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바꾸는 인문학, 변명 vs 변신 - 죽음을 말하는 철학과 소설은 어떻게 다른가?
플라톤.프란츠 카프카 지음, 김문성 옮김 / 스타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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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과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 이 철학서와 소설을 함께 수록하여 '죽음' 이라는 주제로 직접 비교해 읽어보며 철학과 소설은 어떻게 다른지 느껴볼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을 읽어본다.  



생각을 바꾸는 인문학, 변명 VS 변신

플라톤, 프란츠카프카

스타북스



B.C.399년, 소크라테스는 신을 부인하고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이유로 아테네 정부로부터 고소당했으며, 자신의 사상을 버리거나, 독약을 마시고 죽는 사형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은 당시 소크라테스가 배심원들과 전체 아테네 인들을 향해 한 연설을 제자인 플라톤이 재구성한 책이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선택한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만일 당신이 조금이라도 사회에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면, 죽느냐 사느냐의 위험을 계산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일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선한 사람이 할 일인가, 악한 사람이 할 일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p049



소크라테스는 트로이 전쟁에서의 죽은 영웅들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냐며 반론하면서, 아킬레우스의 예를 든다. 헥토르를 죽이면 자신에게 죽음이 찾아올 것을 알면서도 친구인 파트로클로스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살게 될까 걱정하였던 아킬레우스는 '친구의 원수를 갚고 곧바로 죽임을 당해도 좋습니다. 살아남아 땅 위의 짐이 되어 뱃머리가 굽은 배에서 남의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는않습니다.' 라고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어떤 자리에 있든 위험을 무릅쓰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치욕 외에는 다른 것을 걱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자신이 죽음을 두려워하여 정의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르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죽음을 두려워한 내가 신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지혜가 없는데도 지혜로운 자를 가장한다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이겠습니까? 그렇다면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자로 마땅히 법정에서 소송을 받아야 옳은 줄 알겠습니다. 나는 신탁을 믿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고, 지혜가 없으면서도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죽음을 알지 못하면서도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의미에서 죽음은 최대의 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나 이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죄악 중 최대의 죄악이라 믿고 있습니다.  모르면서도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지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며, 수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일반 사람들과 이 점 역시 같지 않을 것이므로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지혜롭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저 세상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고 솔직히 인정하는 점일 것입니다. (...) 따라서 나는 세상에서 악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선할지도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않을 것 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신념대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신념을 지키고, 시민 상호 간의 합의된 약속인 법을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켜야하는 의무도 이행한다.   


어느날 아침 눈을 뜨고 나니 거대한 벌레로 변해버린 한 남성과 그를 둘러싼 가족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사실 카프카의 작품에서 죽음에 관한 주제를 건져올리려면 「변신」 한 권 만으로는 어려운 감이 있다.  「변신」 에서의 죽음은 거대한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가 죽는 결말에서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소설들에서는 죽음만이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음을 암시하곤 한다. 죽음, 존재의 불안, 운명의 부조리성은 카프카의 문학에서 전반적으로 드러나는 코드들이기도 하다. 카프카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죽음을 신뢰할 수 있을 것 같다" 라고 적기도 했다. 박웅현 작가의 「책은 도끼다」 란 제목으로 더욱 알려진 카프카의 편지글 문장인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네." 의 의미 속에 또한 죽음을 내포하고 있다. 독서가 우리에게 강한 충격을 가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느냐고 반문했던 카프카는 우리에게 필요한 책은 “큰 고통을 가져다 주는 재앙 같은,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처럼, 모든 사람으로부터 숲 속으로 추방된 것 같은, 자살과 같은 느낌을 주는” 충격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는 표면적으로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생겼던 상처가 심해져서 죽는다. 그러나 타살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그레고르 스스로가 죽음을 받아들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스스로의 존재를 지운 것처럼 느껴진다고 할까.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가족조차 경제적 이해타산이 얽히면 그 관계가 변해버릴지도 모른다는 비판을 담았다고 해석되면서  「변신」 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소설로도 읽혀지고 있다. 가족과 직장으로부터 외면당한 한 개인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벼랑에서 삶을 놓아버린 듯한 결말... 이런 그레고르의 모습은 자본주의적 인간으로 살고 있을 우리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는 오싹함을 느끼게 한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과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속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문득 '인간이란 무엇으로 사는가'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란 질문이 연이어 떠오르기도 한다. 작품 속 죽음을 분석하며 삶을 생각하게 되다니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책을 지원받고 읽은 후 직접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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