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주
실비 제르맹 지음, 류재화 옮김 / 1984Books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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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주(personnages) 란 제목의 뜻은 무엇일까. 각주에 따르면 소설가가 구현하는 등장인물을 뜻하지만, 중세 종교어에서는 중요하고도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을 뜻하거나 어떤 극적인 상황에 쳐해있는 인물을 뜻했다고 한다. 근대 이후에는 주로 소설 속 등장인물을 뜻하게 되었으며, 엄밀히 말하면 역사적 일화나 가공한 상상적 이야기에서 끌어낸 주제를 재현하는 자라는 의미도 갖는다. 실비 제르맹의 「페르소나주」 는 철학과 시적 언어의 경계에서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주제로 글쓰기에 대해 탐구한 작품이다. 




페르소나주

Les personnages (2004년)

실비 제르맹 지음, 류재화 옮김

1984BOOKS



실비 제르맹은 25편의 에세이와 두 편의 단편 소설로 이 책  「페르소나주」 를 구성했다. 온라인 책 소개에서는 25편의 에세이를 타블로(Tableau)라고 표현해두기도 한다. 실비 제르맹은  「페르소나주」 를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듯 자신만의 언어로 글이란 그림을 그려낸다. 그 글에는 밀란 쿤데라, 파울 첼란, 미켈란젤로, 시몬 베유, 모리스 블랑쇼 등이 소환되고 있다. 



작가의 내면으로 파고들어 자신을 낳으라고 명령하는 이 ‘말 없는 읍소자’들인 등장인물들. '그들은 저 아래, 그러니까 우리 상상계의 경계에서, 꿈들의 군도로부터, 추억의 편린들로부터, 상념의 파편들로부터 납치당하듯 불쑥 태어난다.(p15)' 그렇게 불쑥 태어난 등장인물들은 언어로 펼쳐지기를, 언어로 호흡하기를 소망하며 '텍스트의 생'을 원한다. 실비 제르맹이 표현하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표현은 철학적이고 감각적인 묘사들로 가득하다. 



'읽힌다는 것. 이 근심은 작가들의 근심과 욕망이기 이전에 등장인물들의 것'이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어본다. 등장인물을 읽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천천히 그리고 예리하게 자기 자신 또는 다른 누군가를 읽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문장에도 고개를 끄덕여본다. 읽는 이들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읽어내고, 때로는 스스로와 동일시 하기도 하며, 다른 누군가를 떠올려가며 몰입하게 되던 경험들이 있지 않던가. 책을 읽는 것 뿐만 아니라 '삶도, 흘러가는 시간도, 가까운 데 또는 먼 데서 일어난 사건들도, 그리고 특히 타자들도 많이 읽어야 한다.'  라고 말하는 실비 제르맹은 '세계를 읽는 지속적인 독서를 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쓰지 못한다(p40)'고 강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시몬 베유의 문장 '자신이 옳게 읽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를 인용하며 작가가 되묻는 질문 또한 여러 생각을 해보게 하는 지점이다.



등장인물이 태어나는 과정을 표현해내던 작가는 이어 작가와 등장인물의 관계에 대해 생각을 펼쳐놓고, 자연스럽게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에 <여백에 그리는 소묘> 란 제목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을 한 페이지에 등장시킨 후 <사시나무>, <마그디엘> 이란 두 편의 단편을 이어 등장시킨다. 두 단편의 주인공들은 무엇인가 글을 쓰는 이들이다. 그들은 실비 제르맹의 등장인물들이자, 또 다른 등장인물들을 탄생시키고자 고군분투하는 작가들이기도 하다. 문득 <사시나무>의 그녀, 모잔과 <마그디엘> 의 그, 폴랭 페보르그는 실비 제르맹의 페르소나주(personnages) 이면서도 어쩌면, 페르소나(persona)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 네이버카페 리딩투데이 제공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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