
마지막 노을을 배경으로 한 실루엣을 보면 짐작하시려나요?
혼자 그네를 탔던 첫장면과 대비되는 마지막 장의 모습입니다.

국내에서 만나본 두권의 책의 밑바탕에 깔린 일관된 주제는 바로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입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은 남을 부러워하고 자신의 장점은 바라보지 못하지요. 어쩌면 부모의 비교와 과한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구요. 아이는 나를 봐주는 사람을 통해 스스로를 자각하고, 때가 되면 자신의 눈으로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그러니 아이가 제일 먼저 만나고 본능적으로 믿게되는 부모가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중요할지요! 그리고 겉모습만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도록 부모가 먼저 노력해봐야겠지요. 아이는 자연스럽게 부모의 시선을 따라가며 배우게 될테니까요.
" 책을 읽을 때 그 책만을 읽지 말고 그 책이 놓여있는 퍼즐판을 함께 보라. " 고 했던 강사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작가는 지금까지 마스크 초등학교 시리즈 그림책 세 권을 출간했다고 합니다. 마스크 초등학교에는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작가가 앞으로 어떤 개성을 지닌 아이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 궁금해집니다. 그 전체의 시리즈가 어떤 모습으로 엮어질 지도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사람을 뜻하는 인간(人間) 이라는 단어를 뜯어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수많은 역할들을 통해 스스로를 증명하는는, 즉 관계와 시간 속에서 완성되어 가는 것이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군요. 많은 관계들 속에서 떄로는 부러워하고 때로는 실망하겠지만 그러면서 차츰 자신의 참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우리 아이들을 격려해주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오늘도 아이의 그림책 속에서 부모로서의 육아의 길을 발견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