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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새를 너에게
사노 요코 지음, 히로세 겐 그림, 김난주 옮김 / 샘터사 / 2020년 2월
평점 :
내게 있어서 그림책으로 만나는 사노 요코의 작품은 읽을 때 마다 다른 것들이 보인다. 같은 장면이, 같은 글인데 읽을 때마다 다르게 해석되어지고, 문득 '아!' 라는 감탄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수필로 만나는 사노 요코의 작품은 경쾌하고 유머스러우면서도 작가 특유의 삶의 철학을 느끼게 한다. 그림책 작가로 먼저 만났었기에 그녀의 수필을 읽고 나서는 그림책이 다르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녀의 작품에 대해 나름대로 켜켜이 쌓았던 나만의 생각은, 이번에는 소설을 통해 또 하나의 새로운 층을 쌓았다.

나의 새를 너에게
ぼくの鳥あげる
사노 요코 글, 히로세 겐 그림
샘터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자그마한 사내아이가 태어날 때 이마에 붙여있던 우표 한 장은 의사를 시작으로, 의사의 아내, 도둑, 학생, 뱃사람 등을 긴 시간 동안 거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액자에 담겨 한 여자아이에게로 간다. 본 적 없는 글자와 본 적 없는 새가 그려진 우표 한 장. 아름다운 새 한 마리가 조그만 우표 안에서 하늘을 나는 것만 같은 모습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그리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기보다는 우표가 옮겨진 인물들의 짧은 이야기들이 연결된다. 그 가운데 우표에 그려진 새 그림은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감정을 이끌어낸다.

우표와 함께 했던 사람들
새가 그려진 우표는 사람들에게 잠시의 변화를 이끌어내지만, 그 인물들의 일상을 묘사하는 글은 작가 특유의 냉소가 묻어나기도 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가난한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볼까.
위대한 학자는 진실이 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지만 배가 정말 고플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가르쳐 주지 않았고, 방세를 빨리 내라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중략>
진실을 알면 알 수록, 어렵고 모르는 것도 점차 많아지는 듯 했습니다.
- p21
우표를 지니고 먼 나라로 떠난 뱃사람의 모습은 사노 요코의 그림책 「100만번 산 고양이」 를 떠올리게도 한다. 이 고양이가 그 고양이었을까 하면서.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 어린 시절, 아빠가 만들어준 그네를 누구에게도 내주지 않았던 여자 아이는 이야기의 마지막을 담당한다. 도시로 간 여자 아이는 어른이 되었고,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가 되어 열심히 일하지만 다른 이들을 부러워하며 지쳐간다. 그러던 어느날, 너덜너덜한 청바지와 스웨터를 입고 들어와 레스토랑에서 가장 값싼 메뉴인 샌드위치를 시킨 청년을 만났으나 그에게 곤란한 질문을 하는 등 심술궂게 군다.
쉬는 날, 그녀는 우연히 들른 화랑에서 신비로운 새가 수도 없이 반짝거리며 날아다니는 그림들을 만난다. 새 그림들에 매료된 그녀는 쉬는 날마다 그림을 보러 간다. 그리고 그 청년을 다시 만난다. 읽는 이들은 '얼굴을 붉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둘의 관계가 어떻게 될 지 궁금하게 여기게 된다. 청년의 정체도.
처음 읽었을 때는 톱니바퀴처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두 인물들의 관계에 감탄을 했다. 그 다음에는 '새' 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 '새 그림이 그려진 우표' 로 생각이 옮겨간다.

새는 파란색이다. 문득 파랑새를 떠올리게도 한다.
일본에서의 원작은 컬러 그림이 표지로 사용되었다. 국내 번역본에서는 본문의 삽화에 그려있는 흑백의 그림을 표지로 사용해서 다른 느낌을 준다. 원 표지의 컬러 그림은 면지에 나온다. 우표의 새는 요정이었던 것일까.

글에서 군데 군데 작가 특유의 인간에 대한 조소도 엿보이지만, 역시 인간에 대한 따스한 애정도 배어나오는 터라 마음이 따스하게 데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정말 신기한 일이지. 네가 준 우표를 보고 나니까 더는 새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았어. 내가 그린 수많은 새들이 딱 한 마리가 되어 내게로 돌아온 것처럼.
- p81
책 속의 수많은 새들이 한마리가 되어 청년에게도 돌아왔다. 그리고 그 새는 읽는 이에게로 다시 옮겨진다. 나는 내게 옮겨온 이 '새'를 다시 누군가에게 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