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벽 알이알이 창작그림책 54
지혜림 지음 / 현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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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달과 구름의 모습만 보면 동양화 속의 신선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풍경인데, 마을 속 집들의 모습은 유럽의 어느 산 속 마을 풍경 같기도 하다. 몽환적인 표지다. 노란색 땅 위의 핑크색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파란 '벽' 이 보인다. '벽' 이란 단어와 일러스트가 맞물려 떠올리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단절'. 앤서니 브라운 그림책 공모전 제 11회 수상작인 「파란 벽」 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일까.




파란 벽

지혜림

알이알이 창작그림책

현북스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등장한다. 산꼭대기와 바다 가까이에 각각 위치하고 있다. 판화기법으로 작업한 듯한 색 톤과 일러스트가 눈에 들어온다. 책 소개를 살펴보니 '에칭으로 작업한 듯한' 이란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 작업한 듯한.. 이라고 하면 실제 작업은 다른 작업이라는 뜻일까? 디지털 작업 같은? ) 펜이나 연필로 종이 위에 직접 그리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선의 효과가 특징인 에칭 기법은 금속판을 부식시켜 섬세하게 표현하는 기법으로 금속판의 차가움과 잘 계획되고 정리된 화면의 느낌이 특징이라고 한다.




평화롭게 서로 잘 지내던 이 두 마을은 큰 파도가 아랫마을을 집어삼켜 버리면서 변화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잃은 아랫마을 사람들이 살기 위해 윗 마을로 올라오려고 하자, 윗 마을 사람들은 '우리가 가진 것을 모두 나눠 갖자고 할 거야', '나쁜 병균을 옮길지도 몰라' 라며 걱정한다. 결국 누구도 넘어오지 못 할 장벽을 쌓는다. 



윗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책 속에만 존재하는 이야기일까. 우리는 이미 현실에서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아랫 마을보다는 윗 마을의 상황에 가깝게 말이다. 최근 사례를 떠올려보면 예멘 내전을 피해 제주특별자치도로 무비자 입국한 예멘인 500여명이 난민 지위를 신청했던 제주 난민 사례도 있고, 코로나 위기로 인한 제노포비아 (낯선 것, 이방인이란 뜻의 제노(xeno)와 싫다는 의미인 포비아(phobia)를 합쳐 만든 말로, 외국인 또는 이민족 집단을 혐오, 배척하는 것 현상을 뜻한다. 악의가 없어도 자기와는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일단 경계부터 하는 심리를 나타내기도 한다. ) 또한 떠올려보게도 된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벽을 쌓았던 도널드 트럼프 때의 상황은 책 속 모습과 매우 닮아 있기도 하다.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있던 이곳에는 마지막 페이지에서 파란 벽만 남아있다. 이 곳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진 것일까. ( 책 속에서 직접 확인해보시길 ) 담고 있는 주제는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나눠보게 하지만, 이야기의 서사는 어렵지 않고, 권선징악적인 마무리는 전래동화처럼 쉽게 다가가게 하는 느낌이다.  




다양한 사회적 현상을 바라보고 그림 속에 담는 것을 좋아한다는 지혜림 작가는 팬데믹을 겪으며 인종, 연령, 성별 간의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짓는 일들을 보았다고 하면서, '재난과 같은 상황에서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도 약자의 위치에 놓일 수 있고 상대적 약자에 대한 혐오가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끊어내지 못한 차별과 혐오의 양상을 이번 그림책에 담았다' 라고 전한다. 



문득 면지를 오래 들여보게 된다. 벽은 마을 단위가 아니라 개인들도 쌓았다.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벽을 올렸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이 벽은 스스로를 외롭고 고독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강렬한 그림들이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이야기를 놀라울 정도로 새로운 느낌으로 들려주네요. 길게 설명하지 않고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색상과 디자인을 멋지게 사용한 독창적이면서도 굉장한 그림들입니다. 조금 큰 아이들까지도 잘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앤서니 브라운, 심사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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