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 - 정여울이 건네는 월든으로의 초대장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해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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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충동적으로 월든 호수의 사진을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는 저자는 '서랍 속에 우주를 숨겨놓은 기분' 이 들면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해지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 사진은 뜨거움과 차가움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변덕스러운 마음에 비로소 적정 온도를 찾게 해주는 '월든 부적' 이기도 했다. 그렇게 월든 마니아가 된 그는 소로의 모든 것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월든 투어를 떠난다. 그리고 그 기억을, 그 기록, 「월든」 과 함께 하는 일상을 이 책에 오롯이 담아내었다.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

정여울이 건네는 월든으로의 초대장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해냄



「월든」 은 내게 있어 완독목표를 몇 번이나 실패하게 만든 애증의 책이다. 마음에 콕 박히는 문장들을 무수히 밑줄을 쳐놓고도 완독했다는 기쁨은 늘 누리지 못했다.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 에서 저자 또한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는 문장을 만나자 갑작스럽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이른바 '각'잡고 읽을 준비를 하는 참이었는데!  


「월든」을 한 문장도 빠짐없이 철저히 읽어야 한다는 '고전 필독서 완독' 에 대한 강박관념이 오랫동안 내 의식을 장악했지만, 늘 네 챕터쯤에서 지쳐 떨어 나가떨어지곤 했다. 분명 재미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완독은 어려웠다. 학창 시절, 대학생 시절, 대학원 시절, 조금씩 더 '월든 완독의 길'에 가가워지긴 했지만 여전히 암중모색이었다. 


- p19




저자처럼 「월든」 이 더욱 가깝게 다가오는 삶에서의 계기는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나는 이 책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 를 마중물로 삼아보게 된다.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 라는 제목으로 「월든」 에서 건져올린 열정, 산책, 존엄, 간결함, 은둔 등의 키워드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로의 「월든」 을 읽고 난 후 인상 깊에 남았던 기억 중의 한가지는 의자에 대한 것이었다. "나의 집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의자, 하나는 우정을 위한 의자, 또 하나는 교제를 위한 것이다" 라는 문장말이다. 정여울은 그 문장으로 시작하여 '간결함' 이라는 키워드로 '당신에게는 몇 개의 의자가 필요한가요' 라고 묻는다. 


생활은 간결하게, 자연은 풍요롭게, 내가 「월든」에서 배운 삶의 지혜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의 생활이 간결해질 수록, 자연은 풍요로워지며, 오염과 파괴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도시인에게 자연은 캠핑처럼 잠시 즐길 수 있는 모험의 대상이거나 요양을 위한 일시적 치유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도시인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쓸모있는 '자원'으로 바꾸어 바라본다. (...) 자연을 있는 그대로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이 그 어떤 효용가치로 환산되지 않는다. 소로는 자연과 얼마나 교감할 수 있는지, 자연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지가 행복의 조건 중의 하나임을 믿었다. 


- p147




또한 스스로의 실수를 너무 오래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끄러움을 너무 오래 간직하지도 않는 마음을 배웠다며, 생활 뿐만 아니라 마음의 간결함까지 생각을 이어간다. 




1장에는 또한 월든 투어의 기록들이 갈색 페이지 속에 담겨있다. 숲 속의 오래된 나무 줄기의 색처럼 느껴지는 갈색 바탕에 가득찬 사진과 메모들은 독자들 또한 월든 호수로, 소로가 있던 곳으로 함께 떠나게 이끈다. 독서 에세이 속에서 여행 에세이를 덤으로 하나 더 읽게 되는 뿌듯함까지. 텍스트 속에만 있던  「월든」 의 내용들이 더욱 가깝게 다가오는 효과 또한 얻는다. 





2부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월든」 속으로 걸어가다' 는 「월든」 의 생활경제, 「월든」 의 인문학, 「월든」 의 윤리학, 「월든」 의 생태학으로 다시 나뉜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처음에는 그저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책인 줄 알았는데, 21세기 현대인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삶의 지혜를 압축해놓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라고 했다. 그는 적게 소유하고 진정 풍요로운 삶을 가꾸는 법, 통장 잔고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면서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 자연을 경제적으로만 바라보며 착취하지 않고 자연과 함께 진실로 공생하는 법,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마침내 진정한 영혼의 자유를 꿈꿀 줄 아는 용기를 지니는 법 등 수많은 삶의 지혜와 세계를 바라보는 눈부신 비전을  「월든」 속에서 길어 올려 2부에 꾹꾹 눌러 담았다. 


삶의 시간을 아름답게 수놓는 법을 이야기하는 「월든」 의 인문학 편을 더욱 관심있게 읽었다. 소로가 알렉산더 대왕이 원정을 떠날 때마다 귀중품 궤짝에 「일리아스」 를 넣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통해 '책'이야말로 가장 친근하고 일상적이며 삶 자체와 가장 가까운 예술작품이라고 강조했듯이, 저자 또한 「월든」 을 온 집안에 비치해보자고 권유한다. '이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마치 인류가 잃어버린 자기 안의 소중한 것들을 매번 되찾게 해주기 때문이다. (...) 무엇보다도 소로의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나는 힘겨운 날들의 복잡한 머릿속을 마치 투명한 월든 호수의 차가운 물로 말끔히 씻어내는 듯한 정화와 치유의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p254) 라고 전하면서. 



'조금은 소로처럼', '약간은 월든처럼' 살아가기 시작했음을 느끼던 어느 날의 일상 기록은 읽어가는 내게 잔잔한 미소를 띄우게 했다. 저자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는 월든도 좋고, '정여울의 문장' 또한 좋다. 삶에 대한 기쁨을 함께 이야기하자고 손짓하는 듯 하다. '오직 자기 삶의 속도를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긍정하는 삶'(p97) 으로 초대한다. 


나의 '조금이라도 월든을 닮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나는 「월든」의 문장을 읽으며 잠이 든다. "당신이 매일 낮과 밤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다면, 마치 달콤한 향내를 뿜어내는 화초들처럼 당신의 하루하루가 향기를 뿜어낸다면, 당신의 삶은 더욱 유연하고, 빛날 것이며, 나아가 영원불멸의 힘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성공이다." 


오늘 나의 삶은 아주 소박하지만 분명 어제와는 다른 향기를 뿜어낸다. 


- p269



'이제 나에게는 억지로 만들어가야 할 타인의 월든이 아니라 항상 내면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아름다운 월든의 세계가 있음을 믿기 시작했다'(p100) 라고 말하는 저자는 '소로를 만나는 순간, 소로와 만나는 동안, 변화하고, 다듬어지고, 풍요로워지고 , 향기로워진 내 생각의 정원으로 세상살이에 지친 당신을 초대하고 싶다' 라고 전한다. 그 초대에 응한 나는 그의 생각의 정원에서 산책을 하며 내 삶 또한 최고의 향기를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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