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조 - 제2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송섬 지음 / 사계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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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장에 필요한 것은 모두 책에서 배웠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텍스트로 배운 것을 실생활에서 활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므로 일종의 통역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런 삶을 살았던 사람이 인생의 친구를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상대방이 했던 말에 대꾸하기도 어렵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습득하여 좀 괜찮은 사람으로 다가가고 싶은 그 마음이 못내 안타까웠다. 가만가만히 등을 토닥거려주고 싶은 소설이었다. 괜찮아, 다 괜찮아,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책이 없거나 책을 읽을 만한 시간이 없을 땐 전단지라도 읽어야 숨을 쉴 수 있다. 스스로 깨달아 적립한 첫 번째 지식도 책에 관한 것이었다. 책등에 주름이 생기지 않도록 잘 받치고 볼 것, 이물질이 묻은 손으로 만지지 않을 것, 무심코 눌러 펼친 자국은 결코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으니 조심할 것. 책으로 배운 일이지만 책에 적혀 있던 것은 아니었다. (53페이지)


 


 

 

설계사무소에서 컴퓨터로 설계하는 는 친구가 없다. 추운 계절을 견디기 힘들어 휴가를 겨울에 몰아서 쓰고, 잠이 오지 않을 때면 골목에 있는 술집에 들어가 맥주 몇 잔을 마시고 잠에 취한다. 비록 그다음 날 잠까지 몰아서 자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허름한 골목길에서 두 종류의 맥주만 파는 술집이 있다. 변변찮은 술을 파는 조의 술집은 변변찮다.

 


는 반지하 방에서 고양이 두 마리 설리와 밤비랑 함께 산다. 어느 날부터 아저씨가 침대 발치 한구석에 서 있는 걸 발견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이 왔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에 정물화처럼 여기기로 했다. 그 후 조가 의 집으로 들어와 고양이 두 마리와 세 사람이 동거하기 시작했다. ‘의 눈에 보였던 아저씨는 사람이 아닌 거로 보인다. 그저 의 눈에만 비치는 존재다. 아마 죽은 아버지의 다른 모습이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면 의지하고 싶은 존재를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긴 줄에 서 있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긴 줄이야. 늘 그 줄에 서 있었어. 그 줄에 끝이라는 게 있을까 따위는 고민해본 적도 없었어. 그런데 언젠가부터 저 멀리서 어렴풋이 끝이 보이는 것 같은 거야. 그 줄에 끝이 있다는 걸 알자마자 나는 두려워져. 줄에서 빠져나가고 싶은데, 아무도 나가지 않아. 나만이 나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지. 그리고 문득 그 줄의 끝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달아. (86~87페이지)


 

전체적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있다.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주인공과 함께 살던 조의 고독과 우울 또한 죽음을 불러 왔다. 사랑했던 자식이고 많은 사랑을 주었다고 여기는데도 왜 자살을 꿈꿀까. 젊음의 한때의 치부라고 여기기엔 복잡하다. 우리가 십 대 때 자살을 생각했다고 해서 모두 자살하지는 않는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길래 서른 살의 죽음을 선택한 것일까. 드러나지 않은 죽음의 원인 때문에 여러 사람이 고통스럽다. 죽기 전 어디를 헤매고 다닌 것인지. 드러나지 않은 행적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부모도 도 궁금하다. 하지만 유추할 수는 있다. 그가 마지막 머물렀던 공간을. 밖에서 두드리지 않으면 열리지 않은 그들만의 골목을 떠올릴 수 있다.


 


 

 

어쩌면 죽음은 와 함께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죽음은 시시때때로 보였고, 그도 죽은 것 같지 않다. 창문을 열면 바로 보일 것만 같다. 골목의 한 공간에서 기다릴 것만 같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감정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거 같다. 아니면 아예 피해 다니고 무시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애써 감정을 의식하려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죽음은 생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거다. 죽음이 끝이 아니란 거. 살아갈 이유가 있다는 거. 그저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정물화처럼 서 있는 아저씨를 곁에 두었던 이유, 거리에서 우연히 모습을 보았을 때 헤매듯 찾아다녔던 이유. 목 놓아 울었던 이유를 생각하면 눈물이 흐른다. 그 고독이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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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베이비 -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성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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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첫 문장, '아빠는 나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렸다'라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이 가진 힘을 느끼게 한다.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기에 화자의 아빠는 전당포에 아이를 맡기고 돈을 빌렸을까.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 또한 충분히 예상 가능했으나 또 다른 감정을 느끼게 했다. 사회가 가진 부조리와 어두운 구석에서 한탕주의를 꿈꾸는 우리의 민낯을 보게 한다. 최근에 뉴스에서 나왔던 한 가족의 실종 사건이 우리를 우울하게 했던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희망을 생각하게 만든다. 전당포에 맡겨진 아이라고 해서 불행하지만은 않다. 전당포 주인 동영진 여사를 할머니, 할머니의 딸과 아들을 엄마와 삼촌이라고 부르지만 말이다. 스스로 그림자 아이라고 여긴다. 열 살의 하늘은 서류가 없어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엄마가 공공근로로 일하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전당포 주변을 스스럼없이 돌아다닌다. 자기가 버려진 이유가 궁금했다. 할머니와 엄마는 가족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다물었고, 제대로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카지노에서 태어나 카지노에서 사는 아이를 호텔 직원들은 카지노 베이비라고 부른다. 카지노에서 태어난 아이의 이야기를 함과 동시에 강원도의 탄광촌과 그 위에 세워진 카지노의 생성과 붕괴, 몰락을 나타낸다.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바로 우리의 과거다. 우리에게 다가온 변화를 거스르면 튕겨 나갈 것이고, 오는 세계를 받아들이면 지킬 수 있는 것들이 생긴다. 인간은 변화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가장 어려운 게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것. 어느 선에서 멈출 것인가가 중요한 법이다. 그걸 놓치면 잃을 것들이 많아진다.

 


동영진 할머니가 걸어온 발자취는 우리의 역사다. 올림픽 다방에서 월드컵 전당포로 이어지는 이름을 보면 이해하기가 더 쉽다. 전당포를 운영하면서 전당포는 전당포가 할 일을 하면 된다고 말했던 할머니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선견지명을 가졌다. 밀어붙이는 추진력도 있었으며 굳은 심지와 세상에 타협할 줄도 알았다. 시류를 거스르지 않았으며 어떤 세상이 와도 견딜 수 있는 힘을 키웠다.

 


누군가를 지킨다는 것. 불이 불을 지키고, 그 불에서 피어난 꽃이 부풀어 새로운 희망을 얻게 하는 것. 할머니가 하늘을 지켰던 이유고 살아가는 이유였다. 사람이 가진 능력이며 힘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삶을 살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동하늘의 미래를 그려보게 된다. 판타지적인 면도 없잖아 있지만, 메마른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 같았다. 더불어 동하늘이 열어 갈 세상이 따스해 보인다는 것도 유추할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면 된다. 타인에게 품었던 모든 마음, 우리 안에서 다스릴 수 있다. 그게 우리가 가진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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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 - 국선변호사 사건 일지
신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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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 속의 국선변호사들에게서 느껴졌던 건 무관심 혹은 무성의였다. 국선전담변호사는 형사재판을 받을 때 반드시 변호사가 선임되어야 한다는 규정때문에 피고인이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을 때 법원이 의무적으로 선임해주는 제도다. 변호사들이 당번제로 돌아가며 국선변호를 맡았던 시절에는 없는 시간을 빼서 해야 하므로 무성의한 태도때문에 원성을 샀다. 이에 대법원은 2004년부터 국선변호만 담당하는 국선변호사를 뽑았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았던 국선변호사의 무성의는 이제 옛말이라는 거다. 영화의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실제 국선전담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신민영 변호사의 사건 일지로 최근 드라마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에피소드의 원작 일부를 수록했다. 


 

실제 사건과 드라마의 사건을 비교해보며 피고인이 느꼈을 감정과 변호사로서 바라보는 사건의 차이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되었다. 피고인을 변호해야 하는 변호사는 피고인의 입장에서 사건을 살펴보아야 한다. 사건을 깊이 있게 바라보고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와 사건이 일어난 경위를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대충 사건을 처리할 거라는 우리의 시각을 바꾸게 되었다. 




 

 

무지때문에 죄를 짓게 된 상황과 억울하지만 합리적 증거를 댈 수 있어야만 하는 상황에 대하여도 사건과 더불어 자세히 설명해 법에 대하여 좀 더 이해하기 쉬웠다. 또한 다양한 사건을 토대로 법에 대하여 설명했다. 

 


아동학대에 관한 건 언제나 가슴이 아프다. 피고인이 정신질환때문에 아이를 칼로 찔러 다치게 했으나 아이의 법정대리인은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 일을 해야 하는 남편은 어린 아이 외에 다른 자녀가 있어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이유였다. 치료 감호 또한 원하지 않아 이후에 비슷한 상황이 생기지 않는다고 보기 어려울 거 같았다. 변호사도 고민했던 내용이지만 국선 변호인이 모든 걸 감당할 수는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에 읽은 책에서 크게 느낀 점 몇 가지가 있었다. 첫번째는 정당방위란 없다는 거였고, 두 번째는 의무교육 과정에서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거였다. 무지로 인해 그게 죄가 되는지 모르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에 먼저 쳤으니 나도 때렸다가 정당방위라고 주장할 수 있다.  우리나라 법 조항 중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벌하지 않는다'라는 규정 때문이다. 빌려 준 돈을 받기 위해 납치하듯 차에 태우고 울고 있는 아이까지 차에 태웠던 행위를 죄가 되는지 몰랐다고 한 피고인의 이야기에서 우리라고 다르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법의 무지에서 오는 행동이었다. 

 


법과 정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변호사. 어떻게 하면 피고인의 입장에서 유리한 결정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마치 변호사가 주인공인 법정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비슷한 사건이라도 피고인에 따라서 그 사정이 다를 수 있다. 의사의 진단서가 형사 사건과 민사 사건에 따라 다르며 그에 따라 미치는 영향까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사항을 알 수 있었다. 


 

우영우 변호사의 따뜻한 이야기에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자폐를 가진 변호사와 사건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좋아 챙겨보고 있다. 드라마 속에서도 이 책에 들어있는 사건을 가져와 공감하는 부분이 컸다. 드라마라고 해도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하여 나타낸다는 거다. 드라마에 맞게 각색하였지만 우리가 몰랐던 다양한 사건 사고들이 생기고 억울한 피고인도 있다는 거다. 

 


평소의 나를 생각해보고 있다. 탈북자나 이민자의 사건 기사를 보았을 때 한국인이 아니라고 무관심하지 않았나. 더불어 사는 사회라고 강조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관심 같은 거 두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차별하고 배제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위한 법 제도에 대한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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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말리
에르베 르 텔리에 지음, 이세진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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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이라는 가정을 자주 사용하는 거 같다. 소설을 읽고 드는 생각에 빠져있다 보면 우리가 도달하지 못할 세계를 꿈꾼다. 도달하지 못하기에 꿈을 꾸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과거의 나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습니까? 다분히 클리셰에 가까운 문장이지만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는 거 같다. 이 책 『아노말리』를 읽고서 나는 또 만약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나의 모든 기억과 경험을 가진 또 다른 내가 나타난다면 어떨까?  이 경우 한 사람은 가짜일까 아니면 그저 복제품일 뿐일까. 


 

2021년 3월 10일, 파리에서 출발한 뉴욕 행 에어프랑스 여객기가 비행 도중 난기류를 만났다가 무사히 착륙했다. 세 달 뒤 6월 24일, 같은 여객기가 동일한 지점에서 난기류를 만나고 착륙하려고 한다. 동일한 여객기, 동일한 기장과 승무원, 동일한 승객이 타고 있다. 미국 정부는 비밀리에 과학자들을 소집하고 군 공군 기지로 비상 착륙 시켰다. 심리학자들과 군, 정부 관계자들은 3월 10일에 비행기를 탔던 사람들을 찾고 6월 24일에 비행기에서 내렸던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관계자들이 이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던 것은 가설은 세 가지였다.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차원 즉 웜홀 가설이 그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복사기 가설이었다. 이를테면 3D 프린팅으로 생체 물질을 만드는 바이오 프린팅이었다. 세 번째는 보스트롬 가설로 컴퓨터 시뮬레이션 된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가설은 가설일 뿐. 그들을 인간이라 여기고 싶지 않았지만 동일한 인격과 동일한 기억을 가진 인간이었다. 


 

비행기에는 다양한 사람이 타고 있었다. 블레이크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살인청부업자,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빅토르 미젤, 영화 편집자인 뤼시 보게르, 췌장암 말기 환자인 기장 데이비드, 성공하고 싶은 변호사 조애나, 나이지리아 뮤지션 슬림보이 등이다. 다양한 인물들인 만큼 다양한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다. 소설보다는 번역가로 명성을 얻은 빅토르는 이 작품과 동일한 제목의 소설을 쓰고 자살하며 유명해지고, 기장이었던 데이비드는 췌장암 말기 환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동성애자 임을 숨겼던 뮤지션은 역시 동성애자인 여성과 연인인 척 행동하고, 어떤 소녀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을 안고 있다. 이 비밀을 풀어가는 게 소설의 한 방식이며, 자기와 똑같은 존재를 만났을 때 대처하는 인간의 자세와 마음가짐이 소설의 다른 방식이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었던 사람은 자기와 똑같은 인물이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고, 갑자기 엄마가 두 명이 된 소년은 현명하게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을 주사위를 이용하겠다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엄마와 단 둘만 살아온 관계이기에 때로는 변화가 필요하고, 어느 순간 성장해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사랑에 실패한 사람은 자기와 같은 인물에게 충고를 해줄 수도 있다. 

 


3월의 인물과 6월의 인물이 두 사람이 되었을 때 대처한 방법 중 한 가지는 다른 신분으로 살아가는 거였다. 3월의 조애나는 당시 연인이었던 에이비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고, 6월의 조애나는 자기가 갖지 못한 아이에 대한 질투심, 에이비에 대한 사랑으로 괴롭다. 다른 조애나를 죽이는 꿈까지 꾼다. 멀리 떠나 새로운 신분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물론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도. 

 


마치 퀴즈를 푸는 거 같다. 네모나 세모, 원에 갇힌 자와 그 바깥에 있는 사람과의 조우. 그 방법을 아는 일. 우리가 그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어떻게 할까. 사람의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 정부이기에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두 사람의 존재가 각자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고, 그들을 보호할 수 있었다. 만약 공산주의 국가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선택지는 많지 않다. 조용히 가두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했을 것이다. 미국 정부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을 것이다. 3개월 뒤, 동일한 비행기, 동일한 기장과 승무원, 동일한 승객들이 탄 비행기가 또 나타난다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할까. 


 


 

 

어떤 인물은 남편의 죽음을 몇 번이나 겪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살아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싶을까. 슬픔이 가득 차오르는 순간, 아직은 건강한 남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반복된 삶을 기꺼이 감수하게 될까. 죽어가는 그 순간마저 소중하게 여길 것인가. 반복된 상황은 반복된 고통을 줄지 모르고 다시 볼 수 없는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기쁨을 느낄지도 모른다. 또는 자기의 존재를 죽이는 방법도 있다. 동일한 기억을 가지고 있어봤자 좋을 게 없을 수도 있다. 비밀이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을 아는 자가 둘 일 필요는 없을 것이니. 

 


추리 소설 적인 면과 연애 소설 같은 느낌이 있었으며, 읽을 때는 행간을 이해하지 못했던 그 행동 하나가 의미하는 바를 찾아내는 기쁨도 컸다. 물론 그다지 행복한 상황은 아니기에 우울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드러나서 다행인 점도 없지 않다. 생각 하나가 파생되어 생기는 여러 면이 좋다. 글이 가진 즐거움도 그렇고 작품이 내포하는 삶의 통찰 또한 우리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현재의 내 삶도 중요하지만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대신 살아보고 그에 맞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질문을 건넬 수 있는 책 읽기가 소중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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