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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우면 종말 - 안보윤 산문
안보윤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9월
평점 :
점심시간, 회사 근처에 어린이집 아이들의 벼룩시장이 열렸다. 매년 이맘때쯤 열리는 행사로 아이들은 준비한 물건들을 어른들에게 판다. 현금이 없는 회사원들을 위해 친절하게 QR코드로 카카오페이 결제를 안내하면서 말이다. 원서로만 있던 그림책이 보이길래 한 권 사고, 소중한 지구를 지키기 위해 기부를 했더니 쿠폰을 한 장 준다. 쿠폰은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만들어주는 간식으로 바꿔올 수 있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 모습에 행복한 엄마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쳤다. 안보윤 작가가 <매일경제>와 <세계일보>에 연재한 칼럼들을 중심으로 엮은 수필집 『외로우면 종말』 이다. 마침 학교에서 이름 모를 학생들의 신이 난 모습에 사랑스러움을 느끼는 장면이 나온다. 작가는 다른 사람들의 예쁜 부분은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는데, 문득 스스로를 어여삐 여긴 적이 언제였는지 생각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를 어여삐 여기는 마음은 나를 존중하는 마음과 맞닿아 있다. 마음을 헤아리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의 나는 눈 밑이 까맣고 우중충하니 맛있는 것을 먹어볼까. 향이 진하고 고소한 커피와 크림브륄레를 곁들이면 즐거운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겠지. 무르고 진한 연필심으로 책에 밑줄을 실컷 그으며 좋아하는 구절을 노트에 옮겨 적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오늘의 나를 다독여 내일로 보내면, 내일의 나는 적어도 오늘보다 예쁘고 신이 나지 않을까.

방금 읽은 문장을 필사해야겠다는 생각에 나도 필사 노트를 꺼냈다. 나는 에세이를 읽을 때 필사를 더욱 많이 하게 되는 듯 하다. 필사를 하다보면 내 일기에도 이런 멋진 문장들이 적힐지도 모르는 일이다. 글은 담담하고, 언어는 정제되어 있으며, 감정이 흐르되 과잉되지 않는다.

책은 <그날의 줄넘기>, <외로우면 종말>, <아주 작은 쉼표> 의 제목의 3부로 나누어 일상에서 건져 올린 순간들, 타인의 손길과 우연한 친절, 외로움의 내부 풍경을 조용하고도 선명하게 들여다본다. 산문집의 표제로 선택된 제목은 개인의 외로움과 그로 인한 감정 변화를 드러내며 묘한 여윤을 주고 있기도 하다. 책 속 에세이들은 거창한 플롯 없이, 한 편 한 편이 ‘오늘의 단상’처럼 읽힌다. 일상을 통과하는 감각들이 읽는 이들에게 작은 결을 남기게 한다.
외로움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나와 타인 사이’의 틈이 아닐까. 타인과의 우연한 접촉, 일상 속 작은 친절, 타인의 배려는 외로움의 배경 위에서 반짝이는 조각처럼 빛나고, 그런 것들이 쌓여 위로와 삶의 희망으로 이어지는 모습은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친절을 경험하고도 싶지만, 그런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되고도 싶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하루.
아이들이 담아준 과자가 참 기분좋게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