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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의 눈 ㅣ Dear 그림책
아르투르 스크리아빈 지음,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최혜진 옮김 / 사계절 / 2021년 8월
평점 :
요안나 콘세이요가 「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Quand les groseilles seront mûres)」 에서 누군가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슬쩍 내비췄다면, 이번 「세네갈의 눈」에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한다. 아르투르 스크리아빈의 글을 담아내면서도 요안나 콘세이요만의 이야기가 숨어있을 것만 같은 기대가 차올랐다. 요안나 콘세이요의 그림책이 내게 늘 그래왔 듯, 찬찬히 오래 들여다봐야겠지만.

세네갈의 눈
Sénégal
아르투르 스크리아빈 글,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최혜진 옮김
사계절
책을 펼치자 꽃무늬의 면지가 나타난다. 페이지 사이에 꽂혀있는 듯한 책갈피 같은 태그. 페이지 사이사이 그려진 작은 일러스트들은 압화나 책갈피가 실제로 꽂혀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덕분에 누군가의 오래된 일기를 몰래 펼쳐본 것만 같다. 오래된 사진이 들어있는 낡은 앨범 같기도 하다. 이런 일러스트들은 그것들에 묻어있을 아련한 추억들을 궁금하게 하는 장치들이 된다.

"내가 어렸을 때..." 라는 화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첫 페이지의 키스를 하고 있는 젊은 부부는 누구일까. 입고 있는 옷과 프레임 주위의 장미를 보며 누군가의 결혼식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화자의 부모님의 결혼식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화자 본인의 결혼식일지도 모르고. 그리고 이어지는 목소리. "... 세네갈에 눈이 내렸어".
아프리카에 있는 세네갈에 눈이 내렸다니, 당시 일곱살이었다는 화자에게는 매우 인상적인 기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에 한가지 기억이 더 각인된다.
그 빛 한가운데서, 그 눈 한가운데서,
엄마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
울고 있었어

구멍난 반바지와 티셔츠만을 입고 뛰어나가 눈을 구경할 때 죽을 만큼 추웠으나, 내리던 눈은 은은하고 아름다운 꽃잎 같았다는 아이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울고 있던 엄마를 바라본다. 그리고 '엄마는 슬프지 않았어. 엄마는 작은 소녀처럼 보였어' 라고 생각한다.
가득 찬 것과 텅 빈 것, 기억과 망각, 말과 침묵들이 페이지에 가득찬다. 어떤 등장인물들도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화자의 독백으로만 진행되고, 짧은 텍스트임에도 이야기는 느릿하게 다가온다. 아마도 일러스트에 시선이 오래 머물러있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일러스트는 회색과 푸른색, 그리고 그 외의 컬러가 번갈아 나타난다. 연필선이 오롯이 드러나는 일러스트를 들여다보며 어른이 된 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 혹은 자신만의 환상을 덧칠했을지도 모르는 기억들을 연결지어 보려 애쓰다보니, 내게는 회색은 압도적인 정적의 느낌으로 다가오고, 푸른색은 또 다른 시간의 기억처럼 느껴졌다.
엄마는 왜 울고 있었던 것일까. 이 모습들은 당시 어린 아이의 시선에 각인된 모습들일까. 영화 「연인」 속 양갈래 머리 소녀를 떠오르게 하는 검은 머리 소녀는 누구인가.

눈이 내린 세네갈의 풍경이었을지, '멀고 평화로운 다른 시간' 속의 추억일지 모르는 장면 속의 여우는 동그란 액자 속의 동물과 매우 유사하다.

나는 일러스트 속 나방을 보며 누군가의 죽음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희미해진 남자의 실루엣과 의자를 지고 떠나는 뒷 모습의 사람을 보며 이별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그것을 바라보는 아이의 외로움이 크게 다가오기도 했다.

텍스트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이미지들은 얼핏 당혹스럽기도 하다. 결국 독자는 그 미묘한 어긋남을 메우기 위해 자신의 기억을 끌어올 수 밖에 없다. 내 부모님의 기억, 다른 책 속에서의 장면들, 영화의 한 장면이나 다른 이에게 들었던 소문들 등이 여백을 채우며 '끝나버린 사랑','외로움', '풍요로운 자연과 대비된 어떤 결핍', '환상', '이별' , '기다림' 등 저마다의 단어들을 떠올리겠지.

조금 쓸쓸해지는 내게 마지막 페이지의 파랑새가 밝게 지저귄다. 파랑새는 희망을 뜻하지 않던가. 화자의 지금의 시간은 행복할 것만 같다. 그리고 화자의 어머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