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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12월
평점 :
새로운 옷을 입고 나온 『반짝반짝 빛나는』 을 오랜만에 다시 만나보았다. 국내 출간 25주년을 기념하여 커버가 있는 디자인으로 새로 나왔다. 커버부심이 가득한 내게 선물같은 책! 이 소설은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서구권에서도 독특한 감성과 파격적인 설정으로 주목받은 작품이다.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정상성에 대한 우아한 반격' 이라고 했던 평도 떠오른다.

알코올 중독 증세가 있는 아내 쇼코와 동성애자인 남편 무츠키, 그리고 그의 연인 곤이 이루는 기묘한 삼각관계를 그려낸 작품이다. 지금에서야 그렇게 충격적 소재까지는 아닐지 모르지만, 소설이 처음 나왔을 때(일본에서는 1991년, 한국에서는 2001년)는 동성애나 알코올 중독이라는 소재가 매우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금기'처럼 받아들여졌던 시대라 꽤 파격적인 설정으로 주목받았었다. 나는 이 책으로 에쿠니 가오리란 작가를 알게 되었다.
이야기는 쇼코와 곤의 1인칭 시점으로 번갈아 전개되는 구성이다. 알코올 의존증이 있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쇼코가 화자가 될 때는 남편 무츠키와 그의 연인 곤 사이의 기묘한 관계가 '부도덕'이 아닌 '반짝이는 무언가'로 미화되거나 수용되는 과정을 읽는 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쇼코는 남편 무츠키와 그의 연인 곤을 관찰하는데 질투보다는 애정어린 호기심의 시선으로 서술한다. 덕분에 그들의 관계가 막장 드라마가 아닌 '성장통을 겪는 아이들'의 관계처럼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무츠키와 곤이 공유하는 세계에 끼어들 수 없는 쇼코의 외로움이 그녀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통해 절절하게 전달되는 듯.
무츠키에게 쇼코는 무엇보다 "부서지기 쉬운 존재"다. 쇼코가 자신의 시점에서 스스로를 '엉망진창'이라고 비하한다면, 무츠키의 시선에서 그녀는 '지켜주지 않으면 안 되는 투명한 유리알' 같은 존재다. 무츠키는 쇼코의 정서적 불안과 알코올 의존을 병명이 아닌, 그녀가 가진 고유한 특성으로 받아들인다. 그녀의 돌발 행동을 보며 당황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이 상처받지 않고 이 안온한 공간에 머물게 할까"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게이인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여 준 쇼코에게 깊은 경외감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끼기도 한다. 곤과의 사랑이 현실적인 갈등을 동반한다면, 쇼코와의 생활은 무츠키에게 일종의 정서적 안식처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종종 미니멀리즘이라고도 불리는 에쿠니 가오리의 문체는 감정을 과잉해서 쏟아내지 않고, 담담하게 일상을 서술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렇기에 인물들의 외로움이 더욱 극대화되어 다가온다. 문장은 투명하고 아름답지만, 그 이면에는 서늘한 슬픔이 깔려 있다. '마치 잘 닦인 유리잔을 보는 것 같다.' ( 다른 리뷰어의 이 문장이 인상적이었기에 옮겨둔다.)
결혼 전에 읽었었는데, 지금 다시 읽으니 여러가지 다른 면들이 부각되어 보인다. 부모님의 기대나 사회적 시선 때문에 시작된 결혼이지만, 결국 그 안에서 자신들만의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 어찌보면 우리의, 우리 주변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30년 전 소설이지만 오늘날 읽어도 어색함이 없는 까닭은 그만큼 에쿠니 가오리가 시대를 앞서간 감성을 지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과거와 달리 혈연이나 전통적인 성 역할이 아닌 서로의 결여를 인정하는 정서적 연대가 어떻게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드는지 보여주면서, '다양한 가족의 형태'나 '개인의 상처'로 보다 유연하게 받아들여질 듯 하다.
과거의 책 표지가 생각나지 않아 다시 찾아 비교해보기도 했다. 이번 개정판은 현대에 쓰는 어휘로 번역을 다듬은 것은 물론 책의 판형도 하드커버로 바뀌었고, 표지도 도시의 야경을 배경으로 한 세련된 디자인을 채택했다. 제목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무츠키는 잠들기 전에 별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p11) 이란 소설의 첫 문장을 떠올려보게도 된다. 쇼코는 비극적일 수 있는 상황을 '반짝거린다'거나 '예쁘다'고 느끼고는 했다. 작가가 의도한 '투명한 슬픔'을 극대화하는 장치다. 표지가 반짝거리면서도 어딘가 슬프게 다가오는 이유이리라.

작가의 말을 읽다보니 각 장의 타이틀 중에 <잠자는 자와 지켜보는 자> 및 <별을 뿌리는 사람>은 그림에서 차용한 제목이라는 것을 알았다. 관련된 시메온 솔로몬의 <The Sleepers and ont that watcheth> 이 책 속에 수록되어 있기도 하다. 흑백으로 수록되어 있어 다시 그림을 찾아본다. 오! 소설의 느낌과 비슷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