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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 - 세계 인형극 축제 속에서 찾은 반딧불 같은 삶의 순간들!
래연 지음 / 도서출판이곳 / 2021년 10월
평점 :
청소년기에 랭보를 만나고,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게 되고 대학원에서 랭보를 전공한 저자는 랭보의 도시를 찾아 샤를르빌을 방문한다. 첫 유럽 여행으로 방문한 샤를르빌이 세계 인형극 축제가 열리는 곳임을 알게 되면서 이후 10여년간 6번에 걸쳐 이 축제를 다녀온다.
세계 인형극 축제 속에서 찾은 반딧불 같은 삶의 순간들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
래연
도서출판 이곳
샤를르빌 세계 인형극 축제(Le Festival Mondial des Theatres de Marionnettes, The World Festival of Puppet theaters ) 는 세계 3대 인형극 축제 중 가장 규모가 큰 축제로 예술과 축제가 결합된 독특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책의 서두에서는 이 축제의 유래와 규모, 인형극에 대한 간단한 지식을 설명한다. ‘어차피 모두가 주연이 될 수 없는 이 삶 속에서, 한발 물러나 오히려 행복한 관객으로 사는 법을 생각’ 한다는 저자는 우리 자신의 삶을 직접 투영시켜주는 적절한 거울로 작용하는 극예술을 배경으로 삶을 풀어내는 글을 쓰게 되었다고 운을 뗀다. 종합 예술인 인형극은 텍스트, 오브제, 음악, 미술, 연극, 무용 등 여러 예술적 요소가 결합되어 만들어진다.
이야기와 어우러지는 많은 사진들은 읽는 이도 축제의 현장에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텍스트와 함께한 사진들도, 시원하게 전면 페이지를 차지한 사진들도 모두 축제의 생생한 모습을 전해준다. 축제의 모습 뿐만 아니라 축제를 즐기는 관객들의 모습도 흥미롭다.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 는 축제 속 인형극 이야기와 함께 여행 동안의 여러 에피소드가 담긴 여행기이기도 하다. 이동하는 동안 벌어진 일, 숙소와 음식점들에 대한 이야기, 공연장 속 다른 관객들에 대한 이야기, 여정 속에서 새롭게 만난 이들의 이야기가 다채롭게 엮여있다.
이 공연은 ‘어린 시절에 악몽과 고열에 시달렸던 한 조각가의 경험’ 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극이었다. 그래서 관객으로 하여금 그 불안한 정서를 공유하게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이 극에는, 한 예술가의 심혼이 고통스러운 질병의 터널을 지나 세상에 나오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어린 시절 우리가 끊임없이 도망치곤 했던 악몽이란 실은, 생생한 존재만이 겪는 창조적 혼돈인지도 모른다.
-p89
지나온 여정에서, 인형극에서, 혹은 만난 인물들에게서 저자는 과거의 기억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 이야기는 연보라색 배경의 페이지에 담긴다. 과거의 개인적 기억과 현재의 모습이 서로 교차되면서 때로는 늦은 이해를, 때로는 위로, 때로는 화해를 주고 받는다.
샤를르빌의 춥고 파란 밤, 나는 매일 어쩌자고 고스란히 그 날들을 베껴 적고 있다. 지난날에도 가끔씩 반추했던 그 추억조각들은 거듭하여 씹은들 단물이 빠지지 않고 여전하다. 이제는 그 추억 무더기로부터 빠져나와 홀연하기도 하다.
- p270
다양한 인형들의 모습의 모습과 인형들에 대한 이야기 속에 담긴 또 다른 삶의 모습들 속에서 친숙한 것들과 낯선 것들을 찾아내본다. 꽤 많은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음에도 대부분의 사진에는 설명이 없어 어떤 사진인지 본문 속에서 맥락을 유추해야하는 점이 아쉽기는 했다. ( 어쩌면 본문과는 관련없이 사진 그 자체만으로의 이야기들이 전개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 다시 생각해보면 또 한 명의 조용한 관객이 되어 저자와 함께 축제를 둘러본 느낌이기도 하다. 저자의 이야기는 여행을 함께 한, 혹은 우연히 만나 옆자리에 앉은 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치환되면서 말이다.
아이가 어릴 때 종종 함께 보았던 인형극 이후로는 따로 인형극을 본 경험이 없다. 이런 테마를 가지고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인형극과 퍼포먼스들을 자유롭게 감상하고, '광장 파라솔 아래 맥주잔을 기울임은 여행의 최고 로망 중 하나다(p321)' 처럼 맥주도 마셔보고, 한가롭게 산책도 해보며 축제를 즐겨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