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양이 눈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5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23년 10월
평점 :
코딜리어와 그레이스는 한 학년을 월반한 후 졸업해서 다른 학교로 진학하고, 시간이 흘러 일레인도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그런데 사립 여학교로 갔던 코딜리어가 퇴학을 당하면서 코딜리어의 학교로 전학오며 2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코딜리어는 열세 살이고, 일레인은 열두 살 무렵에서 시작한다.

2권에서 둘의 역학관계가 미묘하게 변한다. 11학년이 된 일레인은 학교에서 입이 거칠기로 유명해졌다. '누군가 자극하기 전에는 험한 말을 하지 않지만, 일단 입을 열면 짧고 압도적인 말이 쏟아져 나온다. 우리 학교 여학생들은 내 험한 입을 조심하고 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잠재적인 언어적 위협이라는 영기를 휘감고 복도를 걸어다니고, 아이들은 나를 조심스럽게 대한다. 그것은 만족감을 준다. 이상하게도 이 야비한 행동 때문에 친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아졌다. (p76)' 라는 일레인이 그 험한 입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대상이 코딜리어가 된 것이다. 일레인은 코딜리어에 대해 '코딜리어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무엇인가를,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어떤 역할이나 영상을 모방하고 있다. (p94)' 라고 표현하고, 그녀의 집에서의 식사장면 즉 '코딜리어 집의 저녁 식사는 두 종류가 있다. 그녀의 아버지가 있을 때의 식사와 없을 때의 식사. (p103)' 을 통해 코딜리어가 왜 그런 성격이 되어야 했는지를 암시한다.
코딜리어는 다시 전학을 가게 되고, 일레인은 미술을 배우기 시작하며, 남자를 만나고 결혼에 이르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고통스러운 관계에 대한 기억을 망각으로 덮어버렸지만, 그 경험은 일레인의 자아 형성과 사회적 관계, 나아가 이후 창작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일레인은 자신이 다른 여성들과 분리된 존재라고 생각하고, 관계를 보다 쉽게 맺을 수 있는 남성들과 어울리지만, 그들이 여성에 대해 가진 생각 때문에 또 다른 상처를 받는다.
작품활동에 있어서도 대중들에게는 페미니스트 작가로 알려졌지만, 정작 그녀는 '동시에 나는 그들의 확신, 낙관주의, 경솔함, 남성에 대한 대담무쌍함, 동지애를 부러워한다. 나는 군대가 용감한 노래를 부르며 소녀들같이 전장으로 향할 때, 옆에서 바라보며 겁쟁이처럼 손수건을 흔드는 사람과 같다. (p324)' 라고 고백한다. 이에 대해 번역자는 '주저하는 일레인의 모습을 통해 애트우드는 성별에 기반을 둔 단순한 권력 관계 규정에 의문을 표시한다.' 라고 소개하면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19세기의 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한 애트우드의 말을 전한다. 이 작품에 대해서 여성들 사이의 갈등과 반목을 부각시킨다는 것을 이유로 반여성주의적 작품이라고 비판하는 비평가들도 있는데, 애트우드는 "여성을 그려 내고 그들의 문제에 관심을 둔다는 면에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를 수 있지만 여성들의 도덕적 우월성이나 그들만의 연대를 주장하는 페미니즘은 거부한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과 독서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주제다.
코딜리어가 황폐한 상태가 되었을 때 일레인은 도움을 주지 않고 외면하며 관계는 단절된다. 화자인 일레인은 과거의 이야기에도 종종 현재형을 쓰고 있다. 아마도 과거의 경험, 혹은 상처, 트라우마 등이 해결된 것이 아니라 일레인에게 있어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나타내주는 장치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어릴 적 일레인을 괴롭혔던 소녀들의 잔인성에 스며들어 있던 것은, 당시 토론토 백인 중산층 사회의 관습, 교육, 종교, 성차별이었으며, 그것들이 내내 일레인을 괴롭혀 왔는지도 모른다. 일레인은 자신의 회고전을 준비하며 문득, 복수는 의미 없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회고전에 걸린 자신의 작품들 사이를 걸으며 쏟아내는 생각들에서 그녀의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
일레인에게 있어 코딜리어는 상처를 주는 가해자였다가, 괴롭힘을 받는 피해자가 되고, 예술 속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일레인이 자신에 대해 갖는 모든 이미지, 자기 의심, 두려움, 사랑받고 싶은 소망에 소환되며, 내면의 어떤 잔인함, 무자비함, 약간의 광기와 히스테리 등이 닮아있는 분신이 된다. 그래서일까. 후반부의 장면에서 일레인이 상상 속 코딜리어에게 전하는 말은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