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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 히어로
엠마뉘엘 베르네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월
평점 :

엠마뉘엘 베르네임의 소설은 '100 페이지의 미학' 이라 일컬어진다고 한다. 간결하고 절제된 문체가 특징이라고. 옮긴이는 작가를 미니멀리스트라고도 표현했다. 나는 이 작가의 작품은 이 책으로 처음 만났는데 다 읽고 나자마자 다른 책들을 검색했다. 쉽게 읽히지만 여운이 가시지 않는 글. 그러면서 재미있다. 소설 같기도 하고 영화 시나리오 같기도 하다. 쉽게 장면이 머리 속에 그려지는 묘사와 스피디한 전개 덕분인건지, 작가가 영화 및 텔레비전 드라마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하다는 정보에 그렇게 느낀 건지는 모르겠지만.
작가는 우연히 <록키3>를 보러 갔다가 40도에 이르는 고열로 몸져누웠고, 이후 첫 소설 「잭나이프」 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변신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작가 자신과 쌍둥이처럼 닮은 주인공 리즈가 나온다. 이 소설은 실베스터 스탤론에게 바치는 소설이자,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가지는 작품이기도 하다고.
<람보> 보러 갈 것이다.
그녀는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이제부터는 스탤론이 출연하는 모든 영화를 보러 다닐 것이다.
전부 다. 한 작품도 빠뜨리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오늘 맹세를 한다.
앞으로는 텔레비전에서 방송하길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영화관에 가서 표를 사서 볼 것이다.
꼭 그래야만 한다. 스탤론 덕분에 그녀의 인생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 나의 마지막 히어로, p25-26
이 맹세를 지키기 위해 어린 아이를 안고 영화관에 간 주인공의 모습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아이가 울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줄을 서서 매표창구에서 표를 샀고, 그리고 돌아섰다. ' 약속을 지켰다. 표를 산 것으로 됐다. '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 스탤론은 어떻게 될지 걱정에 그를 위해 계좌를 개설하고 버는 돈의 10퍼센트를 입금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스탤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경우를 대비해 계좌의 전액을 스탤론에게 유증한다고 유언장도 작성한다. 스탤론에 대한 팬심보다는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굳은 결심으로 읽힌다.
책을 읽으며 내게 있어서 '록키', 아니 '실베스터 스탤론' 은 누구일까 생각해보았다. 나름 한번 빠지면 덕질을 깊게 하기는 하는데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대신 대상을 계속 바꿔나갔다. 나름 팬심을 발휘했던 가수가 있었고, 작가가 있었으며, 소설이나 애니메이션 주인공도 있었지만 주인공 리즈처럼 삶을 변화시켰던가. 생각해보면 그만큼 주인공은 삶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가 있었고 그 시작을 위한 촉매가 필요했던 거 아닐까 싶다. 그 촉매는 꾸준히 이끌 수 있는 동력으로 변하고. 문득 주인공이 부러워졌다.
뒷 부분의 대담은 책을 읽고 난 후 리뷰의 초안을 쓴 후에 읽었다. 내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이들의 대담을 먼저 읽다가 느낌의 색이 섞여 희미해질까 경계가 되었던 까닭이다. 내 느낌을 정리하고 읽으니 더 좋았다. 영화 전문 기자의 영화 이야기도 좋았고, 소설가의 소설 구성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이다혜의 기자의 '밑바닥 남자가 자수성가한 이야기와 여성이 자신의 꿈을 이루는 이야기가 등치되는 면이 있지 않나' 라는 부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계속 언급되는 작가의 다른 소설들을 눈여겨보다 검색해 둔 작가의 다른 소설들에 밑줄을 치게 된다. 다른 소설들을 읽고 나서 대담을 다시 읽어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