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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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6인 6색의, 한 생애를 살아낸 모든 할머니들에게 바치는 소설집 『나의 할머니에게』 를 펼친다. 젊음과 노년의 그 어디 쯤에 위치하고 있는 내 나이에 읽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들은 생각보다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제는 내 할머니가 아닌 어머니를 떠올리고,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되어갈 지 생각해보는 게 더 자연스럽다니. 



나의 할머니에게 

손원평, 최은미, 손보미, 강화길, 백수린, 윤성희 

다산책방 


6명이나 되는 작가 중에서 친숙한 작가는 아이와 함께 읽은 책 『아몬드』 로 만난 손원평 작가 밖에 없었다. 그동안 너무 한국문학을 안읽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책을 펼치자마자 나를 반기는 작가분들의 싸인. 이 분들의 다른 작품들도 꼭 찾아 읽어야지 다짐하게 한다. 




손원평의 『아리아드네 정원』 은 독자의 기억 속이나 현재 만나보는 할머니가 아닌 근 미래의 할머니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야기 속의 할머니는 사회가 감당하기 힘든 '늙은 여자'를 지칭하고 있을 뿐이다. 마치 폐기 직전의 제품들처럼. 이 세계에서는 나이 든 이들을 위하여 유닛A 부터 F 까지 나눠서 수용하고 있는데, 유닛 F 는 최하계층 즉, 의식없는 중증 치매 노인, 병자, 타 유닛에서 문제를 일으킨 이들의 보호시설이다. 책 속 화자는 현재 유닛 D에 수용되어 있다. 


미래는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고, 그 시점에서 돌아보는 과거는 아둔하고 순진해보일 뿐이다. 


- 『아리아드네 정원』 , p213


소설은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민아의 삶은 다음 단계로의 하락을 기다리고 있다.' (p218) 라고 독백하는 노년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세대 간의 갈등, 그리고 인종 간의 갈등까지 담아낸다. 저출산으로 인하여 더욱 여러 인종을 받아들여 이루었을 근 미래의 사회 구조를 녹여내면서 말이다. '가장 답답한 건 젊다고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젊음은 불필요한 껍데기 같아요. 차라리 몸까지 늙었으면 좋겠어요. 남아 있는 희망도 없이 긴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건 절망보다 더한 고통이니까요'(p219) 라는 책 속 젊은이의 절규는 가상의 이야기로만은 다가오지 않아 더 씁쓸해졌다. 



각 단편에는 이렇게 깜짝 선물 같은 페이지가 존재한다. 페이지 사이에 접지로 된 부분이 있어서 파본인가 하며 펴보았더니 이런 일러스트 페이지가 펼쳐진다. 기대하지 않고 있다가 만난 그림인지라 더욱 눈이 간다. 조이스 진(Joyce Jinn) 작가의 그림이다. 복거일 작가의 딸이기도 하며, 『세상의 발견 : 어린 탐험가들의 보고서』 라는 그림책도 펴냈다. 그림의 하단에 작가 이름이 나와있기는 하지만, 도서의 서지정보나 책날개에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소개가 되어 있지 않아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긴 한다. 


노년의 사랑이야기인 백수린 작가의 『흑설탕 캔디』 는 시몬 드 보부아르가 열여덟 살 때 습작으로 썼으나 완성하지 못한 첫 장편소설의 한 장면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다고 작가노트에서 소개한다.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오게 된 화자의 할머니 난실과 이웃집 장 폴의 이야기 속에는 음악도 함께 흐른다.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 16번.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괴로워하고 있던 슈만이 호프만의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후 연인인 클라라에게 헌정했다는 곡이라고 한다.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작중 화자를 키워준 할머니가 말도 통하지 않는 그 낯선 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뒤늦게 궁금해하며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식에게, 손주에게 모든 것을 다 내어주던 할머니가 '이건 내 것이란다' 라고 하며 손녀의 청을 거절하는 마지막 장면이 매우 인상깊었다. 


기해년 11월의 어느 주말에 템플스테이를 하러 간 여자들의 이야기인 최은미 작가의  『11월행』 은 환갑을 맞이한 '나'의 엄마, 그리고 '나'의 딸의 이야기가 '나' 의 이야기와 함께 펼쳐진다. 엄마이자 딸인 '나'. 지금의 내 모습인지라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던 모습. 나와는 성격이 다른 어머니라고 여기면서도, 자식에게 어느새 어머니가 하던 그대로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의 모습이 다른 에피소드로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이 무겁고 뻣뻣한 느낌이 언제부터 육신을 지배했는지 헤아려보려 애쓰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땅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중력의 힘을 거스르는 마디마디의 안감힘이 헛되다. 한 번도 도달할 줄 예상 못 했던, 늙어버린 얼굴이 쌕쌕대며 숨을 뱉어낸다. 


- 『아리아드네 정원』 , p200


그러나 노쇠한 육체 대신 ' 다양한 나이대를 통과해가며 그것들을 한 몸 안에 품어가는, 다채롭게 넓어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사실'(발문 중에서, P232, 황예인 문학평론가 ) 을 발견하고 싶어진다. 


문득 아이를 낳고 나서 얼마 안되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어머님' 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의 낯선 감정이 떠오른다. 분명 난 한 아이의 '엄마'였는데 아직 '어머님~' 이라는 말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앞으로 미래에,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할머니' 란 말을 처음 듣게 될 때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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