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크눌프 - 크눌프 삶의 세 가지 이야기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더스토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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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란 작가의 이름을 언급하면 대부분 『데미안』 을 제일 먼저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 『유리알 유희』 ,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등으로 이어진다. 직업과 결혼을 통한 평범하고 안정된 생활을 거부하고, 세상을 자유롭게 떠돌며 자연과 사람들을 관찰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하던 주인공 『크눌프』 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 물론 나와 내 주변 독서 친구들의 경우다. ) 아마도 헤세 문학 후반기의 자기성찰적 경향의 소설들을 주로 읽느라, 초반기의 작품인 이 소설은 미루고 있던 이도 있었다. ( 『수레바퀴 아래서』 가 1906년에, 『크눌프』 는 1915년에, 『데미안』 은 1919년에 나왔다. ) 『크눌프』는 1907년부터 1914년까지 각기 다른 잡지에 실렸다가 1915년에 '크눌프 그 삶의 이야기'라는 부제와 함께 한 권의 책으로 묶여서 출판되었다고 한다. 처음 발표되었을 때 비평가들은 이 작품의 유려한 문체와 부드럽고 단순한 언어, 그리고 작품 속에 그려진 전원적인 풍경에 찬사를 보냈다.

『크눌프』 를 1913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로 디자인된 책으로 만나보니 마치 외국의 고서점에서 보물을 건져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150여 페이지의 짧은 이야기를 담은 얇은 책은 양장본 표지를 만나 깔끔함을 자랑한다. 패브릭 양장본과 블랙벨벳 에디션 디자인도 함께 나왔는데 실물 느낌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Knulp : Drei Geschichten aus dem Leben Knulps

헤르만 헤세

1913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주)미르북컴퍼니 / 더스토리

소설은 '이른 봄',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 '종말' 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잡지에 발표된 순서로는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이 1908년 가장 먼저 발표되었고, 1913년에 '이른 봄'이, 1914년에 '종말' 이 발표되었다. 2부인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은 화자가 크눌프의 친구이며, 1부와 3부는 작가시점으로 서술된다.

1부 '이른 봄' 의 여러 에피소드에서 크눌프는 유쾌하고 밝은 이미지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는 인물이다. 또한 삶의 여러가지에 얽매여 고단하고 지루한 삶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부러움이 섞인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피혁공 로트푸스는 "정말 행복한 친구야" 라면서 '인생에서 단지 관찰자 이상을 바라지 않는 이 친구, 그것을 과욕이라고 해야 할지 겸허한 것이라고 해야 할지'(p37) 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크눌프는 제 성격대로 살며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옳았다. 그가 어린애같이 말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호감을 살 때 그런 그를 흉내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 p38

작가는 일상적인 삶에 나름대로 적응하여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과, 그 세계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그렇다고 바깥 세계로 완전히 떠나지도 못한 채, 그 주위를 빙빙 돌면서 방랑자로 살아가는 크눌프의 모습을 극명하게 대조시키고 있다. '관찰자 이상을 바라지 않는' 크눌프의 인생은 남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을까. 그가 방랑을 선택했던 것은 타인에 대한 신뢰를 잃어야했던 과거의 경험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자유에 따르는 대가는 '고독'과 '가난' 이었다.

책 후반부에 실린 작품해설에 따르면 이 소설은 『수레바퀴 아래서』 의 주인공 한스처럼, 소년 시절에 다니던 라틴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교를 뛰쳐나와 죽을 때까지 방황하는 주인공의 삶은, 헤르만 헤세 자신이 소년 시절 라틴어 학교를 중단하고 다시는 학교 생활을 이어가지 못한 것에 대한 회환과 추억의 자전적 요소를 담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크눌프는 삶의 끝에서 신과 대화하며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를 찾기 시작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 크눌프는 그의 삶을 어떻게 느꼈을까. 자신의 삶을 후회하는 크눌프에게 신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보라! 나는 그대의 있는 모습 그대로가 필요했다. 나의 이름으로 그대는 방랑하였고, 정착해서 사는 사람들에게 매번 다시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 불러일으켰다. 나의 이름으로 그대는 어리석은 일을 하면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다시 말하면 바로 나 자신이 그대 안에서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고 사랑받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그대는 나의 아들이요, 나의 형제이며, 나의 분신이다. 그대가 맛보고 경험한 모든 것은 모두, 바로 그대 안에서 내가 그대와 함께했다.

- p156

책 속의 다른 인물들처럼 일상적인 삶에 나름대로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나 또한 크눌프가 부러웠다. 책 속의 사람들이 크눌프에게서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느꼈듯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헤세는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나는 고독한 방랑자의 모습을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그려냄으로써 결코 젊음이 충동과 낭만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고도 있다. 어떤 삶이 훌륭한 삶인가란 질문도 던져보게 된다. 그 질문에 앞서 '훌륭한', '좋은' 이란 뜻부터 정의해야할지도 모른다. 삶에 있어서 정해진 정답이란 없다. 크눌프의 삶도, 내 삶도 모두 저마다의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작가는 그런 다양한 삶을 인정하며 배려하며 서로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자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나는 작가의 과제가 자신의 독자에게 인생과 인간에 대한 규범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거나, 그가 전능하고 권위적이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네. ... 크눌프와 같은 인물들은 나에겐 매우 매혹적이네. 그들은 <유용하지는> 않지만 많은 유용한 사람들처럼 해를 끼치지는 않지. 그들을 심판하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닐세.

오히려 나는 이렇게 생각하네. 크눌프와 같이 재능 있고 생명력 충만한 사람들이 우리의 세계 안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이 세계는 크눌프와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또한 내가 독자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것, 연약한 사람들, 쓸모없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고 그들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일세.

-1954년 1월 에른스트 모르겐탈러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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