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니를 뽑다
제시카 앤드루스 지음, 김희용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물여덟 살 여성인 화자가 과거의 장면과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성의 『젖니를 뽑다』 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애쓰며 성장하는 20대의 모습이 담겨있는 소설이다. 과거는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고, 현재는 연인인 '당신'을 향해 써내려간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회상과 그에 따른 현실의 장면이 교차되며 그녀의 성장과 변화를 지켜볼 수 있게 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기 위해 욕망을 억누르며 살아왔다. '아름다움과 현란한 클럽 조명을 위해 맛과 포만감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p91) 을 깨달았다는 십대시절을 지나, 런던으로 옮겨와 처음으로 배고픔을 밀어내고 스스로의 안에 '다른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더 많은 공간'이 생겼음을 느낀 이후로는 이번에는 음식, 안전, 안락함에 대한 욕구를 줄였다고 했다. 그러나 연인인 '당신'은 주인공의 숨겨온 욕망을 깨우며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나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살아온 내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 세상에서 내가 선택을 하고 내 주체성을 시험하며 살았는지 궁금하지만, 결코 돈이 충분하지 않거나 살 곳이 마땅하지 않아서, 또 어쩌면 전혀 내 선택이 아닌 무언가를 쫒아다니느라 선택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나는 우리가 사랑을 선택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저절로 흘러가게 두고 있을 뿐인지, 사랑이 선택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눈부시게 하얗게 우리의 허를 찌르며 우연히 일어나서 그 길에 있는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내는 것인지 궁금하다.

-p71

'당신'으로 호칭되는 현재의 연인 외에도 과거의 장면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 또한 그녀의 성장과 변화에 영향을 끼치며, 이야기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랑을 시작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결핍과 불안, 자신의 몸에 대한 수치심, 욕망 등 주인공의 내면 갈등은 소설의 주요 주제 중 하나다. 주인공은 자신의 가치관, 정체성, 욕구와 실제 삶의 간극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며 조금씩 성장한다. 작가는 주인공의 내적 고민과 갈등을 외부 세계의 변화와 대비시키고, 감각적이고 섬세하게 그려내며 읽는 이들을 매료시킨다.

이야기는 4부로 나뉜다. 과거 회상을 제외하고 현재 이야기를 기준으로 1부에서는 런던에서의 연인과 보내던 중 그가 일을 위해 바르셀로나로 떠나게 되는 과정이 담긴다. 2부에서는 주인공이 연인을 만나러 바르셀로나로 와서 지내다가 런던으로 돌아간다. 그녀를 그리워하는 연인의 요청으로 '어느 한 곳에 뿌리내리기'(p209)를 꿈꾸며 런던의 삶을 정리하고 바르셀로나로 옮겨온 3부에서는 그녀의 혼란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고, 연인과 갈등을 겪는다. 이야기 속에서 '당신'으로 표현되는 그는 주인공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주인공에게 새로운 관점을 생각해보게 하고, 갈등을 겪게하면서 성장의 촉매가 된다.

당신은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싶어서 이곳에 왔는데, 나는 그저 당신을 어두운 골목길에서만 따라 다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박 겉핥기식 삶을 그만두고 한곳에 뿌리내려, 과거보다 더 깊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이곳에서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아니면 내 방식대로 내 삶을 꾸려가는 것이 나을지 궁금하다.

-p153

마지막 4부에서는 마른 몸이 아름답다는 통념, 어릴 적 떠난 아버지와 남은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을 떨치고, 주인공이 스스로를 발견하고 자신을 수용하면서, 한 발 나아가는 장면을 담는다.

나는 한때 자극과 아름다움, 혼돈을 원했지만, 내 형편보다 더 큰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기본적인 욕구를 억눌러야 했다는 것을 당신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나에게 주어진 삶의 경계를 넘어, 문턱에 서서 그 너머의 세상을 보고 싶었지만, 그 가장자리에서 벗어나 한 걸음 내딛는 데는 예상하지 못한 대가가 따랐다. 나는 바람이 잘 통하고 볕이 잘 들며 성장할 여지가 있는 어딘가, 편안한 공간에서 살고 싶다. 그저 가장자리에만 머무는 대신 세상의 일부가 되고, 사랑과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느끼고 싶다. 좋은 것들을 꼭 붙잡고 싶고, 머무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배우고 싶다.

- p357

자신의 젖니(Milk Teeth)를 뽑아낸 자리는 시리고 아릴테지만, 우리는 더 단단하고 튼튼한 이빨이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

소설의 제목인 ‘젖니(milk teeth)’는 미처 깨닫지 못했거나 아직 벗어나지 못한 상처와 미숙함을 은유한다. 소설에서 뽑아내지 못한 젖니를 지닌 채 살아가는 흔들리는 존재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낸 이 소설은, 불안정한 삶 속에서 자기만의 자리를 찾고자 애쓰며 살아가는 오늘의 한국 독자들에게 위로를 전해줄 것이다.

- 온라인 책 소개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