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피아빛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6
이사벨 아옌데 지음, 조영실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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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빛 초상

Retrato en Sepia

이사벨 아옌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 406

민음사

『세피아빛 초상』 은 라틴 아메리카 여성 해방의 역사를 제시하며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가장 뛰어난 작가로 인정받고 있는 이사벨 아옌데의 3부작 소설 중 한 권이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진정한 자신을 찾고자 했던 아우로라의 삶을 보여 주며 『영혼의 집』의 클라라, 『운명의 딸』의 엘리사와 함께 4대에 걸친 여성들의 역사를 풀어낸다. 라틴 아메리카의 대를 이은 가족의 이야기다 보니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과 비교되기도 한다.

칠레 출신 미국인 소설가인 이사벨 아옌데( 풀네임은 이사벨 아옌데 요나(Isabel Allende Llona)다. )는 라틴아메리카 소설의 특징인 마술적 리얼리즘과 페미니즘을 결합시켜 구사하는 작가다. 아옌데의 작품에는 칠레의 굴곡진 현대사와 그 역사를 온몸으로 통과해가는 여성들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삼부작의 각 권들이 출간된 시기별로 보면 「영혼의 집」(1982) , 「운명의 딸」(1999), 「세피아빛 초상」 (2000) 의 순서다. 그런데 책을 펼쳐 읽다 보니 등장하는 이름들이 서로 엮인다. 등장인물의 연대기로 보면 「운명의 딸」, 「세피아빛 초상」 , 「영혼의 집」 의 순서다. 『세피아빛 초상』의 주인공 아우로라 델 바예는 「운명의 딸」 의 주인공이었던 엘리사의 딸과 파울리나의 아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이며, 『영혼의 집』 의 주인공 클라라는 『세피아빛 초상』 에 등장하는 니베아 델 바예와 세베로 델 바예의 딸인 구성이다. 시대적 배경으로는 「운명의 딸」 이 19세기 후반에 미국 서부로 이주한 칠레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세피아빛 초상」 은 다시 칠레로 역이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 아우로라는 유년 시절의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인해 악몽에 시달린다. 밤새 악몽에 시달리던 주인공은 "어디 네가 너의 악몽의 어둠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는지 보자꾸나"(p275) 라는 말과 함께 구식 감광판 대신 종이를 쓰는 현대식 카메라를 선물 받는다. 열세 살 때 선물 받은 이 카메라 덕분에 주인공은 '몇 달 동안의 유일한 목표가 되고, 악몽을 밝히려는 집념에 매달리다가 세상을 사랑하게 되었노라고' 고백한다.

나는 암실에서 다양한 현상 기술을 실험하거나 가족들의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고 복잡한 설계도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가는 중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우연의 얽힘처럼 보이는 것들이 카메라로 자세히 관찰해 보면 완벽한 유사성을 드러내곤 했다. 어떤 것도 우연이 아니었고 어느 하나도 하찮은 게 없었다. <중략>

근본적인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눈이 아니라 오직 가슴만이 핵심을 잡아낸다. 그러나 카메라는 가끔 그 본질이 미세한 분위기를 포착한다.

- p339

아우로라는 사진을 찍으면서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린 자신의 과거 기억을 더듬어 재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가족과 자신의 기억, 복잡한 가정사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칠레 내전의 소용돌이 와중에 놓인 인물들의 역경과 고난, 피와 고통으로 얼룩진 칠레의 근현대사가 씨줄과 날줄로 엮인다. 역사 속에 존재했으나 기록되지 않았던, 늘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곤 했던 많은 여성들의 모습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짜인 이야기를 통해 되살아난다. 『세피아빛 초상』 은 남성들에 의해 가려지고 숨겨졌던 굴절된 역사를 주인공 아우로라 델 바예가 새롭게 고쳐 쓰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내 유년 시절의 오랜 비밀들을 밝혀 내 정체성을 찾고 나만의 전설을 만들기 위해 글을 쓴다. 우리가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이라곤 결국 우리가 엮어놓은 기억뿐이다. 각자 자기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한 빛깔을 고른다. 나는 백금 사진의 영구적인 선명함을 고르고 싶다. 그러나 내 운명에는 그런 빛나는 구석이 조금도 없다. 나는 모호한 색깔들과 불분명한 미스터리, 불확실성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 인생의 이야기는 세피아빛 초상의 색조를 띤다.

- P431, 에필로그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영부인 선물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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