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독스
나가우라 교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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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홍콩반환을 앞둔 시기인 1996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며, 타인의 시선이 고통스러운, 대인 공포증을 가진 고바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국익에 부합하는 정당한 일이라는 상사의 강요에 농림수산성의 비자금 조성에 가담했고, 비자금 조성건이 드러나자 농림수산성을 떠나야했던 인물이다. '가장 가고 싶던 대학에도, 직장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이렁저렁 임용된 직장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지시받은 대로 움직인 결과, 전부 잃었다.스스로가 그저 공부나 조금 했을 뿐인 무능력자로 느껴졌다 (p17)' 라고 독백하는 인물. 농림수산성에서 나온 후 친구의 소개로 일본 최초의 전문 인터넷 증권회사에 취직한다. 농축산물 지식을 살려 선물 거래나 기업 분석을 하게 된 고바는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끌려 다시 일을 시작한다.



언더독스

나가우라 교 장편소설

블루홀식스



‘언더독(underdog)’ 은 경쟁에서 열세인 사람, 패배가 예상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다. 스포츠 경기 등에서 승리보다는 패배가 예상되는 사람 혹은 팀을 의미하기도 한다. 과거의 '투견(鬪犬)'에서 나온 말로, 승리한 개가 주로 위에 있어서 'top dog'이라고 하였고, 물려서 패배한 개는 아래에 누워 있어서 'underdog'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럼 언더독의 복수인 언더독스는 이야기 속에서 누굴 이야기하는 것인가. 


막대한 돈과 권력을 쥔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제안'이 안전한 일일 리 없다. 정치인과 재계인사, 세계 각국의 관료들과 적지 않은 관계를 맺어온 농림수산성 시절 경험이 강하게 경고했다. 


-p23, 고바


주식이나 선물 거래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일이야. 아주 간단히 말하면 자네를 헤드헌팅 하고 싶네. 앞으로 자네가 소속된 회사는 일절 개입하지 않을 거야. 그 점은 양해를 구해놨어. 자네와 나, 대등한 입장에서 내 인생을 건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네. 어떠한가? 들어 볼 마음이 생겼나? 


-p24, 마시모



마시모의 제안을 듣고 '고통과도 같은 자기 연민과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쳤다는 고바. 제안을 들은 이상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구르기 시작한 수레바퀴는 이제 멈출 수가 없다. 결국 주인공은 살아남기 위해 순간순간 필사적으로 노력하게 된다. 권총도 제대로 쏴본 적 없는,  '창과 방패가 없는 돈키호테(p396)' 같은 모습이었던 고바였지만 수많은 위기 때마다 어떻게든 살아남는다.그를 선택한 이유에 대하여 제안자인 마시모는 이렇게 말했었다. 


약한 자이기에 오히려 죽기 살기로 지혜를 짜내고 때로는 엄청난 힘을 보여 주지. 생각해 보게. 자네는 어떤 의미에서는 나와 비슷해. 뛰어난 선견지명과 계획성, 결단력이 있는 데다가 복수심이 뒷받침된 강한 동기까지 겸비했지. 무기력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자신을 모함한 정치인과 관료들을 향한 분노와 억울함이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았어. 자넨 분명히 한 번 실패했어. 하지만 그 실패는 자네를 더 강하고 신중하게, 그리고 교활하게 만들었을거야. 


-p33, 마시모




소설의 이야기는 두 축으로 전개된다. 1990년대의 고바의 이야기와 2010년대의 고바의 양녀를 비롯한 후대가 부모 세대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나가는 이야기가 번갈아 나온다. 후대가 선대의 비밀을 찾아 나서게 된 것은 고바의 안배다. 주인공 고바가 직접 경험하는 시간에서의 앞을 알 수 없는 사건의 전개를, 2010년대에 사실은 그랬더라.. 라는 식으로 조금씩 비밀의 문을 열어주는 식이라고 할까. 



초반부터 마시모가 살해되어버리지만, 계획은 그대로 진행되면서 팀이 한 개가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이 계획에 러시아, 영국, 일본, 홍콩, 미국 등의 여러 나라( 그리고 첩보기관들 )가 얽혀버린다. 여러 나라가 얽히면서 등장 인물들의 배경 또한 얽히고 배신과 배신이 거듭된다. 팀원들간에 서로 의심해야하는 상황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상황이 계속 바뀌는 터라 액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 몰입감이 매우 크다. 탈취 계획의 타깃이기도 한 홍콩 난징은행그룹 산하의 헝밍은행 지하금고에 있는 플로피 디스켓과 서류에는 과연 각국 주요 인사들의 불법 투자와 부적절한 절세용 유령 회사의 활동 기록만 있는 것일까도 궁금한 포인트가 된다. 


그래요. 정말 성가시죠. 바보 같은 사람이었어요. 타로카드의 바보 카드(THE FOOL) 같은 사람. 카드 번호 0번인, 숫자가 없는 남자. 지식욕은 왕성. 그러나 금전욕, 물욕과는 관계가 없으며 아무것도 소유하려고 하지 않았지. 동료는 있었지만 파벌이나 무리를 만들지도 않았다우.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데다가 정말로 자신의 매력을 깨닫지 못했기에 오히려 타인을 끌어당겼지.


- p402



주위 사람의 이야기는  「언더독스」 의 주인공 고바의 매력을 더욱 드러내준다. 계획을 둘러싼 여러 나라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벌이는 모략은 더럽고 치사하다. 그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애쓴 고바는 그 세력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나는 당신들이 더 이상합니다. 더러운 일은 세금에서 나온 예산으로 남한테 떠넘기고, 납치나 살인이 벌어져도 눈감고 모른척하고, 그러면서 결과만 가로채죠(p502)'. 



고바 스스로가, 다른 이들이 그를 언더독이라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그는 절대 언더독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시작은 언더독이었을지 모르지만, 언더독이 언제까지나 언더독만은 아니니까! 그러기에 이야기의 결말이 더욱 만족스럽다.  



「언더독스」 는 164회 나오키상 후보와 '2020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5위에 오르며 대중의 머릿속에 나가우라 교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이다. 작가의 차기작을 기대해본다. 


* 네이버카페 리딩투데이 제공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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