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히너 전집 열린책들 세계문학 247
게오르그 뷔히너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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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그 뷔히너는 시대를 앞서간 파격적인 형식과 독창적인 언어로 독일 현대극의 선구로 평가받는 뛰어난 수작들을 남긴 작가이나, 24살의 나이에 병환으로 갑작스럽게 숨을 거두어, 요절한 비운의 천재로 불리우기도 한다. 이른 나이에 숨을 거둔 그가 생전에 남긴 문학 작품은 희곡 「당통의 죽음」, 「보이체크」, 「레옹스와 레나」와 단편소설 「렌츠」 등 네 편뿐이고 생전에는 희곡 『당통의 죽음』 만이 출판되었지만, 독일 문학사에 강렬한 흔적을 남기며 후대 작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 그의 희곡들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공연되고 있으며, 전통적인 기승전결을 벗어난 열린 형식과 낭만성을 벗어난 냉철한 사실주의, 니힐리즘, 부조리와 소외, 섬뜩한 비전과 리드미컬한 극작법 등 현대 연극의 주요한 특징들을 선구적으로 보여 준 작품들로 평가되면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나 또한 「당통의 죽음」 을 연극으로 먼저 만났었는데, 게오르그 뷔히너의 문학은 이해하지 못한 채로 프랑스 역사에 관한 시대극으로만 감상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떠오른다. 이제서야 『뷔히너 전집』 을 찬찬히 읽는 중이다. 작가에 대해서도 찾아본다.




뷔히너 전집

Gesammelte Werke (1837년)

게오르그 뷔히너

열린책들 세계문학 - 247

열린책들

게오르그 뷔히너 (Georg Büchner)




오르그 뷔히너 (Georg Büchner)는 독일에서 1813년에 외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1837년에 스위스에서 스물네 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유물론자 L.뷔히너의 형이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글쓰기에 재주가 있던 뷔히너는 1823년 3월 학교 축제일에 <과일을 먹을 때 주의하세요! (Vorsicht bei Genusse des Ebstes!)>라는 라틴어로 글을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낭독, 발표하고, 1830년 9월에는 자신이 다니던 김나지움의 공식 축제에 <카토에 관한 연설, 자살 옹호론(Rede über Cato>을 발표한다. 1831년 김나지움의 졸업식에서 <메네니우스 아그리파 (Menenius Agrippa)>라는 이름으로 산상에 모인 민중들이 로마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는 글을 라틴어로 발표했다.


름슈타트에서 김나지움을 마친 그는 슈트라스부르크대학과 기센대학에서 의학, 철학, 역사를 배웠다. 1831년부터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의 의학부에서 의학과 자연과학 공부를 하던 시절, 그는 자신이 세를 들어 살던 집 주인(목사)의 딸인 빌헬미네 얘글레 Wilhelmine(Minna) Jaegle와 비밀리에 약혼을 했다. 슈트라스부르크에서 2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그는 1833년에는 다시 독일로 돌아와 기센대학에서 의학공부를 계속했는데, 이 때 그는 역사와 철학도 아울러 공부했으며, 한편으로 정치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뷔히너는 1834년에 인권협회를 창설하고, 헤센의 자유주의자들과 함께 헤센 대공국의 반동적 사회 상황에 저항했다. 같은 해 7월에는 부츠바하 출신의 학교장 바이디히 (F. L. Weidig)와 함께 '헤센급전'이라는 독일 최초의 사회주의적 성향을 띤 전단을 작성하여 농민들에게 살포해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 후 그는 기센을 떠나 다름슈타트에 있는 부모의 집에 숨어살면서 체포된 동료들의 구출작업에도 힘을 쏟았고, 이 무렵인 1835년 2월에 그는 첫 희곡 『당통의 죽음(Dantons Tod)을 썼다.

같은 해 3월에 경찰로부터 소환장을 받은 후 독일에서 프랑스 국경을 넘어 슈트라스부르크로 도망친다. 6월에는 뷔히너에 대한 공개수배로 더 이상 고국 땅을 밟을 수 없게 되지만, 7월말에 출판사의 편집위원으로 일하던 구츠코 Gutzkow의 도움으로 『당통의 죽음』 이 독일에서 출판된다. 동년 5월에 중편소설 렌츠 (Lenz)를 집필해 9월에 완성하고, 10월에는 빅토르 위고(Victor Hugo) 의 희곡 두 편 뤼크레스 보르지아(Lucrèce Borgia)『마리 튀도르(<Marie Tudor를 번역한다.


해 가을과 겨울 사이에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면서, 한편으로 돌 잉어의 신경조직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여, 그 다음해에 이 연구논문을 취리히 대학의 철학부에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한다. 1836년에 들어 뷔히너는 세 차례에 걸쳐(4월 13일, 4월 20일, 5월 4일) 슈트라스부르크의 자연역사협회에서 물고기의 신경조직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초여름에는 레옹스와 레나 (Leonce und Lena)를 집필하고 『보이체크 (Woyzeck)의 구상작업에 들어간다. 같은 해 9월에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어 취리히 대학에서 학위를 받는다. 10월에는 거처를 취리히로 옮기고, 11월 초에 <두개골신경에 관하여>라는 테마로 취리히 대학에서 시험강의를 하고, 겨울에 『보이체크 (Woyzeck)』 를 완성한다.

1837년 1월 경 뷔히너는 치명적인 병에 걸린다. 일주일 후 혼수상태에 들어가고, 2월 19일에 사망한다. 이틀 후 그는 스위스 취리히의 크라우트 가르텐이란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를 기리기 위한 독일의 문학상인 게오르크 뷔흐너상(Georg Büchner Prize)은 1923년에 만들어졌다. "현대 독일 문화 생활의 형성에 필수적인 공헌자로 자신의 작품을 통해 두드러지게 나타난" 작가에게 매년 수여된다. 게오르크 뷔히너상 수상자 귄터 그라스 (1965), 하인리히 뵐 (1967), 엘리아스 카네티 (1972), 페터 한트케 (1973), 엘프리데 옐리네크 (1998) 등 5명의 수상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영부인 선물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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